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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1학년 때까지 같은 반이었고, 2학년부터는 갈라지게 됬다.
그래서 점심 시간이나, 쉬는 시간, 화장실에서 담배 피울 때 만나서 친하게 지냈다.
2학년 봄에 설악으로 수학 여행을 갔는데 다들 알다시피 다른 학교에서도 많이 왔다.
버스를 타고 가다가 잠시 휴게소에 들렀을 때, C가 다른 학교 여자애의 번호를 땄고
우리는 밤에 몰래 숙소에서 빠져나와 번화가로 나갈 계획을 세웠다.
그렇게 번호를 딴 여자들과 만나서 여기저기 돌아다니며 놀았다.
여자애들에게 귀신 보는 친구 얘기도 해주고, 이것저것 무서운 이야기도 해주니 재밌다며 좋아했다.
문제는 그 번화가 쪽 동네가 생각보다 가게 문을 일찍 닫았다.
소주 방까지 갔다 나오니 딱히 갈만한 곳이 없어서 이리저리 방황하고 있는데
산이라고 하긴 애매한 숲 속에 폐가가 보였다.
본능적으로 내가 ' 저기, 귀신 있냐? ' 라고 물었고 친구들은 이 새끼는 뻑하면 귀신 타령이라고 한마디씩 했다.
그리고 C가 나에게 도발을 했다.
' 너 원래 귀신 존나 무서워하는데, 일부러 쎈 척 하는 거 아니냐? '
이 말에 친구들과 여자애들이 웃기다고 낄낄대며 난리가 났고 나는 발끈했다.
' 저기, 귀신 있어?! 없어?! '
그 말을 들은 귀신 보는 친구가 한심하다는 듯이 한 숨을 푹 쉬더니,
' 그래 , 귀신 있다 있어. 됐냐? ' 라고 했다.
그 말을 들은 C가 주머니에서 라이터를 꺼냈다.
그리고 폐가 쪽으로 걸어 가더니 라이터를 폐가 안으로 쑥 던져 넣었다.
그리고는 나에게 ' 저거 가져와 봐 ' 라고 했다.
' 내가 똥개냐? 뒤질래? '
' 에~~ 이 새끼 쫄았네, 쫄았어 '
그렇게 친구들과 여자애들은 웃느라 한 바탕 난리가 났고 귀신 보는 친구만 한심하다는 듯 똥 씹은 표정이었다.
나도 슬슬 그 비웃음에 짜증이 나서
' 내가 저거 가져와서 똑같이 던지면 너도 찾아와라 콜? '
C는 순간 멈칫했지만, 내가 쎈 척 하는 줄 알고 ' 해봐라 어디 ' 라고 했다.
나는 기세 좋게 폐가 안으로 성큼성큼 걸어갔다.
얼굴에 거미줄 가락이 계속 붙을 정도로 사람 출입이 없었던 것 같았다.
너무 어두워서 라이터를 찾는데 꽤 고생했다.
마당에 대충 떨어져 있을 줄 알았더니 건물 안에 있었다. 그리고 당당하게 라이터를 찾아 걸어 나오자
C랑 귀신 보는 친구만 빼고 모두가 오~~~ 하며 박수를 쳐줬다.
나는 씨익 웃으며 ' 긴장 빨아라 , 씹새야 ' 하고 라이터를 폐가 깊숙한 곳으로 던졌다.
C가 들어가길 머뭇하자 , 애들이 에이~~ 남자가 ~~ 하며 C를 도발했다.
그걸 들은 C가 뭐 저거 시발 라이터 가져오는 게 뭐 하며 폐가 안으로 들어갔다.
그리고 나머지 애들끼리 킥킥대면서 C를 기다렸는데, 들어간 C가 아무리 기다려도 나오지 않았다.
귀신 보는 친구가 이상하다 하며 폐가 쪽으로 걸어가다가 이런 시발 하더니 폐가 쪽으로 뛰기 시작했다.
그것을 본 우리도 놀라서 귀신 보는 친구를 따라 폐가로 뛰어갔다.
C는 내가 라이터를 찾았던 그 방에서 기절해 있었다.
' 아, 이 새끼 기절까지 할 거면 애초에 개기 질 말지 ' 하며 C를 깨우려하자,
귀신 보는 친구가 일단 나중에 깨우고 업고 나가자 고 했다.
C를 데리고 나와서 모두가 귀신 보는 친구에게 어떻게 된 거냐고 묻자
' 멀리서 봤을 때는, 많아야 한 두명 인 줄 알았는데 폐가 가까이 가니까 8명 정도가 담벼락에 붙어서 우리 쪽을 계속 쳐다보고 있더라
건물 안에는 그 새끼들 외에 열 댓명은 더 보였고 '
이전에 얘기했듯이 나는 기가 쎄서 아무 일이 없었던 것 같지만 C는 아니었나.
12
이번에는 과거 이야기보다 귀신 보는 친구와의 QnA를 적어보려 한다.
이야기를 쓸 때 마다 많은 분들이 친구 등록도 해주고, 쪽지로 자신의 사정을 얘기하며
친구에게 물어봐 달라고 부탁 하는데, 귀신 보는 친구가 본인은 영 능력자도 아니고 퇴마사도 아니라며 질문 받는 것을 싫어한다.
그래서 쪽지로 받았던 많은 질문 중에 몇가지만 추려서 올린다.
1 귀신은 정말 있는가, 사후 세계는 존재 하는가
있을 수도 있고 없을 수도 있다.
보이지 않고, 느껴지지도 않는 사람에게 굳이 귀신의 존재를 인식 시킬 필요는 없으며
나는 남들이 볼 수 없는 특이한 것들을 보고 , 말하고 , 느끼며 현실보다 더 합리적인 이유로 그들을 받아들이고 있다.
나 외에 다른 귀신 보는 사람들도 마찬가지 일 것이다.
보이지 않는 사람은 그냥 없다고 믿어라, 그게 편하다.
2 요즘 들어 가위에 자주 눌린다, 같은 꿈을 꾼다. 귀신의 영향인가
대부분은 그냥 꿈일 뿐이다.
그런 사람들의 이야기를 들어보면 아이러니하게도 등장하는 귀신들은 꼭 일본 영화나 공포 영화에 나오는 것 같은 일괄적인 모습을 하고 있다.
그 사람들이 본 귀신은 항상 몸을 이리저리 비틀고, 거지 같은 소리를 내는 이상한 모습으로 비춰지는데,
그런 것을 보면 그 사람이 기억하고 있는 의식이 꿈속에서 형상화된다는 것이 맞는 말인 것 같다.
공포 영화에 나오는 귀신도 물론 존재하지만, 보통은 육체를 잃은 의식의 발현이기에
그렇게 기괴한 모습을 하고 있지는 않다. 그리고 그렇게 자신을 어필하고 싶은 귀신이라면,
긴가민가하게 꿈 따위로 나오진 않을 것이다.
현실에서 제대로 , 확실하게 나타나겠지. 그때는 긴장하는 게 좋을 것이다.
3 귀신이 사람에게 해를 가 할 수 있는가?
아프면 귀신 탓 하지 말고 병원을 가라
귀신은 그렇게 쉽게 산 사람의 몸을 건드릴 수 없다.
숨 쉬는 이 곳보다 더 한 인과율이 그들에게 존재한다.
어떠한 행동을 하기 위해서면 그보다 더 한 인과율의 법칙을 감당해야 한다는 소리다.
만약 정말 귀신의 짓인 것 같다면, 아프기 시작하기 전부터 자신이 누군가에게 죽을 만큼 잘못한 것이 있나를 먼저 떠올려라.
