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죽었던 친구

내 친구는 적어도 3번, 죽었던 놈이 있다.
그 녀석을 A라고 하겠다.
첫 번째는 유치원 시절, 주말 직전에 교통사고를 당해서였다.
우리 집은 당시 일이 있어서 장례식에 참석하지는 못했지만, 주말이 지나고 유치원에 나가자 A가 아무 일 없었다는 듯
유치원에 와 있었다.
본인 말에 따르면, 주말 전에 쉬었던 건 가족 여행을 갔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나는 어른들에게 A가 살아 있다고 수없이 말했지만 믿어주지 않았다.

두 번째는 초등학생일 때 A의 집에 불이 나서였다.
그때는 나도 A의 장례식에 갔었는데 시간이 지나 초등학교 고학년이 됐을 때,
A는 전학생이 되어 돌아왔다.
저학년일 때는 아버지의 직장 때문에 이사를 갔다가 다시 돌아왔다는 것이다.
유치원 때와는 다르게 이번에는 몇 명의 친구들이 A의 장례식을 기억하고 있었다.

시간이 흘러 나는 대학생이 되었고, A와는 가끔씩 대화를 나누는 사이였다.
얼마 전, A에게 연락을 받았다.
봄 방학 때, 그가 유학을 가 있는 곳으로 놀러 오지 않겠냐는 연락이었다.

하지만, A는 두 달 전에 음주운전 차량에 치여서 죽었다.

이번에는 유학을 가 있는 것으로 된 모양이다.
나와 마찬가지로 A가 죽었다는 것을 알고 있는 친구들이 몇 있다.
어째서 나는 A의 죽음을 세 번이나 기억하고 있을까?

어쩌면 내가 모르는 A의 죽음이 몇 번 더 있었을지도 모른다.
어쨌거나 나는 봄에 A를 만나러 호주로 갈 예정이다.

2 외할아버지의 장례식

외할아버지의 장례식에 있었던 일이다.
어머니에게 들은 내용이고 내가 직접 겪은 것이 아니니 내용이 엉성한 것은 양해 바란다.
장례식 자체는 문제 없이 끝이 났다.
그렇게 모였던 친척들도 돌아갔고, 어머니와 두 삼촌만이 술에 취한 채 조의금을 계산하고 있었다.
그런데 설거지를 하고 있던 숙모가 다가왔다.

' 여보, 참배를 하고 싶다는 사람이 찾아왔는데.. '

상당히 취해있던 어머니와 삼촌들은 이상하다고 생각했고, 혹시나 참배 하는 척 조의금을 훔치러 온
사람은 아닌가 의심했었다고 한다.
그래도 고인이 가는 길, 모처럼 찾아와 준 사람인데 실례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에 그 사람을 들였다.
그 사람에 대해 어머니에게 물었지만, 자세히 기억이 나지 않는다고 했다.
어쨌거나 남자였던 것 같지만 중년인지 노인인지 분간이 되지 않았다고 한다.
옷 차림도 들어올 때와 나갈 때가 달랐던 것 같다고 한다.
인상 깊었던 것은 남자의 몸에서 생선 비린내 같은 게 났던 점이었다.

남자의 얼굴은 잘 기억나지 않지만 시종일관 웃고 있었다고 했다.
어머니는 웃고 있는데 어쩐지 기분이 나쁘고 섬뜩했다고 했다.

그 남자는 안에 들어서자 ' 향을 끄면 안되겠습니까? ' 라는 묘한 말을 했다.
무례한 사람이라고 생각했지만 그래도 일부러 찾아와 준 사람이니 원하는 대로 향을 껐다.
그러자 남자는 ' 저와 고인, 둘만 있도록 해주십시오 ' 라고 말했다.

이것 또한, 무례한 부탁이었지만 장례가 마무리 되는 분위기였기에 그렇게 해주었다.
문을 닫고 옆 방에서 상황을 살피는데 경을 읽거나 울거나 하는 기색도 없었다.
아무래도 수상해서 혹시나 시신에 해코지라도 하는 건 아닌가 싶어 슬쩍 들여다 보았다.
그러자 기이한 광경이 펼쳐지고 있었다.
그 남자는 할아버지의 얼굴 코 끝에 자기의 얼굴을 가져다 대고 빙그레 웃으며 무언가를 중얼거리고 있었다.
모두가 넋이 나가 그 남자의 행동을 보고 있자, 남자의 중얼거림이 점점 더 크게 들려왔다.

