충주 고구려비 근황 [4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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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태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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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 2019-12-09 21:44:19
이동 2019-12-09 22:44:4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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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태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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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반도에 있는 유일한 고구려 시대의 비석인

충주 고구려비.

1979년 발견 당시 중원군에 있었기 때문에

'중원 고구려비'로 불리기도 함.



장수왕 때 고구려의 남진 정책을 상징하는 유물이자

장수왕 때 국호를 고려로 바꿨다는 것을 실증하는

유물로 유명하며

올해로 발견 40주년을 맞음.



이 비석의 정확한 건립 연대는 그동안 알 수 없었음.

'모년 모월 모일에 누구가 무엇을'으로 시작하는 것이

통상적인 비문의 시작인데



충주 고구려비는

'5월에 고려 태왕이...(五月中高麗太王...)'로 시작해

연도가 표기되지 않았기 때문.



다만 새겨진 내용 중에

'12월 23일 갑인(十二月廿三日甲寅)'이 있어서

역사책의 내용 등을 감안해

5세기 경에 세워진 것으로 추정했는데...





이번에 동북아역사재단에서 첨단 기술을 동원해

비석 전체를 정밀 촬영해 분석한 결과

비석의 정면 상단 부분에서

'영락 7년 세재정유(永樂七年歲在丁酉)'라는

글자를 확인함.



영락은 우리에게 잘 알려진

광개토대왕이 사용한 연호로

영락 7년은 서기 397년에 해당함.





이렇게 되면 연도 표기 없이

'5월에 고려 태왕이...'로 시작하는 비석 정면의 비문도

새로 확인된 글자를 합쳐서

'영락 7년인 정유년 5월에 고려 태왕이...'로

자연스럽게 이어짐.





또한 '12월 23일 갑인(十二月廿三日甲寅)'도

다시분석 해서

'12월 27일 경인(十二月廿七日庚寅)'으로 해독

되었다고 주장하며

서기 397년 음력 12월 27일이 경인일 이라고 덧붙임.





이번 연구 결과가 정설로 받아들여질 경우



광개토대왕은 북방을공략하고

장수왕은 남방을 공략했다는 기존의 학설과



고구려가 국호를 고려로 변경한 게

장수왕 때라는 내용까지 포함해서



역사책을 다시 써야 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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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신 기술인 3D스캐닝 데이터와
RTI 촬영을 하여 탁본으로 판명하기 어려운
마모된 부분에서
영락7년세재정유(永樂七年歲在丁酉)라는 글자를
판독


국사수업때 장수왕의 남진정책의 근거로 배웠던 충주 중원고구려비

알고보니 광개토대왕이 세웠다.


또 “고려”라는 국호를 처음 사용한것도
장수왕이 아닌 광개토대왕인 것

* 출처 : http://soccerline.kr/board/15538581?page=0&categoryDepth0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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