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득 깨어났다고 느꼈을땐 낯선 천장이 눈 한가득 들어섰다.

뭐지, 분명 집에서 잤는데, 라는 의문과 함께 벌떡 일어설 수밖에 없을만큼 가득.

일어난 곳은 뭔가 흔하디 볼 수 있는 모텔? 호텔 같은 방의 꽤나 큰 （아마도 퀸사이즈 이상쯤은 되는） 침대였다.

너무나 이상한 일이었다.

분명 어제는 퇴근하고 피곤한 몸을 이끌고 씻을 생각도 못한 채 내 포근한 자취방의 작은 싱글사이즈 조립식 침대에서 뻗었으니까.

잠깐 핸드폰으로 업무 메일 확인하고는 지긋지긋한 부장님 업무 메일에 학을 떼다가 홧김에 유튜브를 켜고 쇼츠 좀 보다가...

거기서 기억이 끊긴거 보니 그대로 잠든게 분명했다.

그랬는데, 이곳이었다.

이게 대체 무슨 일이람.

볼을 꼬집어 봤지만 당연히 볼은 주욱 늘어지며 아프다고 난리였을 뿐이다.

꿈은 분명 아니었다.

어쨌든 나는 정체모를 객실 같은 곳에서 깨어난게 맞단 이야기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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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렇게 억지로 현실을 받아들이기를 몇분.

일단 상황을 파악하기로 했다.

먼저 핸드폰.

이런 이상한 상황이라면 당연하다는듯 없었다.

퇴근하고 옷도 안갈아 입고 단 적에 입었던 출근복장 주머니 어디에도 없었고, 방안을 아무리 뒤져봐도 찾지 못했다.

그외에 이 곳이 어딘지 알만한 단서도 같이 찾아봤지만, 아무것도 없었다.

보통 모텔 같은데 흔히 있을 24시 야식 가게 번호나 출장마사지 번호 같은게 적힌 휴지통도 없고, 모텔이름이 적힌 라이터라던지 휴지곽이라던지 베게 커버 같은것은 아무데도 없었다.

거기에 옷장안에는 가운 같은 것도 없이 빈 옷걸이 뿐인데다, 카운터나 로비랑 연결된 전화기 또한 없었다.

방안에는 그냥 텅빈 옷장, 텅빈 책상, 텅빈 화장실, 라벨 없는 생수 두병이 든 냉장고와 크디큰 침대뿐이었다.

아니, 대체 뭐냐고 이 객실.

너무나 이상할 정도로 텅 빈거 아니냐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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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참을 방안을 뒤진 끝에 지쳐버린 바람에, 나는 냉장고 안에서 찾은 생수 한 병을 꺼내 한 모금 마시며 침대에 걸터앉았다.

이 곳이 어딘지 알 방법은 방안에 없었고, 이제 남은 방법은 하나 뿐이었다.

방 밖으로 나가보는 것.

마른 목으로 물을 연신 삼켜내며, 남은 방법을 차차 생각하자니, 뭔가 기분이 이상하게 불안해졌다.

아무래도 그 인터넷 커뮤 같은데서 많이 보던 괴담 비슷하지 않나 하는 생각이 들어서 그랬다.

그 뭐냐, 갑자기 자다가 이상한 괴담같은 공간으로 납치된다던지 하는 그런 괴담류 말이다.

지금 이 상황이 딱 그런 상황 아니던가.

그런 생각을 하니 밖으로 나가보는게 맞나 싶었지만, 그렇다고 더이상 방안에 머물 수도 없는 노릇이었다.

이미 방은 다 뒤져보지 않았나.

이 곳에서 할 수 있는거라곤 티비도 핸드폰도 전화도 없는 방에서 멍하니 시간을 때우는 것 뿐이었다.

벌써 지루해서 뒤지겠잖냐, 쓴웃음 섞인 한숨을 내뱉고는 침대 맡에서 일어났다.

나가보는 수밖에는 없었다.

그렇게 생각하며 객실 방문으로 향했는데, 그곳에는 방안을 뒤질때는 볼 수 없었던 쪽지가 붙어있는걸 그제야 발견했다.

쪽지를 떼냈다.