' 무념 무념 무념 무념 무념 무념 무념 무념 무념 무념 무념 무념 무념 무념 무념 '

남자는 분명히 그렇게 중얼거렸다.
그 광경을 보고 있자니 온 몸에 털이 곤두서는 느낌이었다고 했다.
남자의 얼굴은 여전히 웃고 있었지만 어쩐지 화를 내는 듯 했다.
삼촌들은 겁이 나서 문을 조심스레 닫고 옆 방에서 경을 읊었다고 한다.

그러자 갑자기 쾅! 하며 문이 열렸다.

' 감사했습니다. 오늘은 이만 가보도록 하겠습니다. ' 라고 그 남자가 말하더니 대답도 듣지 않고 서둘러 돌아갔다.
어머니와 삼촌들은 안도하는 것도 잠시, 혹시나 할아버지에게 몹쓸 짓이라도 한 건 아닌지 방으로 가 확인을 했다.
관 바깥쪽에는 무수히 많은 발톱 자국이 새겨져 있었다.
그리고 그 주변에는 엄청난 양의 짐승 털이 흩어져 있었다.
하지만 할아버지에게는 발톱 자국은 커녕, 털 한 올도 묻어 있지 않았다고 한다.

어머니와 삼촌들은 동시에 소름이 돋아 급히 청소를 했다.

다음 날, 스님이 장례식 장에 찾아왔다.
들어서자마자 스님이 말했다.

' 짐승 냄새가 진동을 하는군요. 만약을 대비해 돌아가신 분 방에 향을 피워두길 정말 잘했소 '

어제의 일이 현실이었구나 싶어 다시금 소름이 돋았다.
나는 그런 짓을 하는 건 필시 여우겠구나 싶어 어머니에게 그렇게 말했다.
하지만 어머니는 ' 바보야, 여우님은 그런 짓을 하지 않아. 우리 집에서는 모시지 않지만 여우님을 나쁘게 말해서는 안된단다 ' 라며 꾸짖었다.

' 그럼 뭔데? ' 라고 되묻자 어머니는 갑자기 입을 다물어, 더 이상 이야기를 들을 수 없었다.
나는 그 남자가 무엇인지 아직도 알 수가 없다.

3 7대 불가사의 발표

내가 초등학생일 때 이야기다.
학교마다 명칭이 다른 것 같지만 조별로 주제를 정해 테마를 조사하고 발표하는 학습 과제가 있었다.
당시 지옥 선생 누베 라는 애니메이션이 유행할 때라 우리 조는 학교의 불가사의에 대해 조사해 발표하기로 했다.
졸업 전에 하는 마지막 발표회인 탓에 체육관에 전교생이 다 모여 발표를 듣게 되었다.
엄청 긴장을 하면서도 우리 조는 발표를 무사히 마쳤다.

묘하게도 우리 조가 받은 것은 박수 뿐 아니라, 신기하다는 듯한 전교생의 표정도 함께 였다.
역시 너무나 이상한 주제였나? 생각하고 다른 조들의 발표를 듣는 척 하며 우리끼리 반성을 했다.

그렇게 발표회가 끝나고 종례 시간에 담임 선생님이 들어왔다.
선생님은 아이들에게 인기 있는 재밌는 분이었는데, 종례 시간에는 늘 그날 있었던 재밌는 이야기를 해줬었다.
그 날, 이야기의 주역은 우리 조였다.

' 7대 불가사의라는 재미난 테마를 전부 발표했는데도, 6개 밖에 못 찾았다고 말한 게 진짜 괴담 같아서 좋았어,
그렇지만 다들 7개를 다 말할 줄은 몰라서 어안이 벙벙해 하던 게 진짜 제일 무섭더라 '

우리를 제외한 나머지 아이들이 모두 고개를 끄덕였다.
영문을 몰랐다.

