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게는 3년 전 세상을 떠난 절친이 있다.
양정미.
이 이야기는 그녀가 죽기 전 내게 들려준, 믿기 힘든 이야기를 재구성한 것이다.

"야, 축하한다. 그렇게 유난 떨더니 결국 해냈네?"

2021년 5월.정미가 소방공무원 시험에 합격했다는 소식을 듣고, 우리는 거하게 축하주를 나눴다.어릴 적부터 소방일에 남다른 관심을 보이던 정미는 언제나 한 길만 바라보며 달려온 아이였다.
부족한 체력을 보완하기 위해 매일 운동으로 몸을 다졌고, 시험 공부도 누구보다 열심히 했다.두 번의 낙방 끝에 마침내 고지를 밟은 것이다.

"이제부터 진짜 시작이지. 고마워, 다들. 나 진짜 열심히 할 거야."

그녀는 기대와 흥분으로 들뜬 얼굴이었다.자신에게 맞는 일을 찾았고, 꿈을 이룬 사람이 가진 반짝이는 눈빛이었다.
정미는 그렇게 소방대원으로 1년을 근무했다.그 무렵 우리는 각자의 일상에 치여 자주 보지 못했다.전화 통화도 한 달에 두세 번, 얼굴을 보는 건 몇 달에 한 번이 고작이었다.
그러다 어느 날, 자정이 조금 지난 시각.정미에게서 전화가 걸려왔다.졸린 눈을 비비며 받은 통화. 낯익은 이름에 반가움보다 걱정이 앞섰다.

"희경아... 나, 나 요즘 좀 이상한 것 같아."
"무슨 일인데 그래? 무슨 소리야?"
"그게... 나... 귀신한테 신고 전화가 와."

한순간 침묵이 흘렀다. 나는 웃음을 터뜨릴 뻔했다.하지만 정미의 목소리는 장난스러운 기색이 전혀 없었다.무언가에 짓눌린 듯, 겁에 질린 기색이 역력했다.

"...그러니까, 너 말은 이미 죽은 사람들이... 신고를 해 온다는 거야?"
"그래. 내가 일직을 서는 날이면 꼭 한 통씩... 그런데 알고 보면, 그 신고자들이... 이미 다 죽은 사람들이었어. 정말로."

믿기 어려웠다. 아니, 믿고 싶지 않았다.정미는 그 이후로도 몇 차례에 걸쳐 나에게 이런 전화를 걸어왔다.늘 떨리는 목소리로, 고통을 호소하며.
나는 그 이야기를 친구들에게 전했다.

"그러니까, 정미가 일직 설 때마다 사망한 피해자들이 전화를 한다는 거야? 그럼 귀신이 신고한다는거네?“
"응, 그렇게 말하더라."
"야... 그게 말이 되냐?"

은수는 피식 웃었다.

"요즘 119 신고 접수원들 스트레스 장난 아니래. 별별 전화 다 받는다더라. 정미도 그래서 지친 거야."

다른 친구들도 비슷한 반응이었다.과도한 업무로 인한 착란, 혹은 환청일 거라고. 나 역시 어느새 그 말을 받아들이고 있었다.
그러던 어느 날, 또다시 자정 넘은 시각.정미에게서 전화가 왔다.나는 또 같은 이야기를 하려나 싶어 느슨한 마음으로 전화를 받았다.
그런데 낯선 목소리가 먼저 들려왔다.

"저기요... 여기 10층에서 사람이 떨어졌어요... 투신자살요."

나는 순간 숨을 멈췄다. 이게 무슨 장난인가 싶었다.그러자 이번엔 익숙한, 그러나 절박하게 떨리는 정미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희경아. 끊어. 제발... 듣지 마. 절대 듣지 마."
"무슨 소리야? 왜 그래?"
"나는 끊을 수 없어. 너가 끊어야 돼. 지금 당장 끊어. 제발..."

정미는 거의 울먹이고 있었다. 하지만 나는 끊지 못했다.귀에서 땀이 흐르고, 숨이 가빠오는데도... 이상한 호기심이 나를 눌렀다.나는 수화기를 더 바짝 귀에 붙였다.
다시 낯선 신고자의 목소리가 이어졌다.

"빨리요. 여기 사람이 떨어졌다고요."

정미는 한참을 침묵하더니 떨리는 목소리로 말했다.

"위치가... 어디세요, 신고자분?"
"천호동 XX아파트 3동, 1·2라인 화단이요."

그때, 나는 정미의 숨소리가 무너지는 것을 느꼈다.
그녀는 두려움에 질려 있었고, 동시에 무언가를 예감한 듯했다.
나는 멍하니 수화기를 쥔 채, 두 사람의 통화를 듣고 있었다.
그리고, 마지막 질문이 나왔다.