[ 나가기 전에 책상을 확인해주세요. ]


불현듯 고개를 돌리자, 분명 아무 것도 없이 텅비어있던 책상에는 공책 하나와 볼펜 하나가 덩그러니 놓여져 있었다.

그리고 그 것들은 분명 방금전까지는 방안 어디에도 없던 것들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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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대 보고 싶지 않다는 마음을 억지로 진정시키며, 공책으로 다가섰다.

그야, 이거 이런 괴담류...하, 인정하기는 싫지만 어쨌든, 이런 종류의 일에서라면 저런 걸 확인하지 않으면 반드시 손해보는 류일테니까 말이다.

괜히 확인 안해봤자 보통은 확인안한 죄로 인해 끔살이다, 끔살.

아니지, 괜히 확인해서 법칙에 묶인다던지 저주를 받는다던지 해서 죽는 이야기도 있던가...?

뭐 어쨌든.

물을 한껏 들이켠지 얼마 안됐음에도 잔뜩 말라버린 입안에서 억지로 침을 삼켜내며, 나는 마침내 공책을 열었다.


[ 반갑습니다, 여러분.

여러분은 앞으로 이 호텔에 있을 출구를 찾아 긴 탐험을 떠나셔야합니다.

그 과정에서 여러분은 여러 사건들을 마주치실 겁니다.

어떤 일들이 여러분을 기다리고 있을지 설명드리고 싶지만...

안타깝게도 그건 제가 할 수 있는 일이 아닙니다.

하지만 그렇다고 여러분을 그대로 방치하는 것은, 아무래도 불쌍한 일일테지요.

여러분은 이 공책을 통해 자기소개를 남길 수 있습니다.

쓰지 않으면 그만이지 않나 싶으시겠지만, 설명드리기 어려운 힘으로 인해 반드시 쓰시게 될겁니다.

그리고 그렇게 남긴 자기소개들은 모두의 공책에 남겨집니다.

몇분이 이 호텔에 계신지는 제가 밝힐 수는 없겠으나 그렇게 남겨진 자기소개들을 통해 우츄해보실 수 있을테지요.

또한 안타깝지만 자기소개를 남긴 이후에는 한동안 공책을 사용할 수 없으십니다.

그럼 언제 또 사용하실 수 있느냐 하면, 지금은 알려드릴 수 없지만 반드시 이후에 한번 더 사용하실 수 있는 기회가 주어집니다.

반드시 한번 더 말이죠.

그리고 그것이 언제인지는 멀지 않은 시간에 아실 수 있으실 겁니다.

건투를 빕니다, 여러분.

어딘가 존재할 출구를 찾으실 수 있기를 간절히 바랍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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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폴리탄류 괴담이었냐고....!

갑자기 나타난 쪽지와 공책으로 이미 괴이한 일이 벌어졌음을 깨닫고 있던 내게 던져진 것은, 일종의 상황설명과 함께 던져진 짧은 글이었다.

꽤나 온화한 말투인 것에 안심을 해야하는건지, 괴담 납치 확정에 울어버려야할지 잠시 고민했지만......

일단 다음 장에 뭔가 더 써져있는거 같아서 종이를 넘겨봤다.

그러자 그곳에는 뭔가 글씨가 점점 실시간으로 늘어나고 있었다.


[ 1. ?

2. 이거 뭐예여? 무슨 몰카 같은건가요? ]


첫 몇 줄은 당황이 느껴지는 내용들이 하나둘 올라왔지만, 이내 잠잠해졌다.

이후부터는 나름 유익한 내용이 시간을 두고 조금씩 올라왔다.


[21. 저는 1401호에 있습니다. 무슨 일인지 아시는 분?

......

33. 무슨 일인지는 모르겠지만 저는 4149호고 이우진입니다. 글 쓰기 전에 방밖에 나가봤는데 방밖에는 어둡고 긴 복도가 펼쳐져있고, 수많은 복도가 있는 것 같아요. 어두운게 무서워서 바로 돌아와 글 써봅니다.

......

47. 저는 6212호 대학생 김영미입니다. 글 내용들을 보니까 현재 제가 앞 숫자가 제일 높은거 같은데... 이게 층 숫자인지, 아니면 방 바깥에 죽 늘어진 방이 그만큼 있다는 건지는 모르겠어요. 아무래도 층 숫자일거 같긴한데... 이정도로 높은 호텔건물이 있나요?