그들의 인과율이란, 말 그대로 자신의 존재를 걸 만큼의 각오 일지도 모르니까.
4 귀신이 보이는 것 같다 . 어떻게 해야 하나
축하한다. 당신은 이제 혼자 있어도 심심하지 않게 되었다.
5 귀신의 언어가 따로 있는가 , 대화가 가능한 가?
물론 따로 있다.
그치만 아기들이 처음 말 배울 때, 의미도 모르고 어눌하게 얘기하는 것 처럼
육신을 잃은지 얼마 되지 않는 존재는 그들의 언어보다 살아 있었을 때의 언어가 더 익숙하다.
반대로 죽은지 오래 된 귀신은 그들의 언어에 익숙하기 때문에 대화가 불가능 하다.
그리고 오래 된 귀신은 본 적이 없다.
여기까지 추려봤다. 앞으로 비슷한 류의 질문은 자제해주길 바란다.
13
이 이야기는 귀신 보는 친구가 나에게 처음이자 마지막으로 해 준 본인이 겪은 귀신 이야기다.
여기에서는 귀신 보는 친구를 A라고 칭하겠다.
아주 오래 전, A와 나의 대화
' 호러 영화나, 괴담처럼 귀신이 사람을 죽일 수도 있냐 ? '
' 뭐가 궁금한데 또... '
' 내가 이런 거 묻는 게 한 두번이냐 '
' 쉽게 못 건드려.. '
' 허당이네 그럼.. '
고등학교 졸업 후에 우리는 뿔뿔히 흩어졌다.
머리가 좋지 않았던 B와 C는 지방 대학에 들어가 인천을 떠나게 되었고
D는 건설 현장에서 일하던 아버지를 따라 일을 배우러 다녔다.
A는 20살의 절반이 지날 무렵, 뜬금없이 친척이 있는 일본으로 간다고 했다.
그렇게 나 혼자 쓸쓸히 인천에 남게 되었다.
그리고 시간이 조금 더 흘러 A가 비교적 늦은 군 복무를 위해 한국으로 돌아왔고
오랜만에 만난 A는 무뚝뚝한 모습 그대로였다.
A와의 술 자리는 학창시절 이야기로 가득 채워졌다.
그렇게 한 잔, 두 잔 술병을 비워가며 그간의 회포를 푸는데, 이상하게 3차까지 와서도 일본에 있을 때 이야기를 하지 않았다.
' 일본에서 재밌는 일은 없었냐? 일본 여자 사겨봤냐? ' 라고 이것저것 질문을 던지고 나서야
녀석이 말 없이 소주를 두 잔 더 배우고 이야기를 하기 시작했다.
' 원령이나 원귀라고 알아? '
' 사람한테 해코지하고 그러는 거? 주온 같은데서 나오는? '
' 맞아, 비슷해 '
' 귀신은 뭐 쉽게 못 한다며 사람 해치고 그러는 거 '
' 인과율을 포기하면 가능해 '
' 그건 또 무슨 소리냐? '
' 영혼이 어떤 행동을 하기 위해서는 인과율에 따른 일정한 책임이 뒤따라, 패널티 같은 거야 ,
그 행동이 크면 클 수록 그 인과율에 따른 책임도 커지지 .
혼이 자신의 존재를 포기하고 인과율을 각오하면 원귀가 돼. 그리고 살아있었을 때의 한, 그리고 자신이 각오한 인과율이
크면 클 수록 그 힘도 강력해져 '
A가 일본에 있었을 때의 일이다.
녀석이 일본에 발을 디딘 순간 느낀 것은, 자신의 고국과는 다르게 비교도 할 수 없을 만큼 많은 수의 귀신들이 곳곳에 상주하고 있다는 것.
그리고 한국의 당 집보다 더 많은 숫자의 크고 작은 사당들.. 일본의 첫 느낌은 귀신의 나라 그 자체였다.
시간이 흘러 A가 일본의 언어와 생활에 익숙해질 무렵 , 녀석이 지내는 맨션과 같은 건물에 사는 Y라는 30대 초반의 남자와 친해졌다.
Y는 트럭으로 개인 화물 일을 하고 있다고 했고, 딱 보기에도 젊었을 때 꽤나 한가닥 하고 다녔겠거니 하는 외모를 가졌다.
뭐 A도 불량 학생이었으니 그 부분에 대해서 거부감이 있었던 것은 아니다.
그렇게 가끔씩 Y와 술을 마시며 가깝게 지냈고, 그 날 또한 Y와 동네의 작은 주점에서 술을 한 잔 하고 있었다.
Y는 술을 마시면 늘 자신과 나이 차이가 많이 나는 어린 동생 이야기를 했다.
여고에 다니는 2학년.
이쁘고 공부도 잘 한다는 항상 똑같은 이야기였다.
그는 그런 동생을 자랑스럽게 여기는 듯 했다.
여지없이 Y는 그 날도 자신의 동생 이야기를 했고 얼마 후에 동생의 생일인데, 선물로 무얼 주면 좋아 할지
요즘 애들 취향은 잘 모르겠다는 시시껄껄한 이야기를 했다.
A는 그저 그런 시시껄껄한 얘기가 귀에 잘 들어오지 않았다.
그 날 녀석은 주점에서 처음 보았다.
A 자신의 온 몸이 저릿저릿 할 정도로 강한 기운을 내 뿜는 혼령을.
A는 그 존재가 뿜어내는 위압감에 아무것도 할 수가 없었다..
원귀다.. 그것도 아주 지독한..
하지만 그 것의 형체를 보려고 해도 볼 수가 없었고 , 들으려 해도 들리지 않았다.
그저 느껴지는 것이라고는 여자라는 것.
아니 더 솔직하게 얘기하자면 무의식적으로 외면했던 것 같다. 보지도, 듣지도 않기 위해
A는 어릴 적 자신의 할아버지에게 들은 말이 떠올랐다.
수명이 다해서 죽은 사람보다, 제 명을 못 살고 사고 같은 것으로 죽은 사람은 장례를 치를 때 더욱 조심해야 한다는 말이다.
A는 그동안 수많은 원귀를 봤지만 이번만큼은 처음이었다.
도대체 어떻게 죽어야 저렇게 될 수 있는가.
Y의 이야기를 듣는 둥 마는 둥 하며 자리를 정리하려 했다.
하지만 그 자리를 정리해도 뭔가 달라질 것 같지는 않았다.
그 여자는 Y의 옆에 서서 미동도 하지 않았다.
A와는 관계가 없는 것이니 Y를 추궁해야 했으나, 다짜고짜 추궁한다고 하면 이상한 놈이 될 것이 뻔하니
그 여자가 없는 곳에서 무언가 대화를 해봐야 할 것 같았다.
그렇게 술자리를 정리하고 주점을 나왔다. 다행히 그 여자의 기운이 조금씩 멀어졌다.
따라오지는 않는다는 것이지.
맨션에 도착해 Y가 집에 들어 간 것을 보며 A도 자신이 사는 층으로 올라갔다.
열쇠로 현관을 열고, 들어가는데 현관 센서가 켜지지 않았다.
그리고 무언가 비릿한 냄새가 났다.
그와 동시에 느껴지는 한기.
어두운 방 안에 , 말 그대로 얼어 붙을 것 같은 한기가 가득 차다 못해 넘쳐 나는 느낌.
그리고 그 한기는 A에게 가까워졌다. 그리고 귓가에 나지막히 울렸다.
' 방해.. 하지..마.. '
수도 없이 귀신을 봤고 나이가 들며 그 귀신의 모습은 아무것도 아닌 것처럼 느껴지는 A였지만
어릴적에 느꼈던, 낯선 존재에 대한 두려움이 아닌 존재 자체가 주는 위압감.