우리는 7대 불가사의 중 6개 밖에 찾지 못했었다.
조원도 마침 6명이었기에 한 명이 하나 씩 발표를 맡은 뒤, 이것 밖에 찾지 못했다고 말하고 발표를 마쳤던 것이다.
하지만 선생님들 포함해 반 아이들, 그리고 아마 전교생이 7대 불가사의를 모두 들은 것 같았다.
우리는 6개 밖에 찾지 못해서 6개만 발표를 했다고 말했지만, 또 겁을 주려고 그러냐며 다들 웃어 넘겼다.
하지만 우리가 필사적으로 계속 얘기하자 교실의 분위기가 변했다.

' 그럼, 도대체 누가 두 번 발표를 한 건데? '

6명의 조원이 한 번씩 발표 한 건 확실한데, 이야기는 7개를 들었다고 하니 누군가 한번 더 발표를 한 게 분명했다.
하지만 아무도 대답을 하지 못했다.
간신히 대답 한 것도 ' A... 아냐...? ' 하는 명확하지 못 한 것이었다.
교실안의 술렁임은 점점 커져 가, 귀신이라고 들뜬 남자아이들과 , 무서워서 우는 여자아이들까지 나와 혼란의 도가니였다.
결국 그 날은 우리의 착각이라고 결론 지어졌고, 7대 불가사의에 대한 이야기는 금지되었다.

하지만 이 일이 소문이 나지 않을 리가 없었다.
그 후 , 학교에서는 전무후무한 불가사의에 대한 붐이 일어났다.
참고로 그 날, 모두가 들은 일곱 번째 불가사의는 ' 지하실 거울은 지옥으로 통하는 문 ' 이라는 것이었다고 한다.
하지만 현재에 와서는 ' 불가사의를 조사하면 이상한 경험을 하게 된다 ' 는 내용으로 변한 것 같다.
어릴 적, 내가 다니던 초등학교에 다니고 있는 아들에게 이 이야기를 듣고서 무척 신기한 기분이 들었다.

4 5층 창문

3년 전, 비 오던 날의 이야기다.
부엌 옆에 있는 창문에 아이의 손바닥 자국이 잔뜩 찍혀 있었다.
딸이 그랬나 싶어 닦아 봤지만 닦이지 않았다.
손자국은 창 밖에 찍혀 있던 것이었다.
문득, 살고 있는 이곳은 5층으로 표시되어 있지만 실제로는 4층이라는 것이 떠올랐다.

창 밖은 당연히 허공이었다.

어린 아이가 올라와 손바닥으로 창을 찍을 수 있는 곳이 아니었다.
손자국을 발견하고서 부터 딸은 나에게는 보이지 않는 언니와 논다고 얘기하기 시작했다.
처음에는 단지 아이가 혼자 가상의 친구를 만든 것이라 생각했다.
하지만 우연히 아이가 말하는 것을 들어보니 실제로 누군가와 대화를 하는 것 같아 무서워졌다.
결국 계획 중이던 이사를 앞 당겨서 빠르게 집을 옮겼다.

시어머니와 우리 어머니는 소꿉친구였기에 , 두 분이 앞 다퉈서 액막이라도 하라고 성화였다.

액막이를 해준 스님의 말로는 어린 아이들은 무심코 그런 것을 끌어 들이는 경우가 있다고 한다.
딸이 놓아 주지를 않으니까 영혼이 나에게 보이기 위해 손자국을 남긴 것 같다고 했다.

아직도 내게는 그 경험이 무서운 경험으로 남아있다.

5 같은 꿈을 계속 꾸었다

역 앞을 걷다가 너무나도 이상한 헌팅을 당하고 끝내는 인생이 완성 된 이야기를 하려고 한다.
지금의 아내와 어떻게 만났는지에 대한 이야기인데 아마도 이곳에 쓰는 게 맞다고 생각했다.

