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94년, 한적한 시골 마을.
 
영민이 이곳으로 발령된 지도 벌써 몇 달이 흘렀다.
 
국내 마약 유통을 조사하던 중, 거대 연예기획사가 연루된 정황을 포착한 직후였다.
 
영민은 종결 지시가 내려온 걸 몇 차례나 무시한 채 악착같이 수사에 매달렸다.
 
그 결과, 시골에 자리한 작은 파출소로 유배 아닌 유배를 오게 됐다.
 
‘1년만 푹 쉬고 와.’
 
잡초더미처럼 자라난 옆머리를, 텅 빈 정수리까지 빗어 올린 서장이 뱉은 말이었다.
 
덮을 수 있을 때 덮어야 하는 사건도 있는 법이라며.
 
영민은 허탈함에 웃음이 나왔다.
 
제 머리도 똑바로 못 덮으면서 무슨…….
 
세상에 영원한 비밀은 없다고, 반장에게 삿대질까지 하고 나왔건만.
 
그에게 남은 건 사방이 뻥 뚫린 논밭뿐이었다.
 
답답했다.
 
귀가 잘 안 들리는 상회 주인에게서 담배를 사는 것보다.
 
비만 왔다 하면 전화기 연결이 끊어지는 것보다.
 
여길 벗어날 수 없다는 사실이 더 답답했다.
 
“후…….”
 
담배 연기를 뱉은 영민이 불만 가득한 얼굴로 주위를 둘러본다.
 
시골 파출소라서 일이 적을 줄 알았는데.
 
오히려 도심보다 관할 구역이 더 넓어서 온종일 돌아다녀야 했다.
 
그중에서도 이곳, 웅촌골은 들어올 때마다 기분이 영 내키질 않았다.
 
마을로 드나드는 길목이 하나 뿐인 것도 그랬고, 그마저도 수십 미터 길이의 터널을 지나야 마을이 보였다.
 
문득, 웅촌골 쪽으로는 절대 순찰을 돌지 말라던 파출소장의 지시가 뇌리를 스친다.
 
‘웅촌골은 그냥 치외법권 지역이라고 생각해. 자체적으로 알아서 하니까.’
 
그러나 영민은 하지 말라고 할수록 더 하고 싶은 청개구리 심보가 있었다.
 
치외법권 같은 소리하고 자빠졌네.
 
스무 가구쯤 되는 작은 마을을 한 바퀴 도는 게 그렇게나 귀찮아서야.
 
터벅터벅 걷던 영민은 시골집 앞 평상에 걸터앉아 제집인 양 담장 너머를 바라보았다.
 
높이 자란 감나무가 평상 위까지 뻗어나 있었다.
 
거센 바람에 이리저리 흔들리는 나뭇가지들.
 
스멀스멀 몰려드는 먹구름 아래, 심상치 않은 바람이 불어오고 있었다.
 
이곳, 장 씨 노파의 집은 그가 웅촌골에 들어올 때면 가장 먼저 들리는 곳이었다.
 
다른 마을과 달리, 거주자들의 연령대가 비교적 낮았던 웅촌골.
 
장 씨는 이 마을에 사는 사람 중 가장 연장자였다.
 
덜컹덜컹!
 
“할머니!”
 
굳게 닫힌 대문을 붙잡은 채 까치발을 든 영민이 언성을 높인다.
 
그러자 허리가 굽은 노파가 지팡이와 함께 마당을 가로질러 나왔다.
 
“왜 문을 흔들고 지랄이여?”
 
“거 말씀을 참…… 생긴 것처럼 예쁘게 하시네.”
 
“왜 왔냐고.”
 
곳곳에 검버섯이 핀 눈가, 그 위로 굽어진 주름들이 영민을 향했다.
 
“왜 왔긴요. 신고하셨잖아요.”
 
“야 이 썩을 놈아. 나라의 녹을 먹는 순사가 말투가 왜 그려? 일이 하기 싫으면 하질 말 것이지. 어디서 면상을 찌그러뜨리고 지랄이여, 지랄이.”
 
