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은 술 자리에서 안주 삼아 듣게 된 이야기를

들려드리도록 하겠습니다. 신빙성이 그리 높진 않다는 이야기입니다.

1

제 10대 후반에서 20대 초반은 일반적인 사람과는 다소 거리가 있었습니다.

특별하게 무엇을 잘했다기보다는 아무것도 할 줄 아는 게 없었던지라 흔히 "우리 패거리"라 부르던 다소 이미지가 안 좋은 친구들과 둘러앉아 술을 마시는 경우가 많았습니다. 이 술 자리의 반절 정도는 기존에 아는 사람이고, 나머지 반절이 생전 처음 보는 사람들일 정도로 엉망진창인 술자리였죠. 그저 자퇴생들끼리 누가 술을 산다는데 너도 갈테냐, 하는 식으로 꼬리를 달고 나온 경우가 대부분이기 때문입니다. 또한 인연 역시 이 술 자리에서 끝나는 경우가 빈번했습니다. 워낙에 사람의 수가 많다보니 한 가지 주제로 대화를 나누는것조차 불가능했습니다. 테이블을 5개에서 8개 정도 차지할 숫자다보니 한 술자리에서 3-4가지의 주제가 번잡스럽게 오고 가곤 했던 겁니다. 그것도 매일 같이요.

"그래가 주디를 쳐 돌릿뿟다 안카나."

....누군가의 허세를 끝으로 갑자기 찾아온 정적은 자리에 남아있던 속칭 "일출반"들에게 침묵을 강요하기에는 충분했습니다. 이 자리엔 친하지 않은 사람들이 많다 그랬죠? 그 상태에서 술도 많이 마셨습니다. 제 정신을 차리고 있는 인원도 적기 때문에 가벼운 농담으로도 싸움이 나곤 했습니다. 그다지 싸움을 일으키지 않는 인원이래봐야 일출반이라 불리우는 종류들이 다라고 봐도 무방할 정도로 술을 많이 마시는 게 일상이었기 때문에 순간적으로 분위기가 굳어졌어요.

일출반이라는 게 다른 의미가 아니라 해가 뜰때까지 술을 마신다해서 일출반인것인데, 패거리의 룰과 관련이 있었습니다. 이 일출반의 임무라는 것이 자신의 두 다리로 걷는 것 조차 하지 못 하게 된 인원을 미리 예약해둔 모텔방 안에 던져 놓는 것인지라 일출반의 수가 많으면 고삐 풀린 망아지마냥 마셔대고, 일출반의 수가 적으면 알아서 적당히 마셔야 하는 겁니다. 당시는 일출반은 그리 많지 않았지만 새벽에 새로 합류한 인원이 꽤 되었기 때문에 스무명 중반 정도가 자리를 함께 하고 있었습니다. 아, 참고로 저는 일출반이었습니다. 저는 주량이 강한 것이 아니라 어떻게든 정신력으로 버티는 스타일... 네, 여자 한번 꼬셔보겠다고 이 악물고 있는 타입이었습니다.

"옴마야~, 귀신 지나갔는갑다."

"뭔 귀신, 오밤중에 술 쳐빨다 증신이 나간나..."

누군가 분위기를 풀어보려 한 농담에, 누군가 날카로운 반응을 보였습니다. 그러고는 둘이서 투닥거리더라구요. 이름은 모릅니다. 위에도 적었지만 이 패거리의 술 자리라는 것이 하룻 밤 인연으로 끝나는 경우가 일상다반사이기 때문에 애써 이름을 외우거나 하지는 않습니다. 저만 쓰레기인게 아니라 겪은 것들이 있다보니 모두가 그렇게 생각을 하고 있는 겁니다. 내가 쟤를 다시 보면 몇번이나 더 보겠냐, 그래 너는 씨부려라...나는 술을 마셔야겠다... 이런 마인드죠. 그때 한 누나가 나섰습니다.

"그라모 우리~ 함 귀신이나 불러보까~?"

저딴게 선배만 아니었어도 물어뜯어 죽여버렸을 텐데... 이제 곧 동틀 무렵에 분신사바따위나 하자는걸로 밖엔 안 들리는 누나의 말에 모두가 인상을 찌푸렸습니다. 그럴만합니다. 이 곳은 남포동. 어느 상가의 2층...고갈비라는 음식을 전문적으로 다루는 곳입니다. 고갈비란 쉽게 생각하시면 고등어 백반이라고 보시면 됩니다. 한 가지 확실한 건 안 그래도 여자도 안 생기는데 선배라는 인간의 장단에 놀아나 줄 심적 여유따윈 제게 없다는 것입니다. 그런 반응을 캐치한 것인지 누나는,

"니네 여서 좀 나가모 헌혈으 집 있는거 알재? 와, 그서 내려오가, 쪼매만 가면 롯데리아 있다 아이가. 누나 알바하던 데 말이다. 내 거기서 일할 때 귀신 본 적 있다. 개 쩔제?"