농담식으로 이야기 중에 A가 얘기했다. 그때 내 생각이 잠깐 났다고 했다.
그 놈이 있었더라면 ..
시간이 흐르니 정신이 돌아오기 시작했다. 그리고 그 여자에게 말했다.
' 살아있는 존재에게 해를 가하면 너 역시 무사하지 못 할 것이다. '
그러자 그 여자가 꾸르륵 끄어어어억 하는 기괴한 소리를 내기 시작했다.
우는 소리인지, 무언가를 토해내는 소리인지 분간이 되지 않는 기괴한 소리.
A는 잠시 주춤했지만, 어느새 그 소리는 조금씩 사라졌다.
한기 또한 사라졌지만 비릿한 냄새는 여전했다.
먼저 전등 스위치 쪽으로 가서 불을 켰다. 방 안에 그 여자가 있었던 것 같은 곳에는 갈색 액체가 물을 흘린 듯 떨어져 있었다.
피였다. 그것도 붉은 빛깔이 아닌 오래 된 흑갈색의 피.
그치만 굳지 않은 채로 그 자리에 흘러 있었다.
그리고 그 피는 배란다까지 이어져 난간에서 끊겨 있었다.
A는 서둘러 계단을 내려가 Y의 집으로 갔다.
집 문을 두드리고 인터폰을 눌러대며 Y를 불렀다.
Y가 이제 막 잠자리에 누웠다 일어난 모습으로 짜증스럽게 문을 열었다.
A가 무슨 일 없냐고 묻자 , 밤에 무슨 실례냐며 화를 내고 문을 닫아버렸다.
녀석은 당황스러워 하며 돌아섰는데 귓가에서 다시 한번 들려왔다.
' 아직은.. 아니야.. 이제... 곧... '
A는 별 수 없이 방으로 돌아왔다.
그리고 종이를 여러 장 뜯어서 빽빽하게 귀신이 싫어하는 문자를 휘 갈겼다.
그 후에 테이프를 가지고 Y의 집 앞으로 갔다.
현관 문 위쪽부터 시작해서 둘러 싸듯이 종이들을 붙였다.
' Y가 쓸데없이 때버리지 않았으면 좋겠는데.. '
창문도 신경 써야 했지만 어쩔 수 없다.
일단 현관만 붙여 두고 그렇게 집으로 돌아왔다.
그리고 다음 날 아침, 녀석이 Y의 집 앞을 지나칠 때, 붙여 놓았던 종이들이
벽에 붙은 채로 전부 재가 되어 있었다.
손을 대니 힘없이 부스스 떨어져 나갔다.
종이가 붙어 있던 벽에는 그을음도 없었다. 사람이 한 짓이 아니라는 것.
A는 다시 집으로 돌아가 전화기를 들었다. 할아버지...
믿을만한 사람은 할아버지 뿐 이었다.
하지만 막상 할아버지와 통화를 하니 이런 현상들에 대해 얘기할 수가 없었다.
가뜩이나 타지에 있다고 걱정하는데, 더욱 걱정을 끼칠 수는 없었다.
결국 사사로운 안부만 물어보고는 전화를 끊으려는데
' 힘이 닿지 않는 일에 휘말리지 말거라 ' 라고 할아버지가 말했다.
A는 할아버지의 말에 당황했지만 대충 얼버무리며 알았다고 하고 끊었다.
그 후로 며칠동안 별 일 없이 잠잠했다.
Y도 별 일 없어 보이고, A도 그냥 괜한 걱정이었나 싶었다.
그렇게 방 안에서 쉬고 있는데 Y에게 전화가 왔다. 자신의 집에 저녁을 먹으러 오라고 했다.
A가 Y의 집에 도착하니, 왠 낯선 여자아이와 식탁위에 이것저것 차려져 있는 모습이 보였다.
Y가 얘기한 동생.
음식 냄새로 보아 Y의 솜씨는 아닌 것 같고, 그의 동생 실력인 것 같았다.
Y의 말대로 그의 동생은 수수한 듯 했지만 미인에 가까웠다.
그리고 몸에 배어있는 듯한 예의 바른 행동.
Y도 평소와는 달리 동생에게는 꽤나 자상한 듯 했고 동생 또한 그런 Y를 잘 따르는 듯 했다.
그 날은 다름 아닌 동생의 생일.
A가 동생에게 왜 생일인데 친구들과 보내지 않냐고 묻자 동생은 오빠가 꼭 생일은 Y 자신이나 가족들과 먼저 보내야 한다고
억지를 부려왔다고 했다. 팔불출이 따로 없다고 생각 했으나 , 저런 동생이면 그럴만도 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저녁을 먹고 Y와 맥주 한 잔 하며 그의 동생과 게임 같은 걸 하며 즐겁게 놀았다.
그러다 보니 시간이 어느새 늦어졌고, A는 자신의 방으로 돌아가겠다고 했다.
Y의 동생도 이제 가봐야 할 것 같다며 일어나자 Y는 늦었는데 자고 가라고 했다.
오빠 집에서 자면 깨워주지 않아서 늘 학교에 지각한다며 자리에서 일어났다.
동생은 Y에게 받은 큰 곰 인형을 안고 길을 나섰고, Y와 A는 동생을 배웅했다.
그리고 동생이 걸어가는 뒷 모습을 지켜 보는데, 여동생의 모습이 어둠속으로 조금씩 사라질 때 쯤
뭔가 이상하다.
A는 미친 듯이 동생의 뒤를 따라갔다.
Y는 갑자기 왜 그러냐며 A를 따라왔고, 한참을 뛰자 어두운 곳에서 Y의 여동생이 기절해 쓰러져 있는 것이 보였다.
Y는 놀라서 동생을 계속 깨우며 이게 무슨 일이냐며 소리쳤다.
A는 그때 보았다. Y의 동생이 저 멀리 그 여자에게 머리채를 붙잡혀 어떠한 저항도 못하고 끌려가는 모습을.
Y는 구급차를 불러 쓰러진 여동생을 응급실로 데려갔다.
사실 병원에 가도 별 수 없을 거라는 말을 하고 싶었지만, 그 상황에서는 통하지 않을 것 같았다.
A도 심상치 않아 보여서 같이 따라 나섰다. 그리고 어느 타이밍에 Y에게 그 여자에 대해 이야기를 꺼내야 할지 머뭇거리고 있었다.
응급실에 동생을 눕히고 의사에게서 외상이나 별 다른 증상이 없다, 가벼운 쇼크인 것 같다는 얘기를 들었다.
입원 할 정도는 아니니 잠시 링거를 맞고 휴식을 취하다 가라고 했다.
얼마 지나지 않아 Y의 부모님이 찾아왔다.
부모님은 Y에게 이게 무슨 일이냐며 묻는 듯 했고 Y가 자초지종을 설명하던 중 , 여동생이 깨어났다.
괜찮냐며 어떻게 된 일이냐고 물었는데 그의 동생은 갑자기 길을 가다가 숨이 막혔고 그 뒤로 기억이 나지 않는다고 했다.
그러면서 가슴 부분이 아프다며 고통을 호소했고, 동생의 블라우스에 피가 스며드는 것이 보였다.
그의 부모는 서둘러 간호사를 불러 상태를 봐 달라고 했다.
밖에서 기다리던 A가 Y에게 들은 이야기로는 동생의 가슴에 무엇인가로 긁은 듯이
깊게 패인 자국으로 ' 마지막 생일 축하해 ' 라고 적혀 있었다고 했다.
간호사들도 당황하며 분명 응급실에 실려와서 호흡을 돕기 위해 블라우스의 단추를 풀렀을 때 까지만 해도 그런 상처는 없었다고 했다.