영민은 그제야 귀찮은 기색이 역력하던 눈가를 풀고 헛기침을 했다.
 
“크흠! 아무튼…… 무슨 일로 신고하셨어요?”
 
“너, 내가 그저께 면사무소 가서 확인하라고 한 건 다 한 겨?”
 
“예? 아, 맞다. 그랬지.”
 
“하여간 젊은 놈이 다 죽어가는 나보다 대구빡이 더 안 돌아가.”
 
노파는 중얼거리며 등을 돌렸다.
 
“그거 때문에 신고하신 거예요?”
 
“그럼 뭐, 이 촌구석에 도둑이라도 들었을까 봐?”
 
“태풍 오고 있대요. 문단속 똑바로 하시고, 마당으로 나오지 마세요.”
 
“염병. 내 집구석에서 내가 돌아다니겠다는데 네가 왜?”
 
“저는 분명히 경고했습니다.”
 
문을 닫고 나선 영민은 순찰차로 걸어가려다 말고 집을 한 바퀴 돌아보았다.
 
언제 쌓아 올렸는지도 모를 허술한 담장이 과연 태풍을 버텨낼까 싶었다.
 
노파를 향해 뭐라고 소리치려던 영민은 생각을 거두고 돌아섰다.
 
보나 마나 욕이나 얻어먹겠지.
 
시동을 거는 영민의 머릿속으로 웅촌골 사람들과의 대화가 떠올랐다.
 
영민이 간혹 장 씨 노파에 대해 언급할 때면 하나같이 얼굴이 굳어지던 마을 사람들.
 
하긴, 노파의 성격만 봐도 마을 사람들과 잘 지낼 것 같진 않았다.
 
울퉁불퉁한 비포장도로를 따라 웅촌골을 거의 다 벗어날 때쯤.
 
무전기로 파출소장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치직!
 
[영민아.]
 
“예.”
 
[어디여?]
 
“웅촌이요.”
 
[거기 가지 말라니까 왜 자꾸 드나드는 겨.]
 
“아니, 그럼 신고가 들어왔는데 무시합니까?”
 
하여간 시골 인심 하고는.
 
영민은 창밖으로 침을 뱉었다.
 
[자꾸 거짓말 할래? 웅촌골은 자기들끼리 알아서 한다니까? 누가 신고를 한다고 헛소리여, 헛소리가. 시키지도 않은 짓 하지 말고 들어와서 벽돌이나 좀 날라.]
 
“예? 벽돌이요?”
 
[그래. 태풍 오기 전에 파출소 담장 보수한다고 왔는데, 인부 하나가 일하기 싫다고 도망갔다네.]
 
영민은 저도 모르게 탄식했다.
 
이 빌어먹을 시골 파출소는 하나부터 열까지 마음에 드는 게 없었다.
 
그는 시계로 시선을 돌렸다.
 
면사무소에 가서 뭘 확인하라던 장 씨 노파의 말이 떠오른다.
 
지금 안 가면 곧 문을 닫을 테고, 내일부터 주말이라 또 며칠을 기다려야 했다.
 
“면사무소 갔다가 갑니다.”
 
그 뒤로도 파출소장이 뭐라고 떠들어댔지만, 영민은 볼륨을 낮춰버렸다.
 
며칠 전에 하는 것도 아니고, 태풍이 오기 직전에 담장을 쌓는다는 게 말이나 되는 소린지.
 
시멘트가 마르기도 전에 비바람이 몰아칠 게 분명한데 말이다.
 
서서히 땅거미가 내려앉는 시골길을 나아가던 영민의 순찰차가 면사무소 앞에 멈춰 섰다.
 
면사무소에는 여직원 두 명만 덩그러니 앉아 있었다.
 
“다들 어디 갔어요?”
 
“태풍 온다고 시설 보수하러 나갔어요.”
 
“왜 그걸 이제 해요?”
 
“저야 모르죠.”
 