개쩌는 거라곤 니 몸에서 나는 담배 냄새 뿐이야...라고 중얼거리다가 옆 자릿놈이 빵 터지는 바람에 선배에게 몇대 얻어맞고 설교를 들어먹었습니다. 흔한 이야기입니다. 귀신 이야기를 하면 그 이야기를 듣기 위해서 귀신이 찾아온다. 그러니깐 우리가 귀신 이야기를 하고 있으면 언젠가 귀신도 자신이 귀신이라는 사실을 까먹은 채 자신의 경험담을 들려준다... 24번째 이야기가 시작되면, 그 새끼가 귀신 아니겠냐는 이야기.... 테이블 수를 하나 통째로 잘못 체크했는데...우리 인원수만 스물 일곱인가 여덞인데 스물 네번째 이야기가 그 귀신이 죽게 된 사연이라니...게다가 사람이 한번에 귀신 이야기를 시작하면 스물 일곱개까지 가기전에  이야기 소재가 떨어지기 마련이지만 침묵하기로 했습니다.생각해보니깐 아직 무서운 이야기는 시작도 못 했고, 서론은 이 정도면 충분할 거 같아서요. 뭔가 더 주깨다 더 얻어터졌지만 그냥 침묵했던 것으로 해두죠.

여기까지가 딱히 궁금하지도 않았던 귀신 이야기를 듣게 된 개요 쯤 되겠습니다.

2 

누나의 이야기는 굉장히 진부한 방향으로 시작됐습니다. 앞 소절을 듣자마자 그러시겠지 생각했습니다.

"이거는 구라가 아이고, 내가 직접 긱낀긴데...."

장황하고 거창한 누나의 알바 연대기를 축약하면 이렇습니다. 그 날따라 손님이 무척이나 많이 왔다고 합니다. 정확히는 n시 b분까지 찾으러 갈테니 햄버거 세트를 n개 준비해달라, 는 마지막 주문을 소화하다 정말로 때려칠까 생각했다고 합니다. 덕분에 퇴근 시간이 늦어졌다고는 하는데 롯데리아에서 지들 멋대로 근무시간을 조절할 수 있다는 건 저도 처음 들어봤습니다. 

아무튼 일을 마치고 나온 누나는 곤란하다 생각했습니다. 이미 버스가 다 끊겨 버렸는데 누나의 집은 영도에 있었기 때문입니다. 그게 왜 곤란하지.. 버거집에서 누나집까지는 걸어서 40분이면 충분한 거리인데....여성분들에겐 걸어가기에 다소 힘든 거리인가 봅니다. 남포동에서 영도로 가기 위해서는 다리를 건너야 합니다. 현재는 도개교 형식이라 하루 한번 이벤트 형식으로 다리를 분리시키는 모습을 보여주는 것으로 관광객들 삥을 뜯고 있습니다만 그때는 그렇게 갈라지는 유형의 다리는 아니었습니다.

그 다리를 건너가기 위해 다가가고 있던 누나의 눈에 보인 겁니다. 그 곳에는 존재해선 안 될 존재가 말입니다. 초등학교 저학년 끄트머리에서 초등학교 고학년 정도로 보이는 소년이였다고 했습니다. 00시에서 01시에 영도와 남포동을 이어주는 다리 인근에 초등학생이 있는 겁니다. 이게 부산에서 살아보신 적이 없는 분들에겐 뭐 그리 대단한 일이냐 싶겠지만 당시에는 영도하면 떠오르는 이미지란게 비행소년, 비행청소년의 범죄, 소년일탈의 현장 이런 것들이었습니다. 영도는 역사적으로도 그렇게 좋은 이미지를 가져가는 섬이 아니기도 합니다. 해당 다리 인근에 있던 모텔에서 여성이 살해된 사건은 뉴스에도 나왔고...

影 자를 사용하는 섬입니다. 도는 당연히 섬이니깐 그림자 영影에다가 섬 도를 붙이게 되면 그림자가 진 섬, 볕이 들지 않는 섬이라는 의미가 됩니다. 명소....라고 하기엔 좀 그렇지만 자살 바위라는 바위도 있고..

걱정하실 건 없습니다. 현재는 수많은 초중고생과 대학생들의 양기로 음기를 전부 다 짓밟아 버렸으니까요. 도로 사정이 그리 좋지 않은 점을 빼면 뭐 그렇게 특별할 거 없는 섬 중 하나 일 뿐입니다. 이상하게 이 근처에서 목격담이 많이 들려오긴 하지만 저는 본 적이 없습니다.