"투신하신 분... 목격하신 건가요?"

잠시 정적.
그 뒤를 이은 말은 내 평생 잊지 못할 한 마디였다.

"아뇨. 제가 투신했어요. 벌써 5분이나 지났다구요.”

숨소리가 멎었다.수화기 너머로 무언가 묘한 정적이 흘렀다.
그 다음, 신고자는 아주 조용히 말했다.

"빨리 와 주세요. 머리가 다 깨져 버렸으니까.“

뚝.
전화는 그대로 끊겼다.정미의 전화도, 신고자의 전화도.
나는 떨리는 손으로 정미에게 다시 전화를 걸었다.하지만 그녀는 끝내 받지 않았다.

난 다음날 열일을 젖혀두고 정미를 찾아갔다.
하지만 그녀는 병가로 출근하지 않은 상태였다.
집으로 찾아갔지만 그곳에도 없었다.
다시 정미를 만난 것은 그 기괴한 일이 있은 후 2주가 더 지나서였다.
갑자기 회사로 찾아온 정미를 본 나는 미친사람처럼 그날의 일에 대해 질문 세례를 퍼부었다.

”진짜였어? 그럼 그 사람... 귀신이었니?“

정미는 내게 오히려 물었다.

”다 들었구나 결국...“
”당연하지 다 들렸어.“
”내가 끊으라고 했잖아.“
”아니 지금 그게 중요한게 아니고....“
”그게 중요해. 넌 아무것도 몰라.“

정미는 도통 이해할 수 없는 말을 할 뿐이었다.
잠시 진정이 된 나는 그제야 그녀의 상태를 걱정했고, 정미도 어느정도 안정이 되는 듯 했다.
그리고 잠시 후 그녀는 내게 충격적인 지난 일 하나를 들려주었다.

”그날이었어. 시작이... 윤선배랑 처음 일직 서던 날...“

*******************

정미에게는 윤청운이라는 직계 사수가 있었단다.
두 사람이 처음 일직을 서던 날, 정미는 한껏 들떠 있었지만 윤청운의 안색은 어딘지 모르게 긴장감이 가득해 보였단다.
노련한 베테랑과 갓 들어온 신입의 입장이 바뀐것 같은....
하지만 정미는 그런 것들을 인식하지 못할만큼 의욕이 넘쳐 있었다.
그리고 자정 무렵 일이 터졌다고 했다.
신고 접화를 받는 윤청운의 안색이 너무 창백했다지 뭔가.
마치 금방 죽은 시체라도 되는냥 질릴대로 질린 흰 얼굴...

”선배님... 괜찮으세요?“

정미가 물었고 윤청운은 대답이 없었다고...
그때 신고 라인의 통신선 버튼이 아래로 내려진 것을 본 정미가 그것을 위로 올리려고 했다. 그래야 신고 접수 내용이 녹음이 되기 때문에...
그런데 그때 윤창운이 화들짝 놀라 정미를 밀쳤다고 했다.

”안돼. 녹음하지 마.“
”네?“
”듣지말라고.“
”선배님...“

윤청운은 제 정신이 아닌 사람 같았다. 하지만 신고 통화는 계속 이어지고 있었고, 녹음을 요구하는 신호음도 지속되었다. 결국 정미는 윤청운의 만류를 뚫고 버튼을 위로 올렸다.
그날 근무가 끝났을 때 윤청운은 정미에게 말했다.

”그 녹음파일 절대 열지마라.“

하지만 인간의 호기심이란...
정미는 기어이 그날의 녹음파일을 열어 듣게 되고, 큰 충격에 휩싸였단다.

-집에 불이 났어요 빨리요...
-신고자분...어디시죠?
-삼청동 xx로 22... 2층
-거주자분이신가요?
-네. 근데 지금 온 몸에 불이 붙어서 살이 다 타고 뼈까지 드러났어요. 아무래도 죽은 것 같아요 제가...

여기서 윤창운의 목소리는 끊겼지만 신고자는 계속 말을 이어갔다.

-뜨거워 미치겠어... 그러니까 지금 당장 튀어오라고!! 내 시신 좀 수습해 어서...

정미는 소름이 돋았단다.
장난전화?
아니면.... 이게 뭐지?
하지만 그날 이 후 윤창운은 결국 다른 근무지로 전출을 가 버렸고 그 어떤 설명조차 남기지 않았다.
그저 다시 한 번 녹음파일을 열지 말라는 짧은 당부만 남긴 채...
그리고 윤창운이 사라진 후, 이상한 신고 전화는 정미에게 오게 되었단다.
이미 죽은 사망자들의 신고..
즉 귀신이 그녀에게 전화를 걸기 시작한 것이다.