책상에 앉아 있던 여직원이 어깨를 으쓱거린다.
 
“그런데 무슨 일로 오셨어요?”
 
“아…… 그렇지. 저기 웅촌골에 사는 장춘자 할머니네 손녀요. 사망 기록 좀 확인하러 왔는데요.”
 
“예?”
 
“할머니가 손녀 사망신고 제대로 됐는지 확인해 달라고 해서요.”
 
눈을 이리저리 굴리던 여직원이 뒤에 앉은 동료를 바라보았다.
 
두 사람의 눈빛은 뭐랄까.
 
어딘가 모르게 꺼림직한 기운이 느껴졌다.
 
“장춘자 할머니가…… 그랬다고요?”
 
“네. 왜 그래요?”
 
영민이 이마를 긁적이며 물었다.
 
“장난치시는 거면 그 정도만 하시죠.”
 
“하아……. 내가 그렇게 한가해 보여요? 저기서는 벽돌을 쌓으러 오라고 하질 않나, 여기서는 장난치지 말라고 하지를 않나. 저 바빠요. 온종일 돌아다녔다고요.”
 
자연스레 높아지는 언성에 여직원의 얼굴도 덩달아 불쾌하게 일그러졌다.
 
“장난이 아니면요? 형사님이 죽은 장춘자 할머니랑 대화라도 했다는 거예요?”
 
영민은 말문이 막혀버렸다.
 
하고 싶은 말이 많았지만, 무슨 말부터 해야 좋을지 몰랐다.
 
결국 그가 선택한 건.
 
“아, 진짜 뭐라는 거야. 됐고, 사망신고 똑바로 접수됐는지나 좀 봐줘요. 그냥 서류가 있는지만 말해주면 돼요.”
 
“형사님.”
 
자리에서 벌떡 일어선 여직원이 아랫입술을 꽉 깨문 채 말했다.
 
“장춘자 할머니, 몇 달 전에 돌아가셨다고요. 근데 왜 자꾸 할머니 부탁으로 왔다 그래요? 날도 어두침침해서 무서워 죽겠는데.”
 
“아니……. 내가 방금 장 씨 할머니를 만나고 왔다니깐. 그동안 몇 번이나…….”
 
그때였다.
 
잠시 뒷문으로 열고 나갔던 다른 여직원이 서류 하나를 들고 나타났다.
 
“이거 보세요. 이름 장춘자. 주소, 맞죠? 사망 처리 돼 있잖아요. 이게 지금 뭐 하시는 거예요?”
 
서류를 뺏어 든 영민은 뒤통수를 얻어맞은 것처럼 멍해졌다.
 
이름도, 주소도, 모두 일치했다.
 
그럼 도대체 지난 몇 달간 영민이 찾아갔던 사람은 누구란 말인가.
 
“그, 그럼 손녀는? 손녀는요?”
 
“그 집에 다녀오셨다면서요. 거기 지금 할머니네 손녀 혼자 살고 있잖아요. 정신 약간 이상한 애.”
 
그로부터 몇 번의 대화가 오간 뒤.
 
면사무소를 뛰쳐나온 영민은 곧장 차를 몰아 웅촌골로 향했다.
 
추적추적 내리던 빗방울은 이내 비바람이 되어 매섭게 몰아치고 있었다.
 
‘마을 사람들이 자기한테 해코지를 했다고 헛소문 퍼트리고 다니던 애였는데. 정신이 좀 오락가락 하나 봐요.’
 
‘거기 진짜 걔 혼자 살아요.’
 
‘온 마을 사람들이 걔 하나 챙기려고 돌아가며 그 집을 찾아가곤 했죠. 이 사진 봐요. 얘 정말 못 봤어요?’
 
‘저번에는 도시까지 나가서 신고했다니까요. 마을 사람들이 자기를 어쨌다나……. 유명해요. 면장님이 정신과 의사까지 데리고 와서 상담하고 그랬는데.’
 
혼란스러웠다.
 