......

62. 저는 2300호에요. 앞에 분들 글 읽고 나가봤는데, 제 방번호가 마지막인거 같아요. 제 방 방문 앞에 바로 2299호가 있고 오른쪽으로는 복도가 펼쳐져있고 왼쪽으로는 바로 엘리베이터가 있었어요. 마침 문이 열려있길래 타지는 않고 안쪽만 살펴봤는데, 엘리베이터에는 1부터 99까지 있었구요.

......

65. 난 520호인데... 바로 엘리베이터가 있었음. 아무래도 각 층마다 객실수는 다른가봄. 어떻게 그럴 수 있는지는... 몰?루

.....

78. 3333호임. 방문 앞에 비상구 계단 표시가 있는 문이 있었음. 3334호 없었음.

......

99. 10층에는 내 방말고는 복도 없이 식당이 바로 있네? ]


본격적인 나폴리탄이 시작되고 있었다.

이 호텔의 구조를 짐작해볼 꽤나 유익한 정보들이 그렇게 계속 올라왔다.

수상할정도의 속도로 말이다.

아니 왜들 이렇게 성실하게 뭔가를 쓰는걸까, 어떻게 이 상황에 이렇게 적응이 빠른걸까?

그리고 그 당연한 의심은 곧 자연스럽게 풀렸다,

갑자기, 불현듯, 뭔가, 갑갑해지고, 답답하고, 지금, 해야할거 같은데, 뭔가 써야할거 같은데, 알려야, 나눠야, 할거 같은데......?

그래, 갑자기 그런 기분이 들기 시작한 것이다.

공책에 뭔가를 써야한다는 기분이ㅡ 그렇다고 아무거나 적으면 뭔가가 뭔가 매우 안좋을거 같은 강렬한 기분이.

강박증 같은 것들이 이런 걸까?

생전 한번도 겪은적 없던 어떤 충동과 초조함이 온 몸을 휘감았다.

나도 모르게 셔츠 제일 윗단추를 풀어제끼고 물을 새로 한병 더 다 마셔버릴만큼 강렬한 충동이었다.

한숨이 절로 흘러나왔다.

공책 첫장에 써져있던 설명드리기 어려운 힘으로 인해 반드시 쓰시게 될거라는 이야기가 이제 이해됐다.

일종의 강제조항인거구나, 납득해버렸다.

어쩔 수 없지.

그런 일인거잖아.

일단 방을 나가 번호를 확인하고 주위를 빨리 둘러보고 와야겠다고 결심했다.

오래 버티면 위험할것 같은게 솔직히 좀 무섭기도 하잖나.

그렇게 결심하자마자 망설일 것도 없겠다 바로 방문으로 다시 향했다.

그리고 방문을 열려는데.....

막 문을 열려는 순간 뭔가 바깥에서 쿠웅, 하고, 큰 발소리 비슷한 것이 들렸다.

아주 섬��한 느낌의 뭔가 이상하고 큰 발소리가 하필 문을 열어젖치는 그 순간에, 일부러 기다렸다는 듯이 들렸다.

어? 하는 순간이었다.

이미 문은 열고 있었고.

돌이키기엔 늦었다는 것이었고, 이런 괴담류에서 돌이키기엔 늦었다는 것은 당연한 결과를 가져오는 법이었다.

정말 괴담속에서나 나올법한 괴물에게 습격당한다는 결과를 말이다.



그리고 그 직후, 나는 공책에 쓰여있던 "반드시 이후에 한번 더 사용하실 수 있는 기회가 주어집니다."라는 말을 이해하고, "언제인지 아실 수 있다"는 말을 모두 이해하고 말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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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02. 444호. 방에서 나가려다가 괴물과 마주침. 마주쳤다고 깨달은 순간엔 이미 목을 크게 물어뜯겼음. 나가기 전 복도에 큰 발소리가 나는지 확인하고 나갈것. 그리고 마지막 한마디 남길 기회를 무조건 주는 것 같음. 이제야 무슨 말인지 모두 이해 되었음. 부디 다들 살아남길 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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