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3.

 주민규는 사내의 질문에 선뜻 답하지 않았다. 고석재는 담담한 표정으로 말을 이었다.

“...제가 왔을 때부터 이미 문이 다 열려 있었습니다. 저도 여기에 온지 얼마 되지 않았습니다. 여기 집주인... 그러니까 주종호씨와 가족 되시는 분입니까?”

 사내는 주머니에서 수첩을 꺼내들며 주민규 쪽으로 몸을 숙였다. 안 그래도 체구가 큰 데 현관 계단 위에서 내려다보고 있으니 주민규는 위압감을 느꼈다.

 주민규는 한걸음 더 물러서며 말했다.

 “제 작은 아버지이신데, 경찰이세요?”

 고석재는 수첩을 살짝 내렸다가 주머니에 넣었다.

 “이런, 아닙니다. 저는 XAX보험에서 나왔습니다.”

 고석재는 주머니에서 명함 하나를 꺼내 주민규에게 보여주었다. XAX 보험, 보험 조사실장 고석재라고 쓰여 있었다. 주민규는 어머니가 만났다는 사람이 떠올랐다.

 “제가 너무 제 생각대로 해서 놀라셨군요. 마음이 급했습니다. 이상한 사람은 아닙니다. 그게...”

 고석재는 말을 멈추고 다시 집안으로 들어가며 말했다.

 “가족 되시면 혹시 이걸 보신 적 있으십니까?”

 주민규는 고석재의 행동에 뒤를 돌아봤다. 친구는 어리둥절한 표정으로 어깨를 으쓱해보였다. 집 안에서 다시 고석재가 외쳤다.

 “이걸 한 번 확인 해보셔야할 겁니다. 좀 중요한 겁니다.”

 주민규는 집 안에서 들리는 독촉에 내키지 않은 걸음으로 집 안으로 들어갔다. 뒤에서 김찬의 씨근거리는 소리가 들렸다.

 현관문을 지나자 바로 오른쪽엔 거실이 보였고 정면에는 고석재가 웬 방문 앞에 서있는 것이 보였다. 거실은 소파와 탁자, TV외에 다른 가구는 없었는데, 오랫동안 방치 되어있었는지 먼지가 눈에 보일만큼 쌓여있었다.

 바닥을 보니 굳이 신발을 벗을 필요는 없어 보였다. 방바닥 역시 오랫동안 쌓인 먼지로 신발 자국이 보였다. 앞에 있는 아저씨의 신발에서 찍힌 것이겠지.

 주민규는 곁눈질로 왼쪽을 보자 닫혀 있는 방문이 보였다. 역시 먼지가 가득 쌓여있었다.

“오랫동안 사람이 없었나 보네.”

 뒤에서 김찬이 재채기를 하는 소리가 들렸다. 뒤쪽에서 먼지가 크게 올라 주민규는 손으로 입을 막았다.

 고석재가 재킷을 끌어올려 입을 가리고 말했다.

 “여기 뭔가 이상하지 않습니까?”

 주민규는 집 안쪽으로 걸음을 옮겼다. 왼편에 주방이 보였고 그 옆에 다시 문이 하나 있었다. 고석재의 뒤에도 문이 하나 있었는데, 살짝 열린 틈으로 보건데 화장실로 보였다. 먼지가 지나치게 많이 쌓여있다는 것 말고는 딱히 이상한 점은 없었다.

 “뭐가요? 먼지가 많은 거 말고는 모르겠는데... 그리고 아저씨, 경찰도 아니면서 이렇게 막 들어와도 되는 거예요?”

 주민규는 말을 하다 보니 먼지를 삼키며 재채기를 했다. 혹시나 하는 마음에 주방 옆 방문을 살짝 열어 안을 보았다. 책상과 의자, 장롱만 보이는 딱히 특별할 게 없어 보이는 작은 방이었다. 작은 아버지는 가난하다기보다는 검소한 분인 것 같았다.

 고석재는 주민규가 열어본 방문의 맞은 편 벽을 톡톡 치면서 말했다. 벽은 화장실 문에서 조금 앞으로 돌출되어있었고, 그림 액자 하나가 걸려있었다. 시들어있는 해바라기 그림이었다.

