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어렸을 적 잠시 집안 사정이 어려워져서 부모님과 떠나 할머니와 살았었다. 할머니의 집은 꽤나 시골 마을이었다. 워낙 시골이라 어두워지면 사람 하나 지나다니지 않고 간간이 개 짖는 소리만 들리는 그런 마을이었다. 그중에서도 우리 집은 특히 구석진 곳에 있는데다가 오래된 한옥집이어서 그런지 더 어두운 느낌이었다. 그래도 마당에 큰 감나무가 한그루 있어 달이 밝을 때면 뭔가 분위기는 좋았던 것 같다.

거기서 할머니는 내게 이상한 말을 하셨다.
"보름달이 뜨는 밤엔 창문을 꼭 닫고, 절대 밖을 내다보면 안 된다."
나는 그 말을 자주 들으며 자랐지만, 이유를 물을 때마다 할머니는 단호하게 입을 다무셨다. 어릴 땐 그냥 어두운 밖도 무섭고 할머니도 무서워서 그 말대로 했다. 나중에는 그냥 밤에 밖에 나가면 위험하니까 조심하라는 뜻의 옛날 어른들의 미신 정도로 생각했다.

그렇게 한동안 지내다가 부모님이 일이 잘 풀리셔서 나는 할머니댁을 떠나 다시 부모님이 있는 도시로 떠났다.
그러던 어느 날 대학 입시가 끝나고 오랜만에 할머니댁에 내려왔을 때였다. 마침 그날은 보름달이 뜨는 밤이었다. 창문을 닫고 자려는데, 갑자기 밖에서 이상한 소리가 들려왔다.
"탁... 탁... 탁..."
마당에서 무언가 움직이는 듯한 소리였다. ‘바람에 감나무가 흔들리는 것일거야’, ‘들쥐나 다람쥐 같은 동물이 뛰는 소리일거야’ 등의 생각을 하며 애써 무시하려 했지만 소리는 계속 되었고 결국 창문에 시선이 갔다. 창문밖에는 희미한 그림자가 어른거렸다. 그것은 사람의 형상이었다.
나는 심장이 쿵쾅거리는 걸 느끼며 천천히 창문 가까이 다가갔고 살짝 커튼 틈으로 밖을 내다보았다.
그 순간, 나는 얼어붙고 말았다.
마당 한가운데 어떤 사람이 있었다. 하지만 이상했다. 분명 사람의 형상인데 팔은 너무 길었고 다리는 너무 굽어 있었다. 무엇보다도 얼굴이… 얼굴이 없었다.
그 형체는 천천히 고개를 돌렸다. 나는 황급히 커튼을 닫고 뒤로 물러섰다. 심장이 미친 듯이 뛰었다.
"보름달이 뜨는 밤엔 창문을 꼭 닫고, 절대 밖을 내다보면 안 된다."
할머니의 말이 머릿속에서 울렸다. 그 존재는 내가 창문을 본 걸 알아챘을까?
그때, 창문을 두드리는 소리가 들려왔다.
"탁... 탁... 탁... 탁...탁... 탁..."
나는 숨을 죽였다. 하지만 소리는 계속됐다. 점점 더 강하게, 더 빨리.
나는 이불을 뒤집어쓰고 눈을 꼭 감았다. 절대 창문을 보고 싶지 않았다. 내 손바닥은 땀으로 흠뻑 젖었다.
그러다... 갑자기 소리가 멈췄다.
긴장한 채로 몇 분을 더 버텼을까. 용기를 내어 살짝 이불을 들추었을 때, 창문 너머로 희미한 목소리가 들려왔다.
"다음엔… 문을 열어줘…"
나는 비명을 지르며 기절해버렸다.
아침에 눈을 뜨니 아무 일도 없던 것 같았다. 잠시 악몽을 꾼 것이라 생각했다.
문 앞에 검은 발자국을 보기 전까지는...
그날 이후, 나는 다시는 보름달이 뜨는 밤에 창문을 열지 않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