A는 그 여자의 존재에 대해 이제는 말을 해야 한다고 생각했고, Y에게 먼저 예전에 큰 원한을 살 만한 일이 있었냐고 물었다.
Y는 그런 녀석이 한 둘이겠냐며 농담식으로 대답했다.
그러다 무엇인가 떠오른 듯 초조한 표정을 지었다.
A가 그런 일이 있었냐고 되묻자 Y는 정색하며 그딴 일 없다고 못 박았다.
더 이상 추궁하지 못하고 전에 할아버지와 통화했던 기억이 떠올라
일본 신사에 있는 스님 같은 사람들이 위령 같은 것을 해준다는 말을 들은 적이 있으니
무슨 일이 더 생기기 전에 신사를 찾아가라고 했다.
그렇게 Y를 두고 A는 집으로 돌아왔다.
그리고 집에 돌아와 잘 준비를 하고 누워서 잠에 들었다.
얼마나 잤을까, 갑자기 누군가 현관을 두드리는 소리가 들려 잠에서 깼다.
누구냐고 부시시한 목소리로 물어보니 Y였다.
Y는 다짜고짜 A에게 도와 달라고 말했다.
아까 신사 어쩌고 한 게 무슨 의미냐며 Y는 잔뜩 겁에 질린 상태였다.
A는 Y를 진정 시키며 무슨 일이냐고 물었다.
Y는 동생을 부모님에게 맡기고 집에 돌아왔다.
전등을 켜고 입고 있던 옷을 벗으려 하자 전등이 나가버렸다.
짜증을 내며 스위치 쪽으로 다가간 순간, 전등이 다시 들어왔고
켜졌다 꺼졌다를 반복했다.
그리고 그렇게 깜박이는 방 안에서 Y의 눈에 들어 온 것은
허리까지 내려오는 칠흑 같은 흑발의 긴 머리에 온통 검은 옷과 검은 빛깔의 그 여자.
여자의 머리는 피 같은 것이 굳어서 떡져 있었고, 머리카락으로 얼굴을 가린 채로 구부정한 자세에
손을 늘어 뜨리며 우는지 웃는지 온 몸을 기분 나쁘게 , 그리고 천천히 돌썩 거리고 있었다.
Y는 온 몸에 소름이 돋았고 미칠 듯한 공포감에 조금씩 뒷걸음을 쳤는데, 그 여자가 손을 뻗어 Y의 목을 움켜 잡았다.
어찌나 세게 잡았는지, 아무런 소리도 못 내며 발버둥 치고 있는데 그 여자에게서 소리가 들렸다.
' 이러..지마.. 이...러지...마.. '
그 소리에 Y는 혼절할 듯한 공포감을 느꼈고 눈 앞이 깜깜해지고 기절하기 직전 , 그 여자가 사라졌다.
Y는 한참을 넋을 놓고 있다가 하하.. 그래 환영이야 환영.. 하며 억지로 스스로를 다독였다.
그러다 화장실로 향했는데 거울을 본 순간 자신이 움켜잡혔던 목에 있는 손 자국과 깊게 패인 손톱 자국을 보았고
그것보다, Y의 뒤에 여전히 구부정하게 서 있는 그 여자를 보고 미친 듯이 뛰쳐나와 A에게 온 것이다.
Y는 A가 자신의 말을 믿지 못 할 거라 생각했는지 증거처럼 남아있는 목의 자국을 보여주었다.
A는 다시 한번 Y에게 누군가에게 크게 원한을 산 적이 있는지 물었다.
Y는 아까처럼 그딴 거 없다고 했지만 뭔가 석연치 않아 보였다.
' 일단 당신의 집에 가봐야겠네요 '
' 안돼.. 아직 그것이 있을지도 몰라 '
Y에게 혼자 다녀올테니 잠시 여기 있으라고 하자 무섭다며 A를 따라왔다.
Y의 집 현관을 열자 전에 그 여자가 A에게 찾아왔을 때처럼 기분 나쁜 비릿한 냄새가 났다.
역시.. 진짜로 Y를 찾아 온 건가 생각했지만 그 여자의 기운은 남아있지 않았다.
방 안은 깜깜했다. A는 전등 스위치를 찾았다. 본인의 방 구조와 동일하니 어렵지 않았다.
불을 켜자 방 안이 밝아지며 전경이 눈에 들어왔다.
그리고 그 여자가 있었던 곳으로 추정되는 자리에 A의 방과 동일하게 굳지 않은 흑갈색의 피가 쏟아져 있었다.
Y가 말한대로 화장실에도 똑같은 핏자국이 있었다.
' 이게 뭐야!!! ' 하며 갑자기 Y가 소리를 질렀다.
A는 Y가 있는 쪽으로 갔다.
Y가 동생에게 선물했던 곰 인형.
A가 바닥에 피를 신경 쓰느라 미처 보지 못했다.
' 아니... 이게 왜 여기에 있는 거지..? 이 모습은 또 뭐고.. '
분명 그 인형은 Y의 동생이 가져갔었다. 하지만 동생이 기절했을 때, 어디 갔는지 보이지 않았다.
Y의 방 안에서 발견된 인형은 온전한 모습이 아닌, 여기저기 처참하게 찢겨져 군데군데 솜이 튀어나온 모습이었다.
그 순간, A는 어디에선가 강한 기운이 느껴졌다.
그 여자가 다시 왔나 싶어 시선을 그 쪽으로 돌렸다. A의 시선이 머문 곳은 한 쪽 벽면의 TV.
그리고 TV 위에 놓여져 있는 DVD 캠코더가 작은 불 빛을 반짝 거렸다.
' 저거 녹화 되고 있는 건가요? '
' 그럴리가 없어, 한동안 쓰지 않고 그냥 올려둔 것 뿐인데 '
A는 그래도 확인은 해봐야겠다 말했고 Y는 케이블을 찾아 TV와 연결하기 시작했다.
녹화 되고 있을 리 없다고 한 그 캠코더를 연결하니 TV화면에 기분 나쁜 노이즈가 흘렀다.
그러다 화면이 나왔는데 그 화면 속엔 캠코더가 있던 그 자리에서 Y의 방 안이 촬영되고 있었다.
DVD 캠코더라기엔 너무나 심한 노이즈와 지직거림, 마치 오래전에 복사되고 복사되던 테이프를 보는 것 같은 화질이었다.
그리고 화면에 Y와 그의 동생이 등장하고 뒤이어 A도 등장했다.
아까 같이 저녁을 먹을 때 촬영된 것이다.
익숙한 장면이었다. 하나만 빼고.
그 여자, 그 여자가 동생의 뒤에 서서 기분 나쁘게 몸을 천천히 들썩이며 지저분한 밧줄로
Y의 동생 목을 칭칭 둘러 감았다. A는 그 장면에서 놀랄 수 밖에 없었다.
아까 전에 저런 상황이 있었다면, 자신이 느끼지도 보지도 못했을 리가 없었기 때문이다.
화면 속에는 그 여자가 밧줄로 Y의 여동생의 목을 감고 거세게 끌고 가려 했고,
동생은 고통스러워하며 끌려가지 않으려고 처참하게 저항하며 발버둥 치고 있었다.
그치만 화면 속 Y와 A는 아까와 다른 것 없이 즐거운 표정으로 저녁을 먹고 있었다.
그리고 소리가 전혀 나지 않던 화면에서 소리가 났다.
' 이러..지마.. 이러..지...마.. 살...려...주세...요... '
탁하고 기분 나쁜 목소리.
그 소리와 함께 재생이 중지되었다.
A가 다시 한번 봐야겠다며 Y를 보자 Y는 정신이 나갔는지 패닉상태가 되어있었다.