“제가 말한 곳은 여기입니다. 작은 아버님과 만나셨을 적에 혹시 이런 거 보신 적 없습니까?”

 고석재는 수첩을 꺼내 펼치며 검은 꽃 모양을 가리켰다. 그리고 손가락 옮겨 그 옆에 그려진 간략화 된 기호도 가리켰다.

 주민규는 고개를 저었다. 작은 아버지는 딱 한 번 봤었고 대화를 나눈 적은 더더욱 없었다. 하물며 이런 이상한 도형을 볼 일은 없었다. 주민규는 고개를 들어 답하려는데, 뒤에서 김찬이 말했다.

“어? 이거 여기 오면서 아까 다른 집에서도 봤던 건데? 그게 뭔데요?”

 주민규와 고석재가 고개를 돌려 김찬을 보았다. 김찬이 말을 이었다.

“아까부터 내가 불길하다고 했잖아. 저거 때문이었어.”

 주민규는 고개를 돌려 고석재를 바라보았다. 고석재는 조용히 손가락을 들어 그림의 한 부분을 가리켰다. 해바라기가 담긴 화병이었는데, 거기에 아까 보여주었던 도형이 마치 화병에 쓰인 글씨처럼 그려져 있었다.

 김찬이 말했다.

“그러니까 그게 뭔데요? 답답하니까 뜸들이지 말구요.”

 고석재는 수첩에서 어떤 페이지를 펼쳐 보여주었다. 신문지에서 오려낸 남자 사진과 메모가 적혀있었다. 복혼회 교주라고 적혀있었다.

“복혼회 혹은 복혼교라고 불리는 종교에서 쓰는 표식입니다. 혹시 들어보셨습니까?”

“그냥 사이비 종교 정도로 알고 있어요. 근데 그게 무슨 상관이죠?”

 주민규는 쏘아붙이듯이 말했다. 고석재의 생각에 따라 보험금이 보험 사기로 날아갈 수도 있다는 생각이 들자 조바심이 났다.

 “보험 사기로 의심되는 보험금 집행 건이 있었는데, 여기에 그 종교가 관련이 있었습니다. 그리고 그... 성함이...?”

“저는 주민규라고 합니다.”

“저는 김찬...”

 고석재는 김찬의 말을 끊으며 말을 이었다.

“주민규 씨의 작은 아버지께서... 그러니까 주종호 씨가 이 단체와 깊게 관련 되었다고 추측하고 있습니다. 이곳을 찾는 데도 몇 달이 걸렸습니다. 여기에 그 답이 있기를 바랍니다. 그리고...”

 고석재는 주먹을 쥐고 그림 아래쪽의 벽을 가볍게 두드려 보았다. 마치 나무문을 두드리는 것 같이 똑똑 하는 소리가 났다. 주민규는 벽이 아니라는 직감이 들었다.

 고석재는 주머니에서 열쇠를 하나 꺼내 단단하게 쥐었다. 그리고 열쇠의 이 부분을 벽에 대며 말을 이었다.

“저는 직업 윤리를 넘어 개인적인 의심이 드는 부분이 있습니다. 제가 만난 피험자 가족 중에는 오히려 반기는 기색도 있었습니다. 그들이 보험금을 타는 것도 아닌데 말입니다.”

 고석재가 열쇠에 힘을 주어 벽을 긋기 시작했다. 벽지 찢기는 소리와 나무판자를 긁는 소리가 났다.

“보험 사기로 의심은 되지만 피험자들이 하나같이 협조를 안 하고 있는 터라 증거 확보가 쉽지 않습니다.”

 고석재는 잠시 말을 멈추었다. 그리고 그림 액자를 옆으로 치우고 다시 벽지에 긁어갔다. 그가 벽지를 다 긁고 나자 사람 한 명이 간신히 지나갈 것 같은 직사각형이 그려져 있었다.

 고석재는 벽지의 한쪽 끝을 잡아 천천히 뜯어내며 말을 이었다.

“해서 증거 확보가 어려운 만큼 저도 좀 과격해져야할 필요가 있다고 생각했습니다.”