그런데 이 누나라는 인간이 오지랖이 제법 넓은 편에 해당하는 인간이거든요. 그 날도 피곤한 몸을 이끌고 쪼르르 달려가서는

"니 뭐고~ 니 와 여있는데~ 엄마 어딨no,  엄마~"

라며 잽싸게 지가 먹을라고 몰래 만들어온 데리야끼 버거를 건냈다고 했습니다. 

....범죄 아닌가?

데리야끼 버거. 아시죠? 단 향이 강하게 나고 실제로 달콤한 맛 베이스에 가격이 저렴한 축에 해당하는 버거. 헌혈하면 주는 햄버거 상품권으로 교환이 가능한 오징어버거, 불고기버거, 데리야끼 버거 중에 하나인 그 버거 말입니다. 왜 이렇게 잘 아느냐. 제가 한때 피를 팔아서 버거를 좀 교환해 먹고 그랬거든요. 남포에서 만나기로 한 친구가 지각을 하면 제 피를 팔아서 버거와 교환해 먹고 있으면 딱 맞게 오는 놈들이었습니다. 제 시각에 좀 나와주면 좋았을텐데...

어쨌든 이 버거는요, 아이들이 좋아하는 버거중에 하나에요. 가격이 저렴하기 때문에 부모님들이 잘 사주시는 버거 중 하나고 맛도 다소 어린이 맛입니다. 그런데 그 이상한 곳에 있는 아이는 버거는 먹지 않고 한 손을 들어 어딘가를 가리키더라 이 말입니다. 누나의 고개와 시선은 그 팔을 따라갔고, 그 작은 손이 가리키는 곳에는 아직 완공하지 못한듯한 낡아보이는 건물이 있었다고 합니다. 누나는

"아~ 엄마가 저기서 다쳤나~ 우야노~ 일단 드가가 모시가 나오자~? 가자!"

이때 다들 그랬습니다. 롯데리아에서 일할때도 술 먹어가며 일을 하느냐고. 왜냐면 정상적인 사람의 반응이라면 어두컴컴한 폐건물처럼 생긴 건물에 들어가서 아이 엄마를 되찾아 온다는 선택지를 고르지 않으니까요. 아무리 간이 큰 사람이라도 새벽 1시에 그런 선택지를 고르는 사람은 거의 없습니다. 정상적인 판단이라면 경찰을 부른다, 겠죠. 그 전에 아이가 밖에 나와 있잖아요. 이 아이는 당황해서 발을 동동 구르고 있어야 합니다. 건물내에서 아이의 아버지든, 어머니든 미약한 소리나마 나와야 해요. 이 애, 안 울고 있잖아요. 손 쓸 도리 없이 다친 상황은 아니라는 이야기가 되겠죠? 물론 저도 그 상황에서라면 이렇게 깊게 생각하지는 못 하겠지만...적어도 안에 들어가서 데리고 나온다, 같은 선택지는 떠올리지도 않아요.

누나는 그런 우리들의 말을 아주 심플하게 쌩까고 이렇게 말했습니다. 그때는 왠지 그래야 할거 같아가 그랬다이가~ 라면서요. 그런데 누나가 성큼성큼 몇 걸음 앞서 나가자마자 누나는 뭔가 잘못 되었음을 깨달았다고 합니다. 그리곤 바로 남포 방향으로 다시 도망쳤다고 해요. 앞으로 전진하면 다리라서 자신이 들어온 방향을 제외하면 출구가 하나 뿐이라서 그랬다는데....

그 정도 지능이 있어 보이지는 않고 그냥 어쩌다 그렇게 한 것 같습니다. 그 이유란 게, 그 아이가 갑자기 아이들 특유의 높은 톤으로 "꺄하하핫!! 꺄핫!! 꺄하하하하하하핫!!!" 하고 웃어댔기 때문이라고 합니다. 그래서 그 꼬맹이가 귀신이라고 말하고 싶은거냐라고 하니 누나는 그렇게 믿고 있다고 했습니다. 잘은 모르지만 착한 귀신인 거 같다고 이야기했어요. 웃음소리에 놀라서 아이 쪽을 돌아보니 그 아이란 게 미간을 잔뜩 찌푸리고 입을 어느 정도 벌리고는 팔자 주름 부근을 찌푸린 상태로 입으로는 "아핫핫핫!!" 소리는 내면서 고개는 미약하게 좌우로 젓고 있었다 하더라구요.