나는 어렸을 때, 일년에 한 번씩 늘 같은 꿈을 꾸고는 했다.
중학교 무렵까지 매년마다 그 꿈을 꾸었던 기억이 있다.
클로버가 곳곳에 피어있는 들판에서 머리를 양 갈래로 땋은 어린 여자아이가 뛰어 다니는 꿈.
이 꿈을 꿀 때면 왜 그런지는 몰라도 이제껏 느껴본 적 없던 행복감을 느끼며 아이를 조용히 바라보고 있었다.

고등학생이 되고 나서는 꾸지 않게 되다 보니 어른이 되고서는 까맣게 잊고 살았다.

어느 날, 서점에 들렸다 나오는데 ' 실례합니다 ' 하며 왠 여자가 내 어깨를 두드렸다.
나 말인가? 싶어서 한 쪽 이어폰을 뺀 뒤, 네? 하고 대답했다.

그 여자는 오묘한 표정으로 ' 혹시 저와 어디선가 만나지 않았나요? ' 라고 물었다.
나는 아는 사람인가 싶어서 그 여자의 얼굴을 봤지만 내가 아는 사람이 아니다.

' 아뇨, 사람 잘못 보신 것 같아요 ' 라고 웃으며 말했다.
여자는 찝찝하다는 듯 ' 그래요? 그렇군요.. 죄송합니다 ' 하고 고개를 숙였다.
그리고는 갑자기 얼굴을 확 들더니 ' 저.. 첫 눈에 반했어요, 저와 사귀어 주지 않을래요? ' 라고 했다.
그제야 나는 이게 헌팅인가 싶었다.
전혀 인기가 없던 나는 여자에게 고백을 받았다는 것 만으로도 날아오를 듯한 기분이었다.

' 아.. 잘 부탁합니다.. ' 하며 조금 폼도 잡아보고, 그걸 보던 여자도 웃으며
' 그럼, 연락처를 알려주실 수 있을까요? ' 하며 휴대폰을 건네와 그 날부터 연락을 하게 되었다.
나는 친구들에게 ' 헌팅을 당해서 여자친구가 생겼다고 ' 하며 자랑을 했다.
하지만 여자친구는 데이트를 할 때에도, 연락을 할 때에도 정신이 다른 곳에 가 있는 것 같았다.
처음에는 긴장을 해서 그런가 싶었으나 시간이 갈 수록 나를 좋아하지 않는 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그렇게 세 달 정도가 지난 어느 날, 함께 드라이브를 가게 되었다.

차를 타고 가자는 이야기를 꺼낸 순간 여자친구의 얼굴이 가면처럼 굳어서 당황스러웠지만
곧, 웃으며 ' 드라이브 좋아! 가자 ' 하고 대답했다.
당일, 여자친구는 엄청 큰 배낭을 메고 왔었다.

' 소풍 가는 것도 아닌데 뭘 이렇게 많이 싸왔어? ' 라고 말하며 웃고는, 동네를 떠나 평소와는 다른 큰 도시 쪽으로 나가기로 했다.
그 날, 여자친구는 너무나도 반짝반짝 빛났다.
역시 수수한 소도시 보다는 큰 도시가 더 재밌겠지.

꽤 먼 거리를 차를 타고 나오다 보니, 여자친구가 만들어 준 주먹밥이나 샌드위치를 먹기도 하고, 차 안에서
둘이 이것저것 이야기도 나누고 정말 즐거웠다.

이후에도 가끔 씩 드라이브 데이트를 하게 되었고, 여자친구는 매번 이것저것 만들어 왔기에, 마음의 거리가 줄어든 기분이었다.
언제나 그렇듯 여자친구 집 앞에서 여자친구를 태우고 운전을 하는데 여자친구가 차에 타자마자 말했다.

' 오늘인가 보네, 아마 '
' 응? 뭐가? '
' 응? 나 뭐라고 했어? '

여자친구는 웃으며 대답해 약간 당황스러웠다.
하지만 다른 때와 같이 오늘은 어디를 갈 건지 이야기를 하다보니 평소와 같았기에 데이트를 마치고 돌아오는 길에 올랐다.
해가 져서 주변은 어두워져 있었다.

