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물여덞살
아직 어리다면 어리다고 할수 있지만 사실 결코 어리지만은 않은 나이
나는 28살의 어느날 죽기로 결심했다
지방의 어느 공립대학교를 졸업한지도 벌써 3년이나 지났다
계속되는 취업 실패에 이제는 이력서를 넣는 것조차 부끄러워지기 시작했다
그래도 살아야했기에 마트에서 알바를 하고있던 어느날, 나의 옆으로 젊은 아줌마가 아이의 손을 이끌고 지나가며 말했다
너도 공부안하면 커서 저 아저씨처럼 이런데서 일해야돼 알겠어?
나를 비하한 것보다도 아저씨라는 단에에 더 움찔한 내자신을 보고 피식 웃음이 나왔다
나 아직 아저씨 아닌데
일을 마치고 집에와서 캔맥주와 식은 치킨을 세팅했다
날씨가 더워서인지 마칠때까지 팔리지 않고 남아있는 치킨이 있어서 직원특가로 잽싸게 집어왔다
기름내가 조금 나긴 했지만 아직까진 그럭저럭 먹을만 했다
일이 힘들긴해도 가끔 이렇게 사치를 부릴수도 있고 썩 나쁜 생활은 아니라며 스스로 위로하는와중에 갑자기 아까의 손님이 흘리고 간 그말이 떠올랐다
너도 공부안하면 나중에 저 아저씨처럼.....
억울했다
나는 공부를 안하지 않았다
대학교시절에는 성적장학금도 받으면서 나름대로 성실하게 지냈었다
그런데 문과라서 그런지 지방대라 그런지 아니면 둘다인지 졸업후 취직이 쉽게 되지않더라
아줌마가 저에대해서 뭘 아신다고 그런식으로 말씀하세요?
나 혼자 있는 방에 크지 않은 소리로 소심하게 외쳐봤지만 아무도 듣지 않았다
조용히 하는 것이 좋을것 같다
이곳은 방음이 전혀 안되니까
나쁜 기억을 씻어내기라도하듯 찬물로 샤워를 하고 나와서 잠자리에 들었다
그리고 나는 죽기로 결심했다
이렇게 갑자기?라고 생각할지도 모르지만 사실 예전부터 생각해오던 것이었다
물론 오늘 들었던 그 말이 방아쇠가 되긴했지만 그 말이 아니었더라도 나는 이미 계속된 실패에 너무 지쳐있었다
그래 죽자 깔끔하게
나는 죽음을 결심하고 나서 생전 처음으로 버킷리스트를 썼다
이걸 못하고 죽으면 가슴에 한이 남아서 사후에도 이승을 떠돌것만 같은 그런 목록들로 버킷리스트를 가득 채웠다
그리고 당장 할수있는 것부터 하나씩 실행했다
모아둔 돈이 별로 없었기때문에 최대한 아끼고 아껴가면서
가장 먼저 한것은 3주에 걸친 전국일주였다
여행 중에 많은 사람들을 만났고 즐거운 경험을 했다
춘천에 가서 본고장의 닭갈비를 먹었다
서울에서는 도시의 정취를 맘껏 누렸고
평소 좋아했던 아이돌의 팬싸인회에 가서 싸인을 받고 이야기도 나눌수있었다
대학교시절 학점에 뒤쫒겨 한번도 보지못했던 무한도전
모두 보기에는 너무 많은 시간이 필요해서 레전드편만 모아서 감상했다
재밌었다
그시절에 봤었더라면 더 재밌었을거같다
버킷리스트를 하나씩 수행하면서 가볍고 또 즐거운 마음이 들었다
죽지 않고 이대로 계속 사는것도 나쁘지 않을거 같다는 생각도 종종 들었지만 그런 유혹이 들때마다 애써 뿌리쳤다
하고싶은 것만 하니까 당장은 즐거운게 당연하다
지금 마음이 약해져서 계속 살기로 마음먹는다면 그 뒤에 펼쳐진 것은 밑바닥 인생이 확실한 절망적인 시간들
그러니까 약해지지 말자
ㅡ Hello Im your Korean Fan
（안녕 난 당신의 한국팬 중 한명입니다）
ㅡ I like u very much
（난 당신의 플레이를 매우 좋아합니다）
ㅡ I always dreaming u play soccer in korea
（난 항상 당신이 한국에서 경기를 하는 것을 꿈꿔왔어요）
ㅡ My last bucketlist is see your playing on my eyes
（나의 버킷리스트 그 마지막은 내 두눈으로 직접 당신의 경기를 보는 것입니다）
ㅡ If I can see your playing then finally I can death myself