그 모습이 마치 내가 내고 싶은 소리는 웃음 소리 따위가 아니다, 니가 그 곳으로 가면 안된다, 가지 말아라.... 라고 말하는 거 같았다는데 그제서야 그 아이의 인상 역시 사람 행색은 아니었다고 하더라구요. 행색이 남루한 것은 둘째치고 옛날 영화에 나오는 남자 고등학생들이나 입을법한 그런 느낌이 많이 나는 검은 옷을 입고 있었다는 모양입니다. 머리도 당시 초등생답지 않게 바싹 올려 깍은 상태인데다가 무엇보다 표정이 섬뜩했다 하더라구요. 이런 이야기를 하면 술 자리에선 몇명 정도는 이 표정을 따라해보기 마련인데 그런 표정이 아니라고, 사람이 지을 수 없을거 같은 표정이었다는 게 그 누나의 주장입니다. 아 혹시해서 말씀 드리자면 당시 초등학생 사이에서는 브릿지라고해서 부분 염색이 약간 힘의 상징같은 거였습니다. 박박 밀지는 않죠. 몇년뒤면 박박 밀고 싶지 않아도 박박 밀게 되어 있는데 서두를 필요는 없으니까요. 

음..... 누나가 도망친 부분까지 했네요. 누나가 헐떡거리면서 경찰서로 뛰어가고 있으니 퇴근중인 롯데리아 매니저와 마주쳤다고 해요. 매니저가 사색이 된 채 어디를 가냐길래 횡설수설 다 말해주었다고 해요. 그러자 매니저라는 분이 누나의 손을 잡고 그러더랍니다. 내가 방세 정도는 내줄테니 오늘은 남포동에서 자는걸로 하라고. 지금 그 놈들이 널 기다리고 있을건데 니가 지나가면 니네 집으로 따라붙지 않겠느냐 뭐 대충 이랬다고 합니다. 평소라면 매니저님 이거나 드시죠! 집에 가서 싸이 관리해야 함! 이라고 했을 누나도 그 날은 매니저님의 의견에 동의했다나 봐요. 

3

네, 여기까지가 주워들은 이야기입니다. 솔직히 저는 이야기를 들으면서 좀 무서웠습니다. 저희 형이 이 영도라는 섬에 위치한 고등학교를 졸업한 사람이거든요. 누나 입으로 듣기 전에 2년전쯤에 이 이와 행색이 비슷한 이상한 꼬맹이 이야기를 전 이미 들어봤었거든요. 그것도 두 번이나. 그래서 누나가 위치를 말했을 때 그 꼬맹이가 아닐까 생각을 하긴 했습니다만, 뭐 이런 귀신 이야기는 믿거나 말거나니까요. 

참고로 저희 형도 직접적으로 목격한 사람은 아닙니다. 선배와 오락실에서 너무 많은 걸 불태우다보니 돌아갈 버스비까지 불태워버린 둘이 돌아가는 길에 선배가 목격했다고 했습니다. 그 선배분의 말씀이 맞다면 꼬마쪽은 나쁜 쪽이 아니에요. 선배님이 목격할 당시만 해도 제법 윤이 나는 검은 의상을 입고 있었다는 모양이고. 지박령은 아닌데 개인이 좋아서 터를 지키는 유사 지박령같은 게 있다는데, 그거랍니다. 

지박령이라면 잡귀 정도 휘어잡는 건 일도 아닐테니 온전한 형태로 남아 있겠지만 이 꼬마도 어쨌든 허주는 허주거든요. 허주와 허주가 싸워서 서로 살 파먹기 했다는 방향쪽으로 해석하는 게 가장 유사할 거라 말씀하시더라구요. 저희 형제야 뭐...당연히 그러시겠지...같은 느낌으로 들었지만요. 

그런데요, 왠지 이 괴담.... 최근까지 살아 있다면 귀신 이야기가 아니라 그 국가 납치수법같은 뉘앙스의 괴담이 되어 퍼져 있지 않을까 그런 생각이 듭니다. 요즘엔 워낙에 그런 흉흉한 뉴스가 많잖습니까. 원래 괴담이란 게 시대에 편승해서 바뀌고 그러는거기도 하다보니깐....

음.... 사실 공게에다가 글을 쓰는 계정이 있었습니다.

그냥 이번에 극장판을 재밌게 봐서 아이디를 하나 더 만들었는데...

몇번 로그인/로그아웃을 거치는 과정에서 뭐가 잘못 됐는지 불온한 접속 판정을 받았어요.

이걸 풀려면 가입 당시 입력한 e 메일 주소를 입력하라는데 그딴거 기억하고 있을리 없고...

글로 보면 무섭지 않지만 이론상 무서운 이야기와, 주워들은 귀신 이야기 같은걸 종종 올려 보려고 해요.

한때 활발했던 공게에서 활동했었던 사람으로서 지금의 공게는 마음이 조금 아픕니다. 

갑절로 많은 추천수를 받을 수 있는 훌륭한 글들이 보일 때 특히 마음이 쓰여요.

읽어보면 글을 적기 위해 꽤 고심하신 흔적이 보이는데 말입니다. 그럼 다음에 봐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