녀석이 Y의 어깨를 흔들며 소리쳤다.
' 다시 한번 봐야겠다고!!!! '
' 아.. 응?.. 그.. 그래 '
여전히 정신을 차리지 못한 Y가 캠코더를 다시 조작했다.
그러나 아까와는 달리 재생이 되지 않았다.
믿을 수 없게도 공 DVD 였 던 것이다.
A는 일단 DVD는 자신이 처리하겠다고 Y에게 DVD를 빼주길 요청했다.
캠코더에서 DVD를 빼는 Y에게 다시 물었다.
' 정말 누군가에게 크게 원한을 산 일이 없어요? '
' 없어.. 그런 거 없다고.. '
Y는 무엇인가 감추는 듯 했지만 A는 더 이상 캐물을 수 없었다.
무엇보다 아까처럼 더 이상 휘말리면 좋을 건 없겠다는 생각이 컸기 때문이다.
' 다행이네요, 원한 때문에 이러는 거라면 적당히 끝나지 않을 것 같거든 '
A가 방 안을 떠나려 하자 무섭다고 붙잡는 Y를 뿌리치고 하루빨리 동생을 신사에 데려가라는 말을 한 뒤 방으로 돌아왔다.
이후로 별 다른 이상은 없었다. 그 여자도 A의 앞에 더 이상 나타나지 않았고 Y랑 마주치는 일도, 연락이 오는 일도 없었다.
아마도 동생 때문에 본가로 돌아간 듯 했다. 그렇게 조용히 며칠이 흘렀다.
어느 날, Y가 전화를 했다.
A는 잠시 고민을 하다가 전화를 받았다.
' 우리 집에.. 함께 가줄 수 있어..? '
역시 별 일 없을 리가 없었다는 생각에 고민을 했던 것인데 , 그냥 무시하기엔 Y의 목소리는 그 어떤 기운도 느껴지지 않는
절망에 가득 빠진 듯한 목소리였다.
전화를 끊고 얼마 지나지 않아 Y가 왔다.
며칠동안 잠을 한 숨도 자지 못한 듯 한 초췌하고 피곤한 모습으로.
Y의 차를 타고 그의 본가로 가는 중에 A는 그동안 무슨 일이 있었냐고 물었고
Y는 집에 가서 전부 얘기해주겠다는 대답 외에는 그 어떤 말도 하지 않았다.
도착한 Y의 집은 연립 주택이 아닌 단독 주택 같은 곳이었다.
차에서 내려 그의 집 앞에 들어선 순간, 강한 한기와 불안하고 음습한 기운이 녀석의 온 몸으로 느껴졌다.
그 여자다.
A는 재빨리 집 안으로 들어갔다.
그 기운을 따라 안 방 같은 곳으로 들어가니 방 한가운데에 그의 동생이 환자처럼 누워있었고,
어머니가 딸을 걱정하듯 바라보며 앉아있었다.
그리고 , 그 여자 또한 구부정하게 팔을 길게 늘어뜨린 채 어머니 옆에 서 있었다.
A가 그 여자를 바라보자 천천히 한기와 함께 사라졌다.
어머니가 A를 발견하고 Y도 뒤 따라 들어왔다.
녀석이 본 동생의 모습은 참혹하기 그지 없었다.
그 수수하면서도 미인이었던 모습은 온데간데 없이
쇄한 노인의 쇳소리 같은 숨소리만을 내며 창백하다 못해 파란 빛이 도는 피부는
야위다 못해 뼈에 가죽만 씌운 것 처럼 느껴졌다.
A는 다가가 동생의 모습을 자세히 확인했다.
온 몸은 알 몸으로 시멘트 바닥에 끌려 다닌 것 마냥 거친 찰과상 투성이었고,
목과 양 손 , 발목에 붉은 빛 자국이 강하게 남아있었다.
그 붉은 빛 자국은 여기저기 창이 돋아 흉측한 모습이었다.
A는 역한 느낌을 억지로 참으며 이 지경이 됬는데도 병원에 왜 가지 않고 집에 방치하느냐고 따지듯이 물었다.
그러자 어머니가 병원에 있으면 가족들이 아무리 자주 찾아 간다고 해도 혼자 입원해 있는 시간이 무섭다며 딸이 거부했다고 한다.
A는 딸을 신사에 데려가지 않았냐고 물었고 그러자 Y가 따로 할 이야기가 있다며 불러냈다.
Y가 해준 이야기는 이렇다.
Y와 부모님은 Y가 겪은 이런저런 이야기를 듣고 동생과 함께 가까운 신사를 찾았다.
그 신사를 관장하는 듯한 스님이 나와서 동생을 보더니, 이 아이는 이곳에서 어찌할 수가 없다고 했다.
다른 신사를 찾아가도 ' 위험합니다.. 돌아가 주십시오 ' 라는 거절만 당했다.
몇번이고 거절당하자 Y는 신사의 사람들과 몇번을 싸웠고 여러군데의 신사를 돌아다니다
한 신사에서는 동생을 맡아주겠다고 했지만 엄청난 액수의 공양을 요구했다.
Y와 부모님은 돈이 문제가 아니었기에 그 신사에 동생을 맡기고 초조하게 기다리는데,
위령의식을 시작한지 5분도 되지않아 의식을 하던 스님이 동공이 풀려 흰 자위만 드러낸 채,
입에 거품을 물고 뛰쳐 나왔다.
' 난.. 아니야!! 아니라고!! ' 라는 말만 외치며 펄쩍이다 기절해버렸다.
놀란 Y와 부모님은 동생에게 달려갔는데, 그녀의 모습은 무엇인가에 놀라 한 없이 겁에 질려
아무것도 하지 못하고 멍하니 정면만 보고 있었다.
이게 무슨 일이냐며 동생을 흔들자 동생이 그대로 기절해버렸다.
한참후에 깨어난 동생이 해준 이야기는 이랬다.
위령 의식 때, 스님과 동생은 서로 마주보고 앉아있었고
본인은 눈을 감고 스님은 동생의 머리위에 손을 얹은 채로 불경 같은 것을 외웠다.
그러다 어느순간, 불경 소리가 멈췄고 머리에 얹은 손이 부르르 떨리는 느낌과 함께 힘이 너무 들어가서 머리가 아픈 나머지
살짝 눈을 떴는데, 그 여자가 구부정하게 스님 옆에 서서 스님의 뒷 목덜미를 강하게 잡고 있는 모습이었다.
그리고 스님에게 얼굴을 들이밀어 스님의 얼굴을 이리저리 둘러보며
' 이러..지마.. 이러...지..마.. 살려..주...세요... ' 라고 기괴한 목소리로 느릿느릿 말하다가
눈을 뜨고 있는 동생을 갑자기 바라봤다.
그리고 동생의 눈 앞에 얼굴을 들이밀더니 또 다시 기괴한 목소리로
' 이...러지마... 이러..지마.. 살려..주..세요... ' 라고 했다.
이런 상황에 동생이 극도의 공포감에 얼어 붙어있을 때
지저분한 밧줄로 스님의 목을 둘둘 감아 방 안 여기저기를 끌고 다녔고 , 스님은 죽을 듯이 괴로워하며 버둥거렸다.
이상한 건, 분명 저쪽에서 스님은 그 여자에게 목이 감겨 끌려 다니는데 본인의 앞엔 여전히 정신을 잃은 것 같아 보이는
그 스님이 정좌를 한 채로 앉아있었다는 것이다.
동생도 그때 정신을 잃은 것인지 어떤것인지 기억이 나지 않는다고 한다.
그렇게 별 수 없이 동생을 데려왔지만 동생은 계속 악화됬다.