' 내일은 영하래 '
' 정말? 큰일이다 '

시시콜콜한 이야기를 하다가 보니 여자친구의 목소리가 굳어버린 듯한 느낌이 들었다.
여자친구를 바라보자 왠지 눈이 풀려있는 것 같았다.

' 왜 그래? 괜찮아? 추워? ' 라고 묻자 ' 응, 괜찮아 ' 하고 대답했다.
거기서부터 대화가 끊겼다.
나는 내가 화날 만한 말이나 행동을 했나 싶어 걱정하며 운전을 계속 했다.

산 속 커브 길을 돌며 자동차는 커브 길을 돌다가 원심력에 의해 그대로 가드레일을 충돌하고 아래로 떨어졌다.
엄청난 충돌 충격 후, 나는 기절한 것 같았다.
여자친구가 나를 흔드는 소리에 눈을 떴다.

차가 어떻게 된 건지도 모르겠고 머리는 아픈데 눈은 보이지 않고 옷이 축축한 것만 느껴졌다.
문득 여자친구가 걱정되어 돌아보니 여자친구는 무사했는지 담담하게 언제나 메고 있던
배낭에서 거즈와 붕대 같은 걸 꺼내고 있었다.

그리고는 믿을 수 없는 솜씨로 내 머리에 대고 지혈하며 붕대를 감기 시작했다.
아무래도 내 머리는 충격으로 깨져서 흐른 피가 옷을 적신 듯 했다.
그 후 여자친구는 밖으로 나가 휴대폰으로 구조를 청했다.

영하의 추위 탓에 배낭 속에 들어있던 손난로를 내 몸에 잔뜩 붙이고 우리는 꼭 껴안고 체온을 지켰다.
나는 피가 상당히 빠진 탓인지, 엄청난 추위가 몰려왔고, 공포에 질려 죽음을 각오하고 있었다.
하지만 ,여자친구는 이런 상황에도 침착하게 ' 내가 꼭 지켜줄게 ' 라고 나에게 말했다.

나는 무척 신비한 기분이 들었다.

멀리서 사이렌 소리가 들려오고 우리는 구조됐다.
병원에서 치료를 받는 도중, 나는 여자친구에게 그 응급치료는 어떻게 된 것인지 물었다.
그 말을 들은 여자친구는 갑자기 울기 시작했고 ' 나, 사실은 알고 있었어 ' 라며 믿을 수 없는 이야기를 꺼내기 시작했다.

여자친구는 어릴 때부터 모르는 남자가 산 길에서 사고를 당해 죽는 꿈을 반복적으로 꾸었다고 한다.
너무 자주 꿈을 꾸다 보니 어떻게든 도와주고 싶다는 마음이 들던 사이에 어쩐지 위에서 내려다보던 꿈이
조수석에서 지켜보는 것으로 변했다고 했다.

그리고 그 꿈이 반복 될 수록 어떻게 사고가 나고, 어디를 다치고, 무엇이 원인이 되어 죽는 지를 알게 됐다고 했다.
그래서 꿈속의 남자가 죽지 않도록 필요한 도구를 갖추기 시작했다는 것이다.
그리고 그 노력의 결과, 사고 끝에도 살아나는 것이 당연한 일이 되어 지금 나를 바라보고 있다는 것이다.
처음 나를 봤을 때, 여자친구는 너무 큰 충격에 온 몸에서 땀이 나고 토할 것만 같았다고 했다.
반복되는 꿈에 나오던 남자를 현실에서 마주친다면 누구라도 무서울 것이다.

처음 나에게 말을 건 것은 정말 큰 맘을 먹고 말을 했다고 했다.

그저 우연일 뿐이라면 여기서 끝이지만, 만약 꿈이 현실로 이루어질 것이라면 이 남자에게 말을 걸지 않은 것을
평생 후회하며 살게 될 것이라 느껴졌다고 했다.
솔직히 나는 당시 여자친구의 이상형이 아니었다고 했다.
하지만 갑자기 친구가 되어 달라고 하면 기분 나빠할 것 같아 첫 눈에 반했다고 둘러댄 것이다.
사귀다 보면 언젠가 그 사고를 경험 하게 될 테니, 적어도 그 사고까지는 사귀겠다는 마음으로.

