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7.

 고석재는 몸을 움츠렸다. 멀리서 소리가 들렸다. 잘못 들은 것일까. 귀에 신경을 집중했다. 붉은 경광등이 고요히 점멸했다. 

 ‘일단 나가자. 이정도 증거라면 경찰도 움직일 수밖에 없겠지.’

 긴장이 풀리지 않았다.

 ‘...그런데도 움직이지 않는다면...’

 고석재는 몸을 일으켜세웠다. 그것에 대해서 더 생각하지 않기로 했다. 우선 주민규를 찾아서 여기를 빠져 나간 다음에 생각해도 늦지 않았다. 서늘한 시체 안치소를 나섰다. 

 약 2시간 전.

 고석재는 지상 주차장에 차를 댔다. 병원은 한산했다. 시 외곽에 있고 확장 공사로 인해 일부 병동은 임시 폐쇄 중이었다. 이곳을 찾는 이가 없을 만했다.

 병원 출입구만 불이 켜져 있었다. 안 그래도 을씨년스러운 분위기인데, 병원이 전반적으로 어두운 탓에 음침해 보이기까지 했다. 

 고석재는 인상을 찌푸렸다. 매캐한 냄새가 코를 찔렀다. 병원에서 맡기 힘든 냄새였다.

 ‘가까운 곳에 화장터가 있었지. 침울해지는 조합이야.’

 고석재는 차에서 내려 지상 주차장을 가로 질러 걸어갔다. 병원 한쪽에 응급 차량 1대가 주차한 것이 보였으나 다른 차량은 보이지 않았다.

 ‘서늘하군.’

 고석재는 재킷의 옷깃을 올렸다. 병원 입구에 가까워지자 소란스러운 소리가 들렸다. 40대로 보이는 여자가 간호사로 보이는 여자를 붙잡고 울고 있었다.

 ‘무슨 일이지?’

 고석재는 눈에 띄지 않을 곳에 서서 그 모습을 지켜보았다. 40대 여자는 거의 주저앉을 듯 간호사에게 매달리고 있었고 간호사의 표정은 냉담하기 그지없어 보였다.

 ‘...말소리가 잘 안 들려... 굳이 들을 필요는 없나.’

 고석재는 병원으로 들어가려 했다. 응급 병동 출입구에서 남자 셋이 나왔다. 의사들로 보였는다. 한 명은 나이가 지긋해보였고 둘은 아직 어렸다. 나이든 의사가 아무래도 직급이 높아보였다.

 간호사는 의사가 나오자 놀라는 모습을 하고 무어라 말을 했다. 40대 여자는 의사에게 매달리며 또 무어라 말했다.

 ‘뭔가 딱한 사정이 있는 건가.’

 의사는 사람 좋은 표정을 지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울먹이는 여자의 등을 토닥이더니 그녀를 데리고 응급병동 안으로 들어갔다. 간호사는 그 모습을 조용히 지켜보고서는 그 뒤를 뒤따라 들어갔다. 

 ‘저 나이든 의사, 익숙한 얼굴인데... 수인 병원의 원장이었던가?’

 고석재는 사진을 본 기억이 어렴풋이 났다. 주종호와 같이 찍힌 사진이었을 것이다. 어쩌면 여기서 생각지도 못한 증거를 포착할 지도 몰랐다.

 고석재는 상념을 지우고 로비로 들어섰다. 로비도 바깥처럼 어두운 편이었다. 접수대와 안내데스크에만 불이 켜져 있었다. 오후 9시가 넘어가는 시간이긴 했지만 병원치고는 지나치게 어두웠다. 한 두 명의 사람들이 로비 벤치에 앉아 있었는데, 마치 유령같아 보였다.

 ‘정전이라도 난 것 같군. 불을 안 켜는 이유가 있는 건가?’

 고석재는 안내데스크로 다가가 핸드폰을 보고 있는 경비원에게 말을 걸었다.

 “저기, 말씀 좀 묻겠습니다. 혹시 응급 센터가 어딥니까?”

 경비원이 눈알을 굴려 위를 쳐다보았다. 천천히 고개를 들고 웃고서는 손가락을 들어 한쪽을 가리켰다. 고석재는 경비원의 기묘한 행동에 불쾌했지만 괜히 따지고 싶지는 않았다. 오히려 능청스럽게 다시 말을 걸었다.

 “감사합니다. 그런데 병원이 참 어두운데, 불 좀 켜면 안 됩니까?”

 경비원은 미소를 거두지 않고 말했다.

 “운영팀 지시라서요. 불편하시더라도 양해 부탁드려요.”

 경비원은 눈을 깜빡거리지 않으며 고석재를 쳐다보았다. 고석재가 경비원의 기묘한 분위기에 더 말을 붙이지 못 하고 자리에서 물러섰다.