 고석재가 벽지를 완전히 찢어내자 검은 문이 하나 나타났다. 손잡이도 없고 어떤 문양도 없는 평평한 문이었는데, 문 중간에는 열쇠 구멍만이 보였다.

“추측이 맞는 것 같습니다. 그 사람들은 꼭 사당을 세운다고 들었습니다. 그런데 이렇게 클 줄은 몰랐는데...”

 주민규가 숨겨져 있던 문을 보다가 번뜩 정신을 차리고 고석재에게 물었다.

 “잠시만요. 그럼 지금 보험 사기의 증거를 찾고 계신다는 말씀인가요?”

 “맞습니다. 경찰 쪽에서도 대응 수사가 미온적인 터라, 보다 직접적인 증거가 필요합니다.”

 주민규는 갈등이 되었다. 보험금은 탐나는 금액이었다. 지금이라도 고석재라는 사람을 쫓아내야할 것인가. 아직 사기인지 어떤지 알 수 없는 일이었다. 작은 아버지가 혹시 사이비 종교를 믿었던 걸까? 그렇다면 정말 소름끼치는 일이었다.

 “야, 뭐야. 혹시 너 네 작은 아버지 보험사기에 관련되어 있던 거야?”

 김찬이 말했다. 주민규는 피가 식는 것을 느꼈다. 이게 아닌데. 아니다. 작은 아버지가 범죄자일리는 없을 거다. 그래야만 했다. 

 “아저씨, 의심만 가지고 함부로 이렇게 남의 집을 훼손하고 뒤져도 되는 거예요? 아닐 수도 있는 거잖아요.”

 “맞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주종호씨의 결백을 증명하기 위해서라도 조사는 필요합니다. 집에 손상이 간 것은 후에 제가 다 변상하겠습니다.”

 “그...그래도...”

 주민규는 고석재의 완강한 태도에 다소 기가 눌렸다. 안 그래도 덩치가 큰 사람이 강하게 나오니 움츠러들 수밖에 없었다.

 “죄송합니다. 저도 그만큼 절실하다고 생각해주십시오. 그나저나 이 문을 숨겨 놓은 이유가 있을 텐데.”

 고석재는 주민규를 비켜나서 무언가 찾기 시작했다. 문을 열만한 도구가 있을지 찾는 듯 했다. 김찬이 주민규에게 입모양으로 말했다.

 ‘어떻게 할 거야?’

 어쨌거나 작은 아버지는 여기에 계시지 않는 것이 확실해 보였다. 작은 아버지가 계셔야 뭘 증명하든 할 텐데, 이걸 어머니께 뭐라고 말해야...그러고 보니 어머니께서 주신 물건 중에 열쇠가 하나 있었지 않았나?

 주민규는 안주머니를 뒤져서 열쇠를 꺼냈다. 시선이 검은 문으로 향했다. 문 너머에 무엇이 있을지 모르지만, 어쩌면, 혹시 어쩌면 작은 아버지의 결백을 밝혀줄 무언가가 있지 않을까? 희망은 때때로 이성을 흐리게 했다. 

 주민규는 조심스럽게 열쇠를 열쇠 구멍에 넣고 돌리자 철컥 소리와 함께 문 안쪽으로 공기가 빨려 들어가는 소리가 들렸다. 이어서 열쇠를 꼽은 채 그대로 힘을 밀었다. 

 “이게 무슨 냄새야?”

 옆에 있던 김찬이 코를 막으며 말했다. 주민규도 낮은 신음과 함께 무의식적으로 뒷걸음 쳤다. 곰팡이 냄새라고 생각하기엔 너무 날카롭고 구린 냄새였다. 퀴퀴하다 못해 코 안이 바짝 마르는 것 같은 고통이 느껴졌다. 이토록 강렬한 냄새는 평생 처음 느끼는 것이었다.

 주방을 뒤지고 있던 고석재가 놀란 목소리로 말했다.

“아니, 어떻게 문을 열었습니까?”

 그리고 코를 가리며 말을 이었다.

“웬 피 썩은 냄새가...”

