눈에 잘 보이지 않을 정도로 가는 비가 내리는 날이었다. 나는 여느 때처럼 밤 12시부터 주유소 사무실에 앉아 핸드폰이나 뒤적거리고 있었다.

교외에 있는 주유소에서 새벽 아르바이트를 해본 사람은 알겠지만, 사실 이 시간대에 오는 손님은 거의 없다. 한 시간에 차 두 대 정도 보면 많이 보는 편이다. 가끔은 이렇게 아르바이트를 날로 먹어도 되는 걸까, 라는 생각이 들기도 했다.

그날도 별다를 게 없었다. 심지어 비도 와서 그런지, 내가 자리를 맡기 시작한 이래 두 시간 동안 차는 단 한 대도 보이지 않았다.

핸드폰을 보는 것마저 지루했던 나는 잠깐 책상에 엎드렸는데, 깜빡 잠이 들었나 보다. 고개를 들었을 때는 이미 주유소 한복판에 차 한 대가 가만히 서 있었다.

나는 얼른 자리에서 일어나 헤드라이트가 켜져 있는 자동차를 향해 달려나갔다. 가까이서 보니, 검은색 제네시스 세단이었다.

내가 주유기 앞에 도착하자 그제야 운전석 창문이 내려갔다. 머리가 꽤 벗겨져 40대 후반으로 보이는 아저씨가 앉아 있었는데, 어딘가 급한 일이라도 있는 사람처럼 안절부절못하고 있었다.

“저, 저기, 미안하지만 기름을 넣으려는 건 아니고요, 그, 그러니까……” 아저씨가 말했다.

“네? 아, 화장실은 사무실 뒤편에 있어요.”

“아, 아뇨, 그런 게 아니라……” 아저씨는 자꾸만 입을 달싹이다가 말을 이었다. “아, 맞아. 혹시 S시로 가려면 어, 어디로 가야 합니까?”

“S시요? 이미 지나치셨는데요. 방금 고가 옆으로 빠져서 내려오셨죠? 그 고가도로를 타야 돼요.”

“그, 그렇습니까? 다, 다른 길은 없나요?”

“저도 이 주변은 자세히 몰라서요. 지금 가는 방향으로 1킬로미터 정도 가면 유턴하는 데 있으니까, 거기서 다시 돌아와야 할 거 같은데요.”

내가 말을 마치자 아저씨는 오른손 검지로 핸들을 톡톡 치며 알 수 없는 미소를 지으며 대답했다.

“아주 고마워요, 처, 청년.”

그 말을 끝으로 검은색 제네시스는 가는 빗속으로 사라졌다. 나는 다시금 사무실로 터덜터덜 걸어갔다.

솔직히 말해 기분 좋은 사람은 아니었다. 말을 더듬는 것부터 시작해서, 뭐 마려운 개처럼 눈과 손을 가만히 내버려두지 못했으니까. 금방 정신병원에서 탈출이라도 했다는 듯이. 그리고 길은 내비게이션으로 찾는 게 더 쉬울 텐데 말이다. 뭐, 어느 정도 나이를 먹은 사람은 기계보다 사람이 더 편할 수도 있으니, 그러려니 했지만.

약 10분 정도 흘렀을 때였다. 어느새 비는 거세졌고, 나는 적적하니 핸드폰으로 음악을 튼 채 되도 않는 춤을 추고 있었다. 이대로만 가면 아르바이트가 끝날 때까지 자동차가 한 대도 오지 않을 것 같았다.

하지만 그때 밖에서 엔진 소리가 들리더니, 빗속 사이로 새하얀 헤드라이트 불빛이 보이기 시작했다. 나는 얼른 달려나가 손님 맞을 준비를 했다.

다만 주유기 앞으로 천천히 등장하는 그 차를 보고 나는 잠시 얼어붙었다. 검은색 제네시스 세단이었다. 도로를 달리는 동안 와이퍼를 작동시키지 않았는지, 앞유리에는 물방울이 송골송골 맺혀 있었다.

이윽고 제네시스가 내 앞에 섰고, 운전석 창문이 기계음을 내며 내려갔다. 10분 전에 본 아저씨가 그대로 앉아 있었다. 초조해 보이는 표정과, 연신 핸들을 두드리는 검지도 여전했다.

“저, 저기, 미안하지만 기름을 넣을 건 아니고……” 아저씨가 말했다.

“네네.” 나는 일단 맞장구를 쳤다. 그래야 할 것 같았다.

“호, 혹시, 어디로 가야 합니까? 아, 그러니까, S, S시로 가려면 어디로 가야 합니까?”