나는 그 이야기를 듣고 통곡했다.
처음 여자친구가 나에게 마음이 없다고 느낀 것도 이제야 이해가 되기 시작했다.
믿을 수 없는 이야기지만, 사고로 머리를 다쳐서 그런걸까 오히려 여자친구의 이야기가 너무나 사실적으로 느껴졌다.
솔직히 목숨을 건진 기쁨보다, 여자친구가 이제 내 곁을 떠나갈지도 모른다는 것에 절망했다.

' 우리는 이제 헤어지는 거야? '
' 넌 어떻게 하고 싶어? '
' 나는 절대 헤어지고 싶지 않아, 진심으로 좋아하게 됐으니까 '

나는 당시에 절대 여자친구와 헤어지면 안된다는 예감이 들었다.
내 대답을 들은 여자친구는 ' 나도 너를 좋아하게 됐어 , 앞으로도 잘 부탁해 ' 라며 웃었다.
그로부터 반년 정도를 더 사귄 뒤, 우리는 결혼했다.

결혼을 하고 2년 만에 아이가 생겼다.

화장한 날, 이제는 아내가 된 여자친구가 만든 도시락을 가지고 피크닉을 갔다.
2살 된 딸은, 무척 들떠서 이리저리 뛰어다녔다.
위험하니까 이리 오라고 딸에게 손을 뻗던 순간, 나는 머리를 망치로 맞은 것 같은 충격에 휩싸였다.
아내가 땋아준 양갈래 머리를 휘날리며 뛰어 다니는 딸의 모습은 내가 어린 시절부터 반복해 꾸던 꿈 속의 그 장면이었다.

퍼즐 조각이 맞춰지듯, 모든 것이 딱 맞아 떨어지는 듯한 느낌이었다.
아내가 나를 돕는 꿈을 꾼 것도, 내가 아내와 결코 헤어지면 안된다고 느낀 것도 모두가 딸 아이를 위한 것은 아닐까 하고 말이다.

6 소의 무덤

내가 다닌 고등학교는 몇년 전, 개축을 통해 지금은 현대적으로 리모델링 됐지만, 내가 다닐 때만 해도 곳곳이 낡아 빠진
오래 된 학교였다.
그래도 역사 만큼은 현 내에서 손에 꼽히던 이 학교에는, 오래전부터 전해 내려오는 전설 같은 괴담이 있다.
통칭 ' 소의 무덤 ' 이라는 괴담.

제목만 들으면 오컬트 판에서 유명했던 ' 소의 목 ' 을 떠올리게 될 텐데,
내가 오컬트 판에 들어온 건 아주 최근의 일이지만, 우리 학교에 전해져 내려오는 소의 무덤 이야기는
일반적인 소의 목 이야기와 비슷한 부분이 있다.

너무 무서워서 아무 말도 할 수가 없는 스타일의 이야기라는 점에서 신기하게 일치했다.

하지만 어떤 선배는 ' 안보 투쟁이 한창이던 시절, 학생 운동과 관련 된 이야기 같다 ' 라고 말하고
우리 학교를 졸업한 10살 많은 사촌 형은 ' 타이쇼 후기에서 쇼와 초기 시절 이야기라던데 ' 라고 했다.
이야기의 제목도 소의 무덤 이라는 설과 소의 바보 라는 설이 있어서 그야말로 이상한 괴담이라고 할 수 있다.

' 소의 무덤 괴담을 자세히 조사해 보자 '

나에게 이런 말을 건넨 사람은 중학교 친구인 A 였다.
막 하복을 입기 시작하던 시기였던 것 같다.
A는 나와 달리 공부를 잘하는 우등생이라 , 성적은 늘 상위권이었다.
하지만 중학교에 입학 한 후부터 오컬트나 판타지 쪽에 상당히 심취해 있어서 , 이 이야기도 원래는 A가 정년 퇴직을 앞 둔
노교사로부터 듣고 온 것이 그 시작이었다.
그러나 소의 무덤에 대한 조사는 쉬운 것이 아니었다.