 고석재는 몸을 돌려 경비원이 가리킨 방향으로 향했다. 경비원의 시선이 등 뒤로 꽂히는 것이 느껴졌다. 몇 걸음 옮기지 않았는데 인기척이 느껴졌다. 경비원이었다.

 “선생님, 무슨 일 때문에 그러실까요? 혹시 응급 센터로 가시는 거라면 출입 불가하십니다.”

 경비원이 잽싸게 고석재의 앞을 가로 막았다. 웃는 얼굴로 고석재를 바라보았다.

 ‘기분 나쁘게 구는군.’

 고석재는 다소 강압적으로 나갈까 생각이 들었다가 이내 생각을 바꿨다.

 “아, 죄송합니다. 가족이 이곳 응급 센터로 호송된 걸로 아는데, 면회도 안 되겠습니까?”

 “죄송합니다. 아무래도 응급 센터다보니 제한이 있어서요.”

 경비원은 마치 즐거운 일이 있는 것처럼 미소 지으며 말했다. 지나가던 간호사들이 고석재를 쳐다보기 시작했다. 괜히 이목을 끌 필요는 없었다.

 “아, 그렇군요. 잠시 전화가...”

 고석재는 품에서 전화를 꺼내며 로비 쪽으로 몸을 돌렸다. 분명 경비원이 자신을 보고 있을 것이라고 생각이 들었다. 전화를 받는 시늉을 하며 그대로 병원을 나왔다.

 ‘너무 생각 없이 들이댔나.’

 고석재는 품에서 박하사탕 하나를 꺼내 입에 넣었다. 생각이 좀 필요했다. 경비원에게 말을 건 것은 실수인 것 같았다. 사람도 적다보니 자신을 예의 주시할 것이 뻔했다. 박하의 알싸함이 입안을 맴돌았다.

 병원 주변은 달빛 하나 없어 괴괴한 어둠뿐이었다. 고석재는 어둠 너머를 노려보았다. 무언가 움직이는 것 같아서였다. 잠시 노려보고 있자 희미하게 빨간 빛이 반짝이는 것이 보였다. 구급차였다.

 ‘구급 차량인가. 빨간 경광등이... 경광등?’

 고석재는 사람들의 시선을 뺏을 방법이 하나 떠올랐다. 방법은 간단했다. 고의로 화재 경보를 울려서 잠시 시간을 끄는 것이다. 주머니를 뒤졌지만 라이터는 없었다.

 ‘혹시 차에 있던가?’

 고석재는 서둘러 차로 향했다. 글러브 박스를 열어보니 역시 라이터가 있었다. 담배는 끊었지만 라이터는 버리지 못 했다.

 ‘게으름의 덕을 보다니’

 고석재는 라이터를 챙기곤 다시 병원으로 향했다. 아까 멀리서 보였던 응급 차량이 도착해서 병상을 옮기고 있었다. 눈에 익은 차량이었다.

 ‘주민규씨가 이제 도착했나보군.’

 고석재는 발걸음을 멈췄다.

 ‘주민규씨만 태운 게 아닌 건가. 병상이 지나치게 많은데?’

 구급 대원들은 보이지 않았다. 병원 안으로 들어간 것 같았다. 구급 차량 뒤편에는 다섯 개의 병상이 무질서하게 세워져 있었다. 병상들 위에는 사람 크기의 검은 비닐백이 놓여있었다. 

 ‘시신들이군.’

 수인 병원은 규모가 큰 병원이 아니었다. 다른 병원의 응급실이 아무리 바쁘다 한 들 이 작은 병원에 시신 여러 구가 오는 것은 어딘지 이상해 보였다. 

 ‘게다가 응급차량 크기로 봐서 화물처럼 쌓아서 가져왔다는 건데...’

 고석재는 주머니 속 라이터를 움켜쥐었다. 의문이 떠올랐지만 섣부른 판단은 금물이었다. 

 ‘저것도 확인을 해봐야겠어.’

 고석재는 병원 안으로 들어갔다. 경비원이 핸드폰에 집중하고 있는 것이 보였다. 주변을 살펴보니 팜플렛 진열대가 있었다. 요양 안내서, 새로운 의료 기구 소개 그리고 복혼회에 입회를 권하는 팸플릿. 팸플릿을 한 움큼 집어 들고 화장실로 향했다.

 ‘CCTV를 피할 방법은 없군. 운에 맡기는 수밖에.’

 고석재는 화장실에서 가스 감지기의 위치를 살폈다. 세면대 옆에 있는 커다란 쓰레기통을 가져왔다. 그 안에 가지고온 팸플릿들을 모두 넣었다. 혹시 몰라서 변기에 배치된 작은 쓰레기통들도 모두 가져와 커다란 쓰레기통 안에 넣었다. 마지막으로 화장지에 불을 붙이고서는 쓰레기 통 안에 넣었다. 불은 삽시간에 커졌고 검은 연기가 피어올랐다. 