병원에 데려가려 했지만 동생은 강하게 거부했고, 동생이 깨어 있을 땐 그 여자가 눈 앞에 있다,
그 여자가 내 목에 밧줄을 감아 나를 끌고 다닌다 하는 소리를 하다 지쳐 잠이 들고
눈을 뜨면 또 다시 같은 상황의 반복.
여기까지 들은 A는 Y에게 다시 한번 물었다.
' 정말로 누군가에게 원한을 살 만한 일이 없어요? '
Y는 한참을 침묵했다. 답답해진 A가 동생을 저렇게 죽어가게 두고 싶으면 마음대로 하라고 화를 냈고
그제서야 Y는 천천히 입을 열기 시작했다.
' 철없던 시절에 저지른.. 커다란 실수였어.. '
당시 Y가 고등학교 2학년이던 시절,
Y는 3학년들조차 싸움으로 잡아버린 학교의 우두머리였다.
그는 상남 2인조에 나오는 만화같이 학교를 집단적으로 크게 이끌고 다녔고 그 집단의 리더로 있었다.
Y와 같은 반 학생 중에 전교에서 왕따를 당하던 B 라는 여자애가 있었는데, 집 안이 어려운 듯
지저분한 교복 차림과 쾌쾌한 냄새, 그리고 매일 감지 않은 머리는 따돌림을 당하기에 충분했었나 보다.
B는 이쁘지 않은 평범한 얼굴의 여학생이었지만, 가슴이 비 정상적으로 커서 교복 블라우스 단추를 잠그지 못하고
늘 열린 블라우스 속에 티셔츠를 입고 다녔다.
짖궂은 아이들은 B를 벽에 세워두고 가슴을 주물럭 거리며 놀았고, 싫다고 하거나 저항을 하면 폭력을 가했다.
B가 이 정도의 왕따를 당하면서도 꿋꿋히 학교에 나왔 던 이유 중 하나가 Y의 패거리에 있던 C 때문일지도 몰랐다.
C는 잘 생기고 여학생들 사이에서도 인기가 참 좋았다.
B 또한 C를 짝사랑했다.
아이들이 B의 일기장을 뺏어서 보다가 C를 좋아한다는 내용 때문에 알게 됬고 너 같은게 감히 C와 어울리냐며
그 또한 괴롭힘의 거리가 되었다. 그리고, 비극적인 사건은 B의 생일 날 일어났다.
Y가 교실에 갔더니 책상에 앉아있는 B에게 생일을 축하한다며 아이들이 쓰레기통을 들이붓고
온갖 쓰레기와 오물들을 B와 B의 책상 위에 던져 댔다.
그 모습을 본 Y가 B에게 다가갔고, B를 괴롭히던 아이들은 Y를 보자 경직되었다.
Y는 보통의 학생들에게는 공포의 대상이었다.
' 뭐 하는 거냐 너희? '
' 아니.. 그냥.. 오늘 B 생일이라 축하... '
아이들은 Y의 눈을 쳐다보지 못하고 기어 들어가는 소리로 대답했다.
' 병신 같은 짓 하지 말고 꺼져 '
아이들은 그 말에 놀라 줄행랑을 쳤다.
반에 있던 다른 아이들은 숨죽이며 책상 만을 바라보았다.
' 꺼지라는 말 안들리냐? '
위협적인 Y의 말에 반의 모든 아이들이 밖으로 나갔다.
' 괜찮냐? '
' 고맙습니.. 아니.. 고마워.. '
B 또한 Y를 다른 아이들처럼 두려워했다.
' 너 , 오늘 생일이냐? '
' 으..응.. '
' 이따가 학교 끝나고 우리 집에 가자 , C도 올 거야 '
' .... '
' 갈 거야 말 거야 '
' 가.. 갈게.. '
B는 C도 온다는 말에 수업이 끝난 후 Y를 따라 나섰다.
Y의 집에 도착하니, C를 포함한 네 명의 아이들이 담배를 피우며 만화책 따위를 보고 있었다.
B는 C가 있는 것을 보고 부끄러운 듯한 웃음을 참지 못하고 얼굴을 돌렸다.
Y와 B가 집에 들어서자 집 안에 있던 아이들이 먹을 것 좀 사오겠다며 슬금슬금 나가기 시작했다.
그 날, B는 최악의 생일을 맞게 되었다.
평소 Y는 왕따지만 가슴이 컸던 B를 보며
' 쟨, 쌩 아다 일거야, 한번 따 먹어볼까? ' 라고 심심할 때 마다 얘기했는데
결국, 그 더러운 발언을 행동으로 옮긴 것이다.
Y는 억지로 B를 범하기 시작했고 B는 저항을 했지만 Y의 힘을 당해 낼 순 없었다.
버둥거리는 B의 얼굴과 배를 주먹으로 내려치며 가만히 있지 않으면 죽여버리겠다는 협박도 했다.
' 이러지마.. 이러지마.. 잘못 했어요.. 살려 주세요... '
B가 할 수 있는 말은 이것이 전부였다.
Y의 이야기를 듣던 A는 멈칫했다.
예전 Y의 집에서 DVD를 틀었을 때 났던 소리.
그 후로 B 는 어떻게 되었냐고 묻자 Y는 한참을 뜸 들이다 얘기했다.
그런 일을 당한 후에도 B는 학교에 꾸준히 나왔다.
전보다 더 어두워진 모습으로.
그런 B를 보며 Y는 병신이라며 비웃었다.
비극은 거기서 끝나지 않았다.
C가 B를 따로 불러냈다.
' 너, 나 좋아한다며? '
' ... '
' 싫어하냐? 좋아한다고 들었는데 아닌가보네 '
' 아.. 아니야.. 조.. 좋아해.. '
' 근데 말이야 너.. Y랑 했잖아 '
' ... !!! '
' 나를 좋아한다고 하면서 어떻게 Y랑 그럴 수 있어? '
' 미.. 미안해.. '
' 미안할 게 뭐 있어, 나랑도 하면 되지 '
' 그.. 그건.. '
' 왜? 싫어? , 이따가 수업 마치고 3시쯤에 구 교사 앞으로 와 '
B는 구 교사 앞에서 C를 만나 건물로 들어갔고 그곳에서 C에게 또 한번 반 강제적으로 당하게 되었다.
그치면 C는 생각보다 더 나쁜 놈이었다.
C와 가까이 지내던 네 다섯의 패거리가 갑자기 들이닥쳐서 구 교사에 있던 더러운 밧줄로 B를 묶고
소리를 지르지 못하게 입을 틀어 막았다.
한 놈은 비디오로 B를 촬영했고
다른 패거리들은 번갈아가며 B를 범했다.
그렇게 B는 아무런 저항도 하지 못하고 자신의 생일 날, 그리고 그 후에 또 한번 자신이 짝 사랑 하던 이에게 고통을 받았다.
그 후로 B는 더 이상 학교를 나오지 않았고 들리던 소문에 의하면
건물 옥상에서 투신했다는 소문만 들려왔다.
이야기를 다 마친 Y가 담배를 피우며 깊게 한 숨을 쉬었다.
역겨웠다.
역겨운 기운이 발 끝에서 부터 차올라 혀 끝까지 밀려왔다.
A는 Y를 한방 세게 갈기고 싶었지만 참았다.
' 이번 일은 도와주고 싶은 마음도, 생각도 들지 않아 , 그 여자에게 죽던지 말던지 마음대로 해
모두 당신이 저지른 일이니까 '
' 알아.. 그치만.. 내 동생은.. 내 동생은 아무 잘못도 없잖아!
내 동생을 봐서라도.. 제발.. 도와줘 부탁할게 '
Y가 울먹이며 무릎을 꿇고 이마를 땅에 부딪히며 A에게 빌었다.