A는 도서관에서 지역 신문을 뒤지고, 졸업한 선배들을 찾아 가기도 하고, 대학 도서관까지 들락거렸다.
그야말로 수많은 자료를 쉴 새 없이 조사한 것이다.
나도 A의 조사에 몇 번 동참한 적이 있는데, 그의 열의는 이상하다고 느껴질 정도였다.
아니, 어쩌면 그 때 A는 이미 무엇인가에 홀려있었는지도 모른다.

그렇게 여름 방학이 찾아왔다.

A는 학원에서 여름 방학 특강을 들으면서도, 여전히 향토사를 찾아보는 등 소의 무덤에 관해 지치지도 않고
조사를 이어가고 있었다. 나는 A와 다른 학원에 다니고 있었던 것도 있고, 여름 방학 직전부터 같은 학원을 다니는
여자 아이와 친해지면서 학원 생활에 신경을 더 쏟고 있었다.
8월 초쯤, 나와 A가 속해있던 동아리의 여름 합숙이 시작됐다.
여름 합숙이라고 해도 동아리 활동 끝나고 동아리 부원들 끼리 학교에 있는 숙박실에서 하루 자는 것 뿐이지만.

합숙 날 밤, 오랜만에 A를 만난 나는 그동안의 조사에 대해 물었다.

' 60년대에서 70년대 사이에 학생이 사망한 사건이 있었던 건 진짜 같아. 하지만 그것과는 별개로,
공개되지 않은 또 다른 사건이 과거에 있었다는 얘기를 오래전 졸업한 선배에게 들었어.
아무래도 그 이야기야말로 소의 무덤 사건의 숨겨진 진실과 닿아 있는 것 같아 '

A는 분명 사건이라고 했다.

' 그리고 그 사건의 진실을 알고 있는 사람을 찾고 있어 '

밤이 깊어지자 관례대로 동아리원들이 모여 이런 저런 괴담을 늘어놓던 도중, 한 여자부원이 ' 콧쿠리 상 할래? ' 라고 물었다.
A는 거기에 찬성해서, 말을 꺼낸 여자부원과 함께 10엔 짜리 동전에 손가락을 올렸다.
나는 오컬트를 좋아하긴 하지만, 겁이 많았기에 다른 부원들과 그 모습을 지켜보고 있었다.

잠시 후 , 실내의 공기가 묘하게 축축하다고 할까? 끈적끈적하고 점기가 있는 것 같은 무거운 분위기로 변하기 시작했다.
영감이 없는 나조차도 ' 아, 이건 좀 위험한 것 같은데? ' 라고 느낀 순간, 콧쿠리 상을 하고 있던 여자부원과 A의 손가락
밑에 있던 10엔 동전이 불규칙하게 제멋대로 움직이기 시작했다.

' 싫어.. 뭐야 이거.. '

그 모습을 지켜보던 다른 부원들의 안색도 좋지 않았지만, 제멋대로 움직이며 멈추지 않는 10엔 동전 위에
손가락을 올려놓은 여자부원과 A의 안색은 파랗게 질리다 못해 창백할 지경이었다.
숙박실 구석에 누군지 모를 사람 같은 그림자가 서 있는 것 같았지만, 너무 무서워 그 쪽을 볼 용기도 없었다.
부원들 일부는 울기 시작했다.

' 너희들 뭐 하는 거야!! '

갑자기 큰 소리가 나더니, 동아리 전 부장이자 작년 졸업생인 선배 B가 숙박실 안으로 뛰어들어왔다.
선배는 여자부원과 A의 뺨을 때리더니 10엔 동전을 낚아 채 , 창문을 열고 밖으로 힘껏 던져버렸다.
그리고는 콧쿠리 상을 할 때 쓴 종이를 들고 숙박실 밖으로 나갔다.
나중에 물어보니 종이를 구겨서 화장실 변기에 넣고 버렸다고 했다.

' 아무리 장난이라도 이딴 건 하지 말라고 너희 '

B 선배는 영감이 꽤나 강해서 자던 도중 기분이 울렁거리고 메스꺼워서 눈이 떠졌다고 했다.