지금껏 겪은 모든 경험이 신기루처럼 흩어지는 기분이었다.
 
분명 장 씨 노파는 실재했다.
 
저번에는 감을 따다 챙겨주기도 했고, 날이 덥다며 냉수를 건네기도 했는데.
 
몇 달 전에 사망한 사람이라니.
 
믿을 수가 없었다.
 
우수수!
 
터널로 진입하려는 영민의 순찰차 위로 부러진 나뭇가지들이 쏟아져 내렸다.
 
터널 양쪽으로 우거진 숲이 갈대처럼 흔들리고.
 
나무를 지탱하던 토산이 거짓말처럼 갈라지기 시작했다.
 
이대로 터널에 들어가면…….
 
한동안 못 나올지도 몰랐다.
 
그러나 불안한 마음과는 다르게 영민은 페달을 더욱 더 깊게 밟고 있었다.
 
아니나 다를까.
 
터널을 벗어나자마자 뒤통수로부터 토산이 무너지는 소리가 들려왔다.
 
이제 돌이킬 수 없었다.
 
순찰차는 거센 바람을 뚫으며 마을을 가로질렀다.
 
태풍 때문인지는 몰라도 마을은 한산하다 못해 고요할 만큼 인적이 없었다.
 
비포장길을 질주한 순찰차가 익숙한 감나무 아래에서 멈춰 섰다.
 
콰직! 콰지직!
 
문을 열자마자 담장 밖으로 튀어나온 나뭇가지들이 강풍에 부러지며 휘날렸다.
 
영민은 평상을 밟고 올라섰다.
 
마당에는 아무도 없었다.
 
하지만 분명한 사람의 발자국이 찍혀 있었다.
 
그 흔적을 따라, 아까 노파를 만났을 때를 떠올려보았다.
 
발자국 옆으로 보이는 선명한 지팡이 자국까지.
 
역시 장 씨 노파는 실재했다.
 
영민이 미친 게 아니었던 것이다.
 
두근두근!
 
거센 바람 소리에 영민의 가슴도 함께 뛰었다.
 
“할머니!”
 
다급해진 영민은 순식간에 담장을 뛰어넘어 집안으로 들어섰다.
 
아무도 없었다.
 
어딜 뒤져봐도 사람은 보이지 않았다.
 
혹시 태풍에 대비해 마을 회관에 모여 있는 건 아닐까.
 
문득 마을 사람들이 장 씨의 손녀를 살뜰하게 챙겼다던 여직원의 말이 떠올랐다.
 
어쩌면 그들이 장 씨인지 손녀인지 모를 그녀를 데리고 갔을 수도 있을 거라 생각하자.
 
영민은 순찰차를 내팽개친 채 마을 회관을 향해 죽기 살기로 달렸다.
 
불안했다.
 
당장 무슨 일이 벌어질 것만 같은 비현실적인 감각이 전신을 휘감고 있었다.
 
형사로서의 직감이, 한 인간으로서의 촉이.
 
그렇게 말하고 있었다.
 
뒤이어 도착한 마을 회관의 입구.
 
웬 중년의 남성이 배를 움켜쥔 채 비틀거리며 다가온다.
 
영민을 발견한 그는 꽃게처럼 피거품을 물더니, 이내 바닥에 처박혀버렸다.
 
몰아치는 강풍 속으로 짙은 피비린내가 물씬 풍겨왔다.
 
도대체 무슨 일이 일어나고 있는 건지.
 
남성의 상태를 살핀 영민이 마을 회관으로 들어서는 그 순간.
 
그는 걸음을 멈추고 말았다.
 
바닥에 낭자한 핏자국과 복부를 붙잡은 채 쓰러진 사람들.
 
그들 모두 숨을 거둔 뒤였다.
 
영민은 입구에 쓰러졌던 남성을 끌고 회관으로 들어왔다.
 
“누가 이랬어요? 예? 누가 이랬냐고요!”
 
피거품을 물던 남성이 영민의 어깨를 붙잡는다.
 
