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녕 형아들 나는 올해로 32살이 된 게임 만드는 개발자야.
지금은 작은 게임회사에 다니면서 근근히 살고 있어 ㅎㅎ
벌써 이 일을 한지도 8년이 넘어가는 것 같네.
그 동안 어느 정도 성과도 있었었고 나름 안정적인 삶이 유지되고 있는 것처럼 느껴졌었지.
먹고 싶은 것 먹고 사고 싶은 것도 사고 이게 여유인가 싶더라
근데 작년 6월 쯤 초등학교 이후로 떨어져 살던 아버지가 갑자기 시골로 좀 내려와 주면 안되겠냐고 하더라.
그래서 왜그러냐니까 그냥 와보래 보고싶대. 참고로 우리 아버지는 보고 싶다고는 하지만
갑자기 어딜 오라가라 하는 사람은 아니거든.
전화로 대충 알겠다고 얼버무리고 있는데 평생 전화 한통안하던 사촌누나들과 큰엄마가
전화해서 너 빨리 내려오라고 일 터졌다고 그러더라.. 갑자기 등골이 오싹해졌어.
왜 있잖아 그런거.. 뭔가 잘못됐다 라는 느낌이 확 드는 시점.
곧장 내려갔어 그 전화를 받은게 금요일 이었는데 시골이 남해라 꽤 멀어서
새벽에 바로 출발해서 아침 쯤 도착했었어. 아버지를 보자마자 진짜 너무 놀라가지고 말이 안나오더라.
안본지 일년이 좀 넘긴 했었지만, 새하얀 백발에 살은 완전 다 빠져버려서 50키로 그램이 나갈까 말까
해보이는 진짜 할아버지가 앉아있는 거야. 갔더니 앉자마자 이야길 시작하더라..
진주의 가장 큰 병원에서 원래 기흉 진단을 받고 완치한 후 3개월 뒤 살이 엄청 빠지기 시작하더래
너무 이상해서 병원에 갔더니 갑자기 폐암이라고.. 몇 기인지 판단도 못하고 자기네들은 할 수 있는게
없다 그랬다네.. 그러면서 갑자기 본인이 든 보험 명의를 내 거로 다 바꾸자고 그러더라고
그래서 내려오라고 한 거였어. 보험 명의 나한테 주려고. 무슨 의미인지는 굳이 풀어서 안 써도 알 거야 형들도..
근데 진짜 웃긴게 뭔지 알아? 진짜 나는 받은 것 하나 없는 그런 사람이고 피만 이어져 있는 아버지라고 생각했는데. 그게 아니더라.
그날 바로 서울 대형병원에 예약을 했어 그 쪽 원무과 분 중에 지인이 있어서 정말 너무나 운이 좋게도
월요일에 바로 예약이 되더라. 진주에서는 안된다고 했지만 3차 병원（보통 지방 큰 병원은 2차병원이야）은
안가봤으니까 가보자고 그렇게 겨우 설득을 했어. 진주에서 기존에 진단했던 모든 자료를 가지고 병원을 갔더니
다시 검사를 해보자고 하고 몇 주 뒤 검사 결과를 받았어.
폐암 3기라더라..
난 내가 평생 살면서 그때처럼 서럽게 울어본 적이 없던 거 같아.
아버지를 위해서 울었을까? 그건 모르겠어. 어떻게 보면 내 자신이 너무 억울해서 울었던 것 같아.
쓰다보니까 너무 길어져버렸네..
푸념이야 그냥 완전 푸념..
더 듣고 싶은 형들 있으면 더 남겨볼게 들어줘서 고마워
14
34,973
얼굴은쓰레기통에
추천
베스트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