（만약 당신의 경기를 직접 보게된다면 그때서야 비로소 난 미련없이 스스로 인생을 마감할수 있을거같아요）
내가 평소 가장 좋아했던 스포츠스타 크리스티아누 호날두
그의 경기를 직접 보는 것이야말로 내 버킷리스트의 마지막을 화려하게 장식하기에 알맞다고 생각했다
이것을 제외한 나머지 모든 버킷리스트 항목은 이미 1년도 더 전에 완료했다
단지 이 한가지 때문에 지난 시간을 버텨온것이다
모든 것을 이루고 이 세상에서 해방될 날도 이제 얼마 남지 않았다
나는 서툰 영어로 쓴 편지를 전해들고 공항을 향해 서둘러 발걸음을 옮겼다
공항은 이미 발딛을틈도 없을 정도로 사람들로 빼곡했다
경호원들의 경계 역시 철저했지만 나는 목숨을 걸고 접근한 끝에 결국 호날두에게 나의 자필편지를 전달하는데 성공했다
내가 편지를 전달한 순간 그는 내쪽을 보고 짧게 미소지었다
역시 살아있길 잘했다 아직까지는
경기장 근처로 이동해서 고급 한우갈비를 주문했다
아마도 이 세상에서의 마지막 식사가 될 것이었으므로 든든하게 챙겨먹었다
식사 후에 경기장으로 이동해서 경기를 본 다음에 나는 세상을 떠난다
계획은 완벽했고 실패할 가능성은 없어보였다
"우우우~~~~메시!! 메시!!! 메시!!"
경기장 분위기는 아수라장이 따로없었다
공지와는 다르게 호날두는 출전하지 않았고 사람들은 실망감을 감추지 못하고 야유를 퍼부었다
나 역시 그의 경기를 보지 못해 매우 화가 나 있었다
나는 그가 뛰는 모습을 보지 못했다
완벽했던 나의 계획이 실패로 돌아갔다
넘치는 화를 억누르며 나는 정차되어 있는 구단버스 앞으로 발걸음을 옮겼다
나는 그에게 납득이 갈만한 대답을 꼭 들어야만했다
선수들이 버스로 오는 모습이 저 멀리서 보인 것은 2시간이나 지나서였다
난 씩씩거리며 그에게 다가갔지만 이내 경호원에게 제재를 당했다
그때 날 발견한 호날두는 경호원에게 몇마디를 속삭이더니 내쪽으로 접근했다
난 화가 많이 난 상태였지만 막상 그가 눈앞에서 천천히 다가오니 말문이 막혀 아무 말도 나오지가 않았다
그때 호날두는 주머니를 뒤적거리다가 꾸깃한 쪽지 하나를 꺼내더니 내 손에 전달했다
그리고나서 내가 뭐라 반응하기도 전에 일행들과 서둘러 차에 탑승해서 유유히 자리를 벗어났다
ㅡ I had many thinking
（당신의 편지를 받고 많은 생각을 했어요）
ㅡ I decide depend one fan's death
（그리고 끝내 나는 한명의 팬을 죽음으로부터 지켜내야겠다는 결심을 하게 되었습니다）
ㅡ Plz enjoy your life for long time
（오늘 제가 뛰지 않으면 당신은 아직 죽지 못할거라 생각해요 그러니 앞으로 남은 많은 시간동안 당신의 인생을 즐겨주시길 바랍니다）
그가 떠난뒤 나는 쪽지를 확인하고 그 자리에서 눈물을 터뜨려버렸다
나의 눈물은 그의 배려에 감동한 눈물이었을까
나로인해 그의 출전을 보1지못한 팬들에 대한 미안한 마음의 눈물이었을까
아니면 앞으로 계속 살아갈 날들에 대한 걱정의 눈물이었을까
나는 젖어버린 쪽지를 몇번이고 다시 읽었다
그리고 결심했다
좋아 당신이 그렇게 나온다면 내가 직접 유럽에 가서 당신의 경기를 봐주도록 하겠어
비록 시간이 걸리겠지만...그때까지 열심히 살아서 꼭 이 두눈으로 보고야 말테니까...그러니까....
나는 목이 매여 더이상 외치지 못했다
숙소로 향하는 구단전용버스에서 호날두는 창밖을 바라보았다
밤하늘의 달이 무척 밝게 빛나고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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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4,326
김냥냥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