“할매가…… 할매가 살아 돌아온 겨. 우릴 싹 다 죽여버리려고 돌아온 겨.”
 
“그게 무슨 소리예요?”
 
“난 아무 짓도 안 했어. 하지만 말리지도 않았지. 다 알고 있었으면서. 쿨럭!”
 
남성은 시커먼 피를 한 움큼 토해냈다.
 
“아저씨? 아저씨!”
 
“사람들이… 감나무 집 손녀딸한테… 못 할 짓을…….”
 
그는 그 말을 끝으로 숨을 거두었다.
 
영민의 손이 바들바들 떨렸다.
 
낭자한 피보다 회관 안을 가득 채운 시체의 숫자가 더 경악스러웠다.
 
천천히 실내를 살펴보는 영민.
 
다들 식칼과 낫에 당한 듯했다
 
그런데 저항한 흔적이 없다.
 
그 흔한 방어흔조차 보이질 않았다.
 
절반 이상이 눈을 뜬 채로 죽은 게, 못 볼 거라도 본 듯한 얼굴이었다.
 
발걸음을 돌려 회관을 빠져나가려던 영민은 금세 포기해야 했다.
 
바람이 너무 거세서 한 발자국도 내디딜 수가 없었기 때문이다.
 
그로부터 두 시간이 흐른 뒤.
 
시신을 살피던 영민은 약해진 바람 소리를 따라 회관 밖으로 나섰다.
 
여전히 바람이 불고 있었지만, 두 시간 전에 비하면 꽤 약해진 상태였다.
 
시체들 중 보이지 않는 사람은 장 씨 노파뿐.
 
유일한 목격자가 사망 직전에 남긴 말들로 유추해볼 때.
 
노파 혼자 이 많은 사람을 죽였다고는 볼 수 없으나, 깊이 연루되어 있다는 것만큼은 확실했다.
 
어두컴컴한 하늘에는 짙은 먹구름이 바람을 따라 빠르게 이동하고 있었다.
 
몇 안 되는 가로등이 박살 난 것을 확인한 영민이 트렁크에서 손전등을 꺼낸다.
 
우선 장 씨를 찾아야 했다.
 
겨우 연락이 닿은 파출소에 사건 소식을 알리고는 망설임 없이 돌아섰다.
 
어차피 터널 입구가 무너져 당장은 아무도 들어오지 못할 것이다.
 
어두컴컴한 일대에 몰아치는 비바람과 회관을 가득 채운 시체들.
 
손전등을 거머쥔 영민의 손에 잔뜩 힘이 들어갔다.
 
그렇게 마을을 반 바퀴쯤 돌아 언덕에 다다랐을 무렵.
 
눈에 띄게 줄어든 바람 사이로 희미한 달빛이 쏟아지기 시작했다.
 
멈칫.
 
언덕 위에 누군가 서 있었다.
 
익숙한 옷가지와 지팡이 없이는 걷지 못할 만큼 굽어버린 허리, 곱게 빗어 묶은 백발의 머리칼.
 
장 씨 노파가 틀림없었다.
 
그런데…….
 
지팡이를 내팽개친 그녀가 거짓말처럼 허리를 펴기 시작했다.
 
까득! 까드득!
 
쏟아지는 달빛 아래, 기괴한 소리를 내며 허리를 펴는 노파의 모습.
 
그 소름 끼치는 광경에 영민의 얼굴이 덜덜 떨렸다.
 
뒤이어 천천히 고개를 돌린 그녀가 영민을 똑바로 바라본다.
 
이번에는 양손으로 얼굴을 붙잡더니 망설임 없이 살가죽을 찢어버렸다.
 
쭈글쭈글한 주름 사이로 드러나는 뽀얀 피부와 찰랑거리는 머릿결이 달빛에 반짝인다.
 
순간 영민은 심장이 멎는 것 같았다.
 
면사무소 여직원이 보여줬던 사진.
 
장 씨 노파의 손녀라던 사진 속 주인공이 영민의 앞에 서 있었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