 주민규는 등골을 타고 소름이 돋는 것을 느꼈다. 냄새가 주는 불쾌함과 “피”라는 단어에 본능적으로 거부반응이 일어났다. 후회와 함께 문 뒤에 불길한 것이 있을 거란 예감이 들었다.

 호기심은 주민규를 놓아주지 않았다. 문은 점점 더 열렸다. 낡은 경첩에서 기분 나쁜 소리가 긁혀 나왔다. 안은 빛 한 점 들어오지 않아 완전한 어둠이었다. 경첩 소리가 울리는 것으로 추정하건데 꽤 널찍한 공간이 있는 것 같았다.

 “여, 여기 손전등.”

 김찬이 핸드폰을 들어 플래시를 켰다. 벽을 따라 수납장들이 탁한 음영 아래 늘어서 있었다. 바닥에는 형태가 구분이 잘 안 되는 물건들이 널려 있었다.

 “민규, 너도 켜봐”

 주민규도 핸드폰 플래시를 켜자 방 안에 수납장의 유리창이 번쩍였다. 죽어있는 것들에 생명력을 불어넣는 것 같았다. 

 “이...이게 뭐지?”

 바로 앞에 있는 수납장에는 파충류나 어류 같은 생물체 표본이 담긴 용기들이 진열되어있었다. 표본들은 창백한 플래시 빛 아래에 서늘한 눈빛으로 방문자들을 바라보고 있었다.

 맞은편에는 책장들 늘어서있었는데 다양한 표지를 가진 책들이 꽂혀 있었다. 로마자로 쓰인 책, 한자, 알 수 없는 언어까지 다양한 책들이 꽂혀있었다.

 바닥에는 조각상, 가면, 박제, 빈 케이지 등 온갖 잡동사니들이 아무렇게나 놓여있었다. 조각상이나 가면은 그 형태가 기괴하여 무엇을 표현하는 것인지 알 수 없었다. 하나 같이 어딘지 불쾌한 것뿐이었다.

 고석재는 주민규와 김찬을 지나쳐 문 안으로 들어갔다. 그리고 낮게 읊조렸다.

 “무슨 연구실 같은데...”

 주민규는 고석재의 뒤를 따라 들어갔다. 김찬은 문 옆에 서서 핸드폰만 넣어 안을 살폈다.

 방은 안쪽으로 더 공간이 있었다. 방의 전체적인 형태는 직사각형이었다. 벽 양쪽으로 책장 등이 있었고 입구 반대편 벽엔 책상 하나가 놓여있었다. 책상 위에는 종이와 책들이 난잡하게 널브러져 있었다.

 주민규는 종이 한 장을 들어 살폈다. 동물의 해부도와 해괴한 그림으로 채워져 있었다. 설명을 써놓은 것 같았으나 글씨가 거의 알아볼 수 없을 만큼 흘려 써져있었다.

 고석재는 책상을 살피다가 문득 기분 나쁜 냄새가 강해진 것을 느꼈다. 책장 옆에 나있는 문에서 나고 있는 것이 확실했다. 주민규도 느꼈는지 코를 쥐고서 말했다.

 “저 문 쪽에서 냄새가 나오는 것 같지 않아요?”

 고석재는 답하지 않았다. 걸음을 옮겨 문 앞에 섰다. 주민규는 고석재의 뒤에 섰다. 

 고석재가 조심스럽게 문을 열고 안을 살피다 이내 다시 문을 닫았다. 문이 열린 잠깐 사이에 따뜻하고 끈적끈적한 공기가 주민규의 얼굴을 스쳤다. 역겨운 냄새 때문에 순간적으로 구토감이 올라왔다.

 고석재가 입과 코를 가린 채 말했다.

“여기는 안 보는 게 나을 것 같습니다. 뭔가 사체... 끔찍합니다. 어쩌면 주종호씨가 제정신이 아닐지도 모르겠습니다.”

 주민규는 생각이 많아졌다. 절로 조바심이 났다. 이제 단순히 보험금이 문제가 아니었다. 이 일을 어머니께 알려야할지 아니면 다른 조치를 해야 할지 고민해야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