나는 침을 꿀꺽 삼키고는 대답했다.

“그, 방금 고가 옆으로 빠져서 내려오셨죠? 그 고가를 타고 가야 S시가 나오거든요. 이 앞으로 1킬로미터 정도 가면 유턴하는 곳이 나오거든요? 거기서 유턴하시고, 고가를 타야할 거 같아요.”

“다른 길은 어, 없나요?”

“네, 없어요.” 내가 단호하게 말했다.

이번에도 아저씨는 알 수 없는 미소를 지었다. 다만 이번에는 내 눈을 똑바로 바라보고 있었다.

“아주 고마워요, 처, 청년.”

제네시스는 다시금 빗속으로 사라졌다.

나는 그제야 숨을 몰아쉬며 사무실로 돌아왔다. 돌아오자마자 일단 음악을 틀었다. 자꾸만 아저씨의 음침한 목소리가 머릿속을 헤집었기 때문이다.

그즈음 되니 머릿속이 복잡해지기 시작했다. 도대체 저 아저씨는 뭐하는 사람인 걸까? 나는 몇 가지 가설을 세워보았다. 단순한 괴짜, 정신병원에서 탈출한 사람, 초자연적인 무언가……

이리저리 고민을 해봤지만, 당연히 답이 나올 리가 없었다. 나는 결국 입술을 살풋 물고 핸드폰이나 뒤적거리기 시작했다. 아저씨 따위야 잊으면 그만이었다. 저러다가 집에 들어가 와이프한테 한껏 깨지겠지.

그렇게 유튜브나 보면서 낄낄거리고 있자, 밖에서 엔진 소리가 들렸다. 순간 나도 모르게 긴장을 했다. 그러나 차는 흰색 SUV였고, 나는 얼른 사무실에서 나가 손님을 맞이했다.

오늘 이래 처음 보는 정상적인 손님이었다. 손님은 5만 원어치 기름을 넣었고, 고개를 꾸벅 숙이고는 빗속으로 사라졌다. 나는 휘파람을 불며, 주유 노즐을 꽂고 사무실로 돌아가려 했다.

하지만 그때 새하얀 빛이 비를 가로지르며 주유소로 들어왔다. 검은색 제네시스 세단이었다. 나는 주유 노즐을 든 채 그대로 얼어붙었다.

이번에도 앞유리에 잔뜩 비를 묻히고 돌아온 제네시스는 내 바로 앞에 정차를 했다. 곧이어 창문이 내려갔는데, 이제는 그 기계음마저 소름이 끼쳤다.

“저, 저기, 길을 좀 여쭙고 싶습니다만……”

아저씨였다. 머리가 벗겨졌고, 눈과 손가락을 가만 내버려두지 못하고, 말을 더듬고, 숨소리가 거친 아저씨.

“호, 혹시 S시로 가려면 어디로 가야 합니까?”

나는 거의 울상을 짓고 있었고, 아무 말도 할 수 없었다. 그러자 아저씨 역시 핸들을 톡톡 두드리며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내가 입을 열 때까지 언제까지고 그러고 있을 것처럼. 거친 빗소리와 핸들을 두드리는 소리가 귓속에서 댕댕 울렸다.

“저, 저도 모르겠는데요……” 한참 시간이 흘러서야 내가 힘겹게 대답했다. 내 목소리에는 물기가 젖어 있었다.

“그, 그렇습니까? 하지만,” 아저씨가 천천히 고개를 돌려 나를 똑바로 바라보며 물었다. “저, 정말 모릅니까? 저는 그곳으로 꼬, 꼭 가야 합니다.”

“죄송하지만, 진짜 모르겠어요……”

“그럼 아, 아쉽게 됐군요. 그래도,”

아저씨는 느릿느릿, 그러나 끊임없이 입을 벌리기 시작했다. 사람의 입이 저렇게 벌어질 수 있나, 라는 생각이 들 정도로. 그러고선 헤벌쭉 웃으며 말했다.

“아주 고마워요, 청년.”

아저씨가 말을 마치자 운전석 창문이 올라가기 시작했다. 창문이 끝까지 올라가는 동안에도 아저씨의 입은 변함이 없었다. 이윽고 검은색 제네시스는 거센 빗속으로 사라졌다. 그 30초가 30분처럼 느껴졌다.

나는 얼른 사무실로 돌아가려 했으나, 다리가 잘 움직이지 않았다. 그래도 후들거리는 다리를 어떻게든 번갈아 내디뎌 사무실에 도착한 나는 책상 아래에 숨어 경찰에 전화를 걸어 말했다. 미친 사람이 자꾸 주유소에 들러서 이상한 소리를 내뱉으니까, 제발 빨리 좀 와달라고.