그치만 도움을 주고 싶지 않은 마음은 조금도 변하지 않았다.
' 어디를 가든지 죽어버리라고, 당신. '
A는 돌아가기로 마음을 먹고 그의 동생의 상태를 잠깐 확인하려 동생이 있는 방으로 다시 갔다.
그의 어머니는 손님인 나를 위해 무언가를 준비하는 듯 했다.
눈을 감고 불안한 듯, 시체 같은 모습으로 잠들어 있는 그녀.
' 미안하다.. 난 널 도와줄 수 없어.. '
속으로 생각하고 뒤를 돌아섰는데 목소리가 들려왔다.
' 살려주세요.. '
그 소리에 뒤를 돌아보니 Y의 동생이 눈을 뜨고 힘없이 A를 바라보고 있었다.
' 오빠가 집에 왔을 때, 그 여자가 사라졌어요.. 살려주세요..
살고 싶어요.. 제발.. 부탁 드릴게요 '
울먹이며 간절하게 부탁하는 동생의 모습.
그렇게 한참을 동생을 바라보다가, A는 차마 뿌리치지 못하고 그녀의 곁에 앉아 그녀의 머리를 쓰다듬었다.
' 걱정 하지마, 내가 반드시 살려줄게 '
고맙습니다 라는 대답과 함께 그녀가 다시 잠들었다.
A는 방에서 나와 Y에게 다가갔다.
' 흥신소든 뭐든 B의 유해가 어디 있는지 ,그리고 그 C라는 새끼 행방 , 당장 찾아와 '
그 후로 A는 집에 돌아가지 않고 동생의 곁을 지켰다.
그의 부모님은 A를 볼 때마다 괜히 불편하게 해서 죄송하다고 수시로 이야기 했다.
아마 그 집에 머무르면서 죄송하다는 말만 수 백번을 넘게 들은 것 같다.
동생이 깨어 있을 땐, A에게 힘없이 말을 걸어왔다.
' 오빠.. '
' 일어났니? '
' 우리 오빠는 어디 갔어요? '
' 너 낫게 해 줄 약 구하러.. '
동생은 그런 게 어딨냐며 힘겹게 웃으며 말했다.
A는 말 주변이 없었다. 그녀가 학교 다닐 때 이야기나, 친구들 이야기를 할 때면
말 없이 들어주는 것이 A의 일과였다.
가끔 잠들어 있던 동생이 고통스러운 듯한 신음 소리를 내면 여지없이 그 여자가 찾아왔다.
그럴때마다 A는 눈을 감고 동생의 가슴에 손을 얹고 조용히 기다렸다.
눈을 감고 있는 상태에서 그 여자가 코 앞에 내 얼굴을 마주하고 있다는 것도 느꼈고
가끔은 숨이 막히는 것 같은 느낌도 받았다.
A 때문에 그 여자는 동생에게 손을 대지 못하는 듯 했다.
그 여자는 한참을 한기와 기분 나쁜 기운을 뿜어내다 사라졌다.
그 여자가 사라지면 Y의 동생이 깨어났다.
' 오빠.. 그 여자 왔었나요? '
' 응 '
' 고마워요 '
그렇게 그 여자가 왔다 사라졌다를 반복하길 며칠,
생각보다 오래 걸리지 않은 시간에 Y가 돌아왔다.
시간을 더 지체할 순 없었기에 A는 바로 Y를 따라 나섰다.
Y가 알아낸 것은 B가 그 뒤로 건물에서 투신했다는 소문이 사실이었고
부모나 친척도 없이 오랫동안 혼자 살 던 아이였다고 했다.
B의 유해는 알려지지도 , 지명도 , 이름도 없는 작은 신사에 있다고 했다.
' C 라는 자식은? '
' 죽었어.. '
' 살아 있다면 오히려 신기 한 거겠지 '
' 죽기전까지 내 동생처럼 온 몸에 알 수 없는 상처로 시달렸고, 이상한 여자가 자길 죽이려든다는 등 정신 발작을 일으켰나 봐
그래서 정신 병원에 감금되다 시피 지내다가 결국 아무 원인도 찾지 못하고 죽었다고 해 .
그 녀석 부모도 병원으로 향하는 와중에 원인 불명의 교통사고로 죽었다고 하더군 '
그 부모의 사고도 , 그 여자의 짓 일거라는 직감이 강하게 왔다.
그리고 알 수 없는 불길한 예감이 스쳐 지나갔다.
도착한 곳은 크지도 작지도 않은 산.
오랫동안 사람의 출입이 없었던 듯 사람들이 지나다니며 자연스레 만들어졌던 산 길이
다시 수풀과 덩쿨로 우거져 있었다.
한참을 산 길을 따라가니 신사가 있음을 알려주는 도리가 보였다.
ㅁ 도리 : 두 개의 기둥을 세워 만든 신사의 입구
이상한 건, 무언가를 봉인해 놓은 것처럼 굵은 동앗줄과 부적 같은 걸 같이 엮어
도리의 양 기둥에 가로로 묶어 놓았다.
안 쪽으로 더 들어가니 스님 한 명이 빗자루 질을 하고 있었다.
' 이곳은 참배를 하는 곳이 아닙니다. 어떻게 오셨는지 모르겠지만 돌아 가주십시오 '
A는 스님에게 다가갔다.
' B라는 여자를 찾아 왔습니다. '
' 당신은.. '
스님은 잠시 침묵을 지키다가 안내 하겠다고 앞장섰고
A와 Y는 스님의 뒤를 따라갔다.
스님이 안내 한 곳은 B의 유골이 있는 재단.
재단은 처참한 모습이었다. 재단을 장식하던 비목, 불상도 모두 부서져 있었다.
A가 그 앞에 선 순간 울컥 하는 강한 느낌과 함께 , 그리고 부서진 재단에서 느껴지는 B가 가진 서러움과 슬픔에 눈물이 나왔다.
' 어째서.. 왜.. 이렇게까지.. 도대체 왜.. '
A는 말을 잇지 못했다.
그리고는 스님에게 왜 재단을 부서진 채로 방치했냐며 소리를 질렀고 스님은 혼잣말 하듯 조용히 얘기했다.
' 당신도 아시겠지만, 이 아이의 재단은 몇 번이고 부서져 버렸습니다. 새로 만들고 세워도 금방 다시 부서지더군요 '
스님은 A를 지나 재단쪽으로 가서 부서진 상자 같은 곳에서 유골이 담긴 항아리를 꺼냈다.
스님이 항아리를 열자 , 유골이 있어야 할 항아리에 모래가 가득 들어있었다.
' 세 번째인가 재단이 부서졌을 때, 항아리가 깨지고 불이 붙을 수 없는 뼛 가루에 말이 안되게 불이 붙어 완전히 사라져 버렸지요.
이 아이가 어디서 무엇을 하는지, 지독히도 인과를 겪고 있는 것 같습니다. '
그 말을 들은 Y가 물었다.
' 인과라는 게 도대체 뭐야? '
' 혼령들은 그들의 세상으로 가기 전에 여러가지 이유로 이곳에 머무릅니다.
그런 와중에도 살아 있을 때와 마찬가지로 다른 혼령을 핍박하고 다른 혼령 위에 군림하려 드는 혼령도 있을겁니다.
시덥지 않은 장난 따위를 치려는 혼령도 있을 것이고, 생전의 원한 따위로 살아있는 존재에게 해를 입히려는 혼령도 있겠지요.
그치만 법관도, 경찰 같은 것도 그들에게 있을 리 없겠죠. 인과는 그들에게 일종의 질서 입니다.