 ‘이제 돌이킬 수 없다.’

 고석재는 화장실 밖으로 나와 화장실 입구 옆에 있는 화재 경보기의 스위치를 강하게 눌렀다.

-따르르르

 조용한 병원 내에 격렬한 쇠 종소리가 울려 퍼졌다. 뒤이어 가스 감지기도 작동하면서 비상 탈출구의 등이 켜지며 전등이 모두 꺼졌다. 그나마 빛이 있던 로비는 비상 탈출구의 초록빛과 점멸하는 붉은 비상등으로 채워졌다. 

 ‘...스프링클러가 작동하지 않는군. 운이 좋은 건가.’

 고석재는 청소 도구실에 몸을 숨겼다. 로비 쪽에서 소란스러운 소리가 들렸다. 잠시 뒤 곧 조용해지자 고석재는 조심스럽게 밖으로 나왔다.

 ‘병원은 이제 비었겠지.’

 고석재는 화장실을 뒤로 한 채 시신 보관소가 있는 지하층으로 향했다. 아까 보았던 검은 비닐 백부터 확인할 요량이었다.

 지하층은 기다란 로비를 중심으로 양 옆 벽을 따라 문이 있는 공간이었다. 계단 반대편에는 엘리베이터가 보였다. 로비 중앙에 있는 벤치를 중심으로 왼쪽에는 약국이 오른쪽에는 지하 주차장으로 향하는 출입구가 있었다. 약국은 철책이 내려와 있었다. 폐쇄된 것 같았다. 로비는 비어있었다. 경광등만 조용히 점멸하고 있었다. 

 ‘약간 섬뜩하군.’

 고석재는 바로 앞에 있는 문으로 다가갔다. 문 위에 팻말이 있었는데, 이름표는 모두 제거된 상태였다. 

 ‘배치도를 미리 봐두길 잘했어.’

 고석재는 엘리베이터 왼쪽으로 걸음을 옮겼다. 엘리베이터 오른쪽에는 출입을 막는 [공사 중] 입간판이 있었다. 

 고석재는 시체 보관소의 철문 앞에 섰다. 문에는 관계자 외 출입금지라 적혀있었다. 유달리 서늘한 느낌이 드는 철문이었다. 철문에 유리창이 있어 안이 보였다. 괜히 주변을 둘러보고는 시체 보관소로 들어갔다. 

 ‘생각 이상으로 서늘하다.’

 죽음의 냄새가 폐로 들어오는 느낌이 들었다. 시체 보관소의 왼쪽에는 병상들이 있었고 오른쪽 벽에는 냉동고의 문들이 있었다.

 고석재는 인상을 찌푸렸다. 냉동고 아래에는 검은 비닐 백들이 널브러져 있었다. 마치 냉동식품을 쌓은 것 같았다.

 ‘고인에 대한 예우가 전혀 없다니.’

 고석재는 그 모습을 핸드폰에 담았다. 자신이 찾고 있던 것은 아니지만, 충분히 문제가 될 만한 모습이었다. 이걸 꼬투리로 수사를 요청할 수 있을지도 몰랐다.

 ‘이상한데. 왜 식별 꼬리표가 없지. 정말 다른 목적이 있는 건가?’

-터벅터벅

 누군가의 발걸음 소리가 들렸다. 여러 명의 발걸음 소리였다. 시체 보관소와 점점 가까워지고 있었다. 

 ‘숨어야 돼.’

 여기서 들킨다면 오히려 자신이 구속될지도 모를 일이었다.

 ‘젠장, 몸을 숨길만한 곳이...냉동고뿐인가’

 냉동고 하나를 열었다. 창백한 시신이 보였다. 발걸음 소리가 거의 다다랐다.

 ‘고인께 죄송합니다.’

 재빨리 안으로 들어갔다. 시신에 닿을 때마다 냉기가 느껴졌다. 소름이 돋았다. 문은 완전히 닫지 않았다. 바깥을 살펴야했다.

 -덜컥

 철문이 열리며 병상 하나와 검은 옷을 입은 일단의 사람들이 들어왔다. 모두 마스크를 쓴 모습이었다. 그들은 말없이 검은 비닐백 몇 개를 들어 병상에 싣고는 그대로 밖으로 나갔다. 침착하지만 무척 서두르는 모습이었다. 어떻게 보면 사무적인 느낌마저 들었다.

 ‘뭔가 있어.’

 의심이 굳어졌다. 복장으로 보건데 의사나 병원 관계자는 아닌 것 같았다.

 ‘시신을 수습하는 것 같진 않다. 화재 경보가 울리는데도 차분한 것이...’

 고석재는 냉동고에서 나왔다. 이 병원에서 무슨 일이 일어나고 있는지 알 수는 없지만, 주민규가 여기에 있어서는 안 될 것 같았다. 그를 데리고 여기를 빠져나가야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