하지만 경찰은 그런 일로 출동하는 건 어려울 거 같다고 답변했다. 결국 나는 바닥을 때리는 거센 빗소리와 단둘이 남게 되었다.

잔뜩 겁에 질린 내가 할 수 있는 건 고작 창밖을 바라보는 것뿐이었다. 검은색 제네시스가 주유소로 다시 오지 않기를 기도하면서.

하지만 10분 정도 흐르자, 저 멀리서 헤드라이트 불빛이 보이기 시작했다. 나는 고민도 하지 않고 몸을 숙였다. 그러고선 조심스럽게 기어가 사무실 문을 잠그고, 몸을 웅크려 책상 아래에 숨었다. 곧이어 차가 주유기 앞에서 멈추는 소리가 들렸다.

어느 정도 예상을 했지만, 시간이 흘러도 차가 떠나는 소리가 들리지 않았다. 분명 그 아저씨였다. 내가 밖으로 나올 때까지 언제까지고 기다릴 그 아저씨. 무슨 짓을 저지를지 모르는 그 아저씨. 나는 손톱을 깨물며 연신 머릿속으로 되뇌었다. 절대 밖으로 나가지 않을 거라고.

그때였다. 책상 위에 올려둔 핸드폰이 알람 소리를 울리기 시작했다. 아르바이트 중간에 졸음을 깨우기 위해 평소 켜두던 알람이었다. 하필 음량도 거의 최대치에 가까워서 거의 땅을 뒤흔드는 듯한 요란한 소리가 났다.

알람을 끌 수도 없어 욕설을 곱씹고 있으니, 곧 자동차 문이 거칠게 닫히는 소리가 들렸다. 그리고 얼마 지나지 않아 사무실 창문에 메마른 똑똑 소리가 울려 퍼졌다.

“계십니까.”

지독히도 음산한 아저씨의 목소리였다. 나는 온몸에 식은땀을 흘리며 버텼으나, 노크 소리와 목소리는 끊이지 않았다. 10초 간격으로 똑똑, 그리고 “계십니까”.

그것이 몇 번이나 이어졌는지 모른다. 하지만 아저씨도 나를 그냥 놓아줄 생각은 없었는지 이윽고 사무실 문고리가 덜컹거리기 시작했다.

“길을 여쭙고 싶습니다.”

그쯤 되니 눈앞이 아득해지기 시작했다. 귓바퀴에는 빗소리와 요란한 알람 소리, 문이 덜컹거리는 소리, 그리고 아무런 감정 없는 아저씨의 목소리가 한데 섞여 요동치고 있었다. 책상 밖으로 나가는 순간 아저씨의 텅 빈 두 눈을 마주칠 것 같았다.

“제가 S시로 가야 하는데요.”

나는 결국 두 손으로 귀를 막은 채 두 눈을 질끈 감았다. 제발 이게 악몽이었으면 좋겠다고, 그리고 악몽이 맞다면 제발 빨리 좀 잠에서 깼으면 좋겠다고 되뇌었다. 어느새 눈물이 뺨을 타고 흐르고 있었다.

“혹시 어디로 가야 하는지 아십니까?”

내가 정신을 차렸을 때는 주유소 사장님이 앞에 계셨다. 비는 이미 그쳤고, 동도 트고 난 후였다. 사장님은 황당한 표정으로 내게 도대체 책상 아래에서 몸을 웅크린 채 뭘 하고 있었느냐 물었다.

사장님의 얼굴을 마주하자 일단 살았다는 안도감이 들었다. 동시에 온몸의 힘도 쭉 빠져버렸다. 나는 자초지종을 설명할 기력이 없어 그냥 오늘부로 일을 그만두겠다고 했다.

웬만한 강심장도 이런 일을 겪으면, 더 이상 야간 아르바이트는 하지 못할 것이다. 사장님은 눈을 찌푸리더니 내 어깨를 두어 번 두드리고, 집에 들어가서 푹 쉬라고 했다.

허무하게도 이 이야기는 여기서 끝이다. 나는 아르바이트를 그만둔 후로—다행히도—그 아저씨를 마주친 적이 없다. 다만 여전히 검은색 제네시스 세단을 보거나, 새벽에 비가 세차게 내리면 괜스레 등골이 오싹해지곤 한다.

그 아저씨는 아직도 S시를 찾으면서 길을 헤매고 있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