' 이만 자라 너희 '

A는 여전히 넋이 나간 표정이었지만 어물어물 일어나 남자 숙소로 가려고 했다.
그 모습을 보던 B 선배가 말했다.

' 아, 그리고 말인데 좋지 않은 말은 안 할 테니까 적당히 해라 '

그 말을 들은 A는 아무 대답도 없이 나갔다.
제대로 잠도 못 자고 다음 날 아침이 되었고 우리는 각자 집으로 돌아갔다.
그 일이 일어난 지 2주 정도가 지나, 여름 방학도 절반 정도 남았을 때 쯤 A에게 전화가 왔다.

' 소의 무덤에 대해서 말인데 '
' 뭐? A, 너 그거 아직도 알아보고 있었어? '
' 거의 알아낸 것 같아. 이야기의 진상을 알아낸 여자에게만 저주가 걸린 다는 이야기가 있더라 '
' 여자한테만? '
' 그러니까 우리는 괜찮아, 그래서 학생 운동 시절의 이야기를 자세히 안다는 사람을 내일 만나기로 했어,
모레 동아리 활동을 할 때 알아낸 것을 얘기 해 줄 테니까 기대하라고 '

그렇게 전화는 끊어졌다.
하지만 동아리 활동 당일 날, A는 끝내 나타나지 않았다.
어떻게 된 것인지 궁금해서 A의 집으로 전화를 했지만 몇 번을 걸어도 받지 않았다.
A와 연락이 닿지 않은 채 여름 방학이 거의 끝나갈 무렵,나는 A의 집으로 갔다.
하지만 A의 집 창문은 모두 닫힌 채 , 현관 신문 꽂이에는 신문이 빼곡히 꽂혀 있었다.
물론 초인종을 눌러도 아무 반응이 없었다.
점점 커지는 막연한 불안감만 안은 채 , 여름 방학이 막을 내렸다.
2학기가 되어서도 A의 모습은 보이지 않았다.

A에게는 1학년 이던 여동생이 있었기에 1학년 후배에게 물었지만 그 여동생도 학교에 나오지 않고 있다고 한다.

그로부터 꽤 시간이 흐른 후, 나는 한 후배에게 떠도는 이야기를 듣게 됐다.
A의 여동생이 여름 방학 때 갑자기 자살을 시도 했다는 것이다.
매우 밝고 활기찬데다 친구들 중 누구도 그런 낌새를 느끼지 못했는데 , 갑자기 자기 방에서 칼로 목을 그었다고 한다.
학교에는 집안 사정으로 인해 전학을 가게 되었다는 연락이 와서 전학으로 처리 되었다는 것을 나중에 알게 되었다.
하지만 선생님에게 A의 전학에 대해 물어도 이유는 결코 말해주지 않았다.

그로부터 15년이 지났다.

아직도 A의 행방은 알 수가 없다.
결국 나는 A에게 소의 무덤의 진상을 듣지 못했다.
아무도 내용을 모르는 가장 무서운 괴담이라는 점에서도 소의 목 과 희미한 공통점이 있지만
다만, 아직도 신경 쓰이는 것은 A가 소의 무덤 에 대해 조사하며 내용을 적은 노트를 두 권 가량 가지고 있었다는 점이다.
그 조사 기록을 A의 여동생이 읽었을 가능성은 없었을까?
그렇지 않다면 갑작스러운 자살 시도를 설명할 수가 없는데.

나중에 B 선배와 이 이야기를 했을 때, 선배는 이렇게 말했다.

' 그 녀석, 그날 밤 콧쿠리 상을 하기 전부터 뭔가 안 좋은 기운이 몸을 감싸고 있었어,
그림자가 진하다고 할까? 정체를 알 수 없는 무언가에게 혼을 빼앗긴 것 같은 예감이 들었지.
나는 그게 신경 쓰였던 거야 , 아마 그건 원념이 아니었을까? '

A... 아직 네가 그 조사 기록 노트를 가지고 있다면 하루 빨리 불태워 버리기를 바랄 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