자신의 행위에 대해 그 이상의 벌이나 고통을 스스로 받게 하는 것 입니다.'
스님이 부서진 재단에서 향을 꺼내 향을 피우며 얘기를 이어갔다.
' 이 아이가 어디서 무엇을 하는지 모르지만, 본인 육신의 흔적조차 소멸 될 정도의 인과를 받고 있는 것을 보면
지금의 존재 또한 무사하지는 않을 것 같아 걱정스럽군요 '
Y와 A는 더 이상 아무 말도 할 수 없었다.
스님에게 인사를 한 뒤 신사를 나와 산을 타고 왔던 길을 내려갔다.
' B는 그렇게도 우리가 원망스러웠을까.. '
' 아가리 찢어버리기 전에 닥쳐 '
' 무엇이 그렇게.. '
' 시끄러우니까 재잘대지 말고 닥치라고 '
A는 Y의 말을 끊어버렸다.
녀석에게 Y는 더 이상 인간으로 보이지 않았다.
그저 B가 가지고 있는 원한과 인과의 일부를 그녀의 재단에서 느꼈을 때, 알 수 없는 슬픈 감정이 밀려왔다.
' A, 나는 잠시 들를 곳이 있으니 먼저 동생에게 가주지 않겠어? '
A는 Y의 말에 대답도 하지 않고 그의 동생에게 발길을 돌렸다.
C의 일가족을 몰살 시킨 여자다. 동생을 오랫동안 혼자 두면 위험하다는 생각에 초조해 하며 발 길을 서둘렀다.
그렇게 Y의 집으로 돌아가는 와중에 전화가 왔다. Y였다.
' A 군 '
' 뭐요 '
' 내가 죽으면 B도 내 동생을 용서해줄까.. '
' 당신 그게 무슨? '
' 부모님에게도.. 동생에게도.. A군이 잘 둘러 대줬으면 좋겠어 '
' 이봐, 당신 지금 무슨 짓을 하려는 거야 !! '
' A에게 이런 부탁해서 미안해, 난 누군가에게 피해만 주고 사네 .. 내 동생 잘 부탁해.. '
전화기를 어딘가에 내려놓는 소리, 그리고 쿵 하는 소리.
이어 들리는 사람들의 비명 소리.. B에 대한 사과의 의미였을까?
동생 대신 자신의 목숨으로 대신하자는 등가교환의 의미였을까?
Y는 B처럼 스스로 몸을 던져 자살했다.
A는 고민했다. Y에게 가야 하나 Y의 동생에게 가야 하나.
녀석은 일단 Y가 무사하길 빌며 동생에게 발길을 돌렸다.
Y가 죽는다면 그것이 그의 마지막 유언이고 부탁이 될 테니.
Y의 집 앞에 도착하자 녀석은 혼란스러운 상황이 자동으로 정리되었다.
그 여자가 왔다.
한기가 아닌.. 집 밖까지 지독한 살기를 내 뿜으며.
A는 서둘러 집 안으로 들어갔다.
집 안은 사우나에 온 것처럼 숨쉬기가 곤란할 정도로 어마어마한 살기로 가득 차 있었다.
Y의 부모님이 기절해 있는 것이 보였고, 동생이 있는 방으로 들어가자
그 여자가 동생의 목을 움켜잡고 들어 올린 채 서있었다.
동생은 버둥거리지도 않고 축 늘어져 시체처럼 그 손에 매달려 있었다.
' 그만둬!! 아무 상관도 없는 애한테 뭘 어쩌겠다는거냐!! '
A가 소리쳐도 그 여자는 아무런 반응이 없었다.
그러는 중에도 점점 동생은 조금씩 기운이 사라져갔다.
이대로 두면 정말 죽겠다 싶어서 녀석이 달려가 그 여자의 어깨를 잡았다.
형체를 스스로 만든 혼령.
Y의 동생 만큼이나 이 여자도 위험했다.
그 여자의 어깨를 잡자, 차가운 기운을 넘어서 손이 타버릴 듯 한 냉기가 느껴졌다.
드라이 아이스보다 더 차갑고 뜨거운 느낌.
그 여자는 동생을 내려놓고 A에게 몸을 돌렸다. 그 여자의 몸에서 지저분한 밧줄이 솟아나와
A의 몸을 휘감고 목을 조르며 감겼다. B를 고통스럽게 했던 그 밧줄.
밧줄이 목에 조여드는 힘이 너무 강해 A는 금방이라도 정신을 잃을 것 같았다.
그때 그 여자의 몸에서 소리가 들려왔다.
' 이러..지마.. 이..러지마... 잘..못...했어요... 살려..주..세요... '
' B... '
A가 나지막히 그 여자의 이름을 말한 순간, B의 혼령은 멈칫 하며 밧줄에 힘이 풀렸다.
' 도대체 왜 이런 짓을 하는 거냐 '
A의 물음에 B는 그제서야 천천히 대답했다.
' 놈들은.. 나에게.. 모든 것을.. 앗아갔다.. 소소한.. 기쁨.. 애정.. 기대.. 희망까지... '
' 그래서 기다렸나? 저 아이가 네 나이였던 17살이 될 때까지? '
잠깐의 침묵이 흘렀다.
' 예상 했던 대로, Y의 눈 앞에서 저 아이를 먼저 죽일 생각이었군.
그런데 미안해서 어쩌지? Y는 이미 죽어버렸을지도 모르는데 ,
Y는 당신에 대한 사과의 의미로 그리고 자신의 동생을 살려 달라는 의미로 당신과 똑같이 투신했다. '
' 이젠... 상관 없다.. '
B의 혼령이 다시 동생에게 다가갔다.
' 그만둬!! 더 이상 인과를 쌓지 말란 말이다 !! '
A의 소리침에 B의 혼령이 다시 멈춰 녀석을 바라보았다.
' 당신의 유해도 사라져버렸어 , 더 죄를 지으면 정말로 소멸 되어 버릴지도 몰라 '
' 그런.. 것을.. 두려워.. 했을..거라.. 생각.. 해.. ? '
' 왜 그렇게 긴 세월을 고통스러워 하는거지.. 한번쯤은.. 한번쯤은.. 죽기전까지 그렇게 살았으면 한번쯤은
이기적이어도 되는 거잖아 한번쯤은 자신만을 위해서 살아도 되는거잖아
복수 같은 것에도 , 그 무엇에도 얽매이지 않고 자신을 위해 살아도 되는 거잖아 .
당신, 더 이상 어떤 존재로도 남아 있지 못하게 된 단 말이다. '
A가 절규 하듯 애원 하듯 B에게 외쳤다.
그리고 계속 밧줄에 목이 감겨 서서히 정신도 희미해졌다.
' 이미... 늦..었다... '
B가 다시 몸을 천천히 움직였다. 이젠 정말로 동생도 어쩌면 자신도 죽을지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 살아.. 있을 때... 단.. 한번도.. 그런.. 말을.. 들어.. 본 ..적이 없다.. 너무.. 늦어..버렸네... '
A의 몸에 감긴 밧줄이 풀리고 B가 서서히 사라졌다.
그렇게 모든 것이 끝난 것일까.
A는 기절해 있던 Y의 부모님을 깨워 그의 부모님에게만 Y의 소식을 전했다.
후에 동생은 건강을 되찾았고 A는 도망 치듯 한국으로 잠시 돌아왔다.
한국에 오자마자 A는 할아버지 댁을 찾았다.
할아버지는 터미널로 마중을 나와있었다. A를 보자마자 A를 안아주었다.
' 수고했다. '
이 한 마디에 A는 어린 아이처럼 울었다고 한다.
귀신 보는 친구 이야기 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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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포잼민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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