******************

난 그녀의 이야기를 들으면서도 도무지 믿을 수가 없었다.
하지만 2주 전, 그녀의 폰 너머로 들려온 그 대화 내용은 내 머릿속에서 떠나지 않았다.
정미는 한숨을 쉬며 내게 말했다.

”미안해. 내가 하필 그때 너한테 전화를 해서...“
”그게 왜 미안할 일이야.“
”연신아...!나 어떡하니 진짜 너한테 미안해서...“

어딘지 진한 죄책감이 느껴지는 정미의 얼굴과 말투.
난 그런 그녀를 위로하며 집으로 돌아왔다.
그리고 그것이 정미와의 마지막 조우였다.
사흘 뒤 난 충격적인 소식을 접하게 된다.
포털 뉴스 한 구석을 차지한 단편 보도 하나가 눈에 띄었다.

-천호2동 소방청사에서 30대 여 소방대원. 과중한 업무에 의한 스트레스로 인해 청사 건물 옥상에서 투신 사망.

천호2동? 정미네 회사네?
난 처음에는 그저 살짝 놀라는 정도였다. 하지만 그날 오후 난 패닉에 빠져 버리고 만다.
투신한 그 여 소방대원...
그녀가 바로 정미였다.
그리고 그녀의 장례식 후 사흘이 지났을 무렵...
난 마침내 그녀가 왜 나한테 그토록 죄책감을 가졌는지를 알게 된다.
어느날 밤 약간 설잠이 든 내게 폰 벨소리가 들려왔고, 비몽사몽간에 전화를 받았었다.
그러자 다급한 누군가의 목소리가 내 귓전을 날카롭게 파고 들었다.

”여보세요? 여기 누가 농약을 먹었어요. 빨리 좀 와 주세요.“

난 전화를 잘못 걸었다고 여겼다.

”누구세요? 119에 전화를 하셔야죠.“

그렇게 전화를 끊고 다시 잠을 청했지만 폰은 재차 울렸다.

”농약을 먹었어요. 위가 다 녹아내리고... 지금 너무 아파요.... 빨리요 빨리...“
”저기요. 119 아니에요. 개인 폰이라구요. 장난전화시면 경찰에 신고합니다.“

다시 전화를 끊었지만 이상한 신고전화는 또 울렸다.
난 받지 않으려고 했지만 알 수 없는 어떤 느낌이 기어이 폰을 다시 내 손에 들리게 했다.

”너무 아파요... 빨리요 빨리...“
”저기... 가족이세요?“

결국 난 그 사람의 신상에 대해 물었고, 잠시 후 내 전신은 얼음처럼 얼어붙고 말았다.

”아니요. 나야 나. 내가 농약을 마셨다니까. 10분전에... 지금 배가 너무 아파. 그러니 빨리 와서 내 시체 좀 가져가라고 어서!“
”무...무슨 소리에요 지금? 119...119에 신고하세요...“

난 두려움에 덜덜 떨고 있었다.
그런 내게 상대는 어느새 차분해진 목소리로 이렇게 한 마디를 남겼다.

”다음 너 맞잖아. 아냐?“

난 그때 손에서 폰을 놓쳐 버렸고, 나도 모르게 정미의 이름을 머릿속으로 되뇌이고 있었다.

그날 이 후 내 폰으로는 여전히 이상한 신고 전화가 걸려오고 있다.
각종 사건 사고의 신고전화.
물론 그 발신자들은 사고의 피해자들... 더 정확하게는 이미 사망한 당사자들이다.
즉, 귀신이 직접 내게 도움을 요청한다고나 할까...
정미에게 내린 저주가 내게 되물림된것도 같다.
윤창운의 저주가 그녀에게 덧씌워진 것처럼...
아마 정미는 그래서 그 죄책감을 이기지 못한 것일지도 모른다.
나 역시 처음에는 너무 두렵고 무서워 어찌할바를 몰랐다.
하지만 지금은 아니다.
오늘도 자정 무렵 내 폰의 벨소리가 요란하게 울어댄다.

”켁켁.. 숨이 막혀... 탄...탄을 피웠다고.“
”어디세요?“
”대방동 xx로 56 2층...“

난 차분하게 응대를 하고, 마치 노련한 접수원처럼 굴고 있다.
그리고 통화가 끝나면 119로 다시 전화를 건다.
그리고 그것이 끝이다.
난 내 이런 이상한 통화를 결코 제3자에게 들려주지 않는다.
정미가 느꼈을 그 죄책감의 무게를 이제는 너무나 잘 이해하고 있기에...

아무튼 그래서 다시 한 번 말하자면...
난 오늘밤도 그들로부터 신고 전화를 받고 있다.
그들이 누구냐고?
그게 아직도 의심스럽고 궁금하니? 그럼 내 통화녹음 한 번 들어볼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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간만에 웃대 컴백... 기념 단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