딸기1모찌
2019-12-11 23:48: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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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구려, 구려, 고려가 섞여 쓰이다가 중후반기가 되면 고려로 굳었다고 배움. 지금 우리가 후기 이름을 무시하고 고구려라고 부르는건 궁예의 태봉도 초기 이름이 고려였고 왕건의 고려도 고려이기 때문에 셋을 구분하기 위해 고구려, 후고구려, 고려라고 부른다고 배웠음. 비전공자라 정확하지 않을지도 모름 ㅎ
TimXiansol
2019-12-11 10:41:5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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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구 수 말도 안되는 자료임. 너무 적음. 435년에 북위 사신ㅇㅣ오가 고구려 왔을때 인구수가 조위 시대때보다 3배는 늘어났다는 기록이 있음. 그리고 고당, 수 전쟁때 30만급의 거병을 일으켰는데 이건 인구 100만따리로는 진짜 말도 안되는 이야기임. 그 척토에서 굴러서 전 장정이 전사라는 유목민들 조차도 인구수대비 그 정도 퍼센티지 뽑는건 말이 안 돼.,. 그렇다고 타국 인구수 대비 500만이 넘었을 리는 없고 3~400만 급이라고 보면 될 듯 함. 사실 이 정도 인구수로도 30만 군대 일으키는건 국가 존폐 위기에 사활을 건 총력전을 벌였다고 보여질 만큼 말도 안되는 짓거리긴 함.
intifada
2019-12-11 10:02:16
300
ㅇㅇ 남부가 가야제국이라 표시되어 있긴 하지만 가야가 전남 서부권까지 영향을 미쳤다는 건 익히 알려진 것과는 달라 의심스럽고 이건 주관적 망상이지만 미묘하게 임나설과 결부될 수도 있을 것 같은 자료. 호구 수 또한 4 말 5초 시기에 치더라도 인구수 너무 적음. 7세기 망할 당시에 고구려나 백제 호구수가 70 80만호였다고 기억하는데 얼토당토 않고 신라가 20만?? 당시 처ㅣ약체라도 너무나 얕본 결과물인듯. 최소한 펌을 하더라도 상식에 준하는 자료를 가져와야지 고려 국뽕 맞는다고 아무 자료나 가져온 것처럼 보임. 물론 원글 글쓴이가 반박하면 살펴보고 내가 틀리면 정중하게 사과할 용의도 있음.
샬롯페리에
2019-12-11 10:14:03
90
이게 광개토 대왕릉비 내용에 왜가 바다를 건너서 가야였나 신라였나 한반도 남부의 어딘가에서 뭔가를 했다는 내용 자체는 있음. 문제는 그게 뭘 했다는 건지는 정확히 알 수가 없음. 그부분이 마침 지워져 있거든. 내용이 대충 신라는 우리 고구려 속국같은 거였는데 언제 일본이 쳐들어와서 (지워짐) 정복하고 신민으로 삼았다 이런내용인데(여기에 관해서도 당시 탁본을 처음 뜬게 일본군 장교라 일부러 그 내용을 훼손 시켰다는 음모론같은것도 있고) 마침 그걸 당시의 일제는 일본이 그쪽을 정복시켰다는것으로 해석을 진행하려한게 임나일본부설임. 물론 현대에는 고구려가 주인공인 글귀에 일본을 띄워줄 가능성은 낮기에 왜국의 침공을 고구려가 쳐부수고 그곳을 자기들이 관리했다 이 정도로 해석하는게 정설이고
샬롯페리에
2019-12-11 10:52: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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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도 올해 9월에 들은 수업이라 기억이 간당간당하긴 하네요. 신묘년 기사에 일단 왜가 등장한건 사실이고 일본이 바다를 건너서 뭔가를 했다는것 자체는 확실한것 같은데 그 다음 내용들이 가물가물 하내요. 하필 폐강 크리먹어서 피피티가 다 날아간 바람에... 백잔 같은 표현때문에 이말 저말이 많다는것 정도는 기억이 나는데
피난왔어여
2019-12-11 11:03: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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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묘년에 왜가 신라를 침공함. 당시 신라는 중앙집권은커녕 마립간이라고해서 정해진 왕이 아닌 3개 가문이 돌아가면서 정치하던시절이고 연맹국이었음 중앙집권국이 아님. 신라가 왜에 의해서 망해가자 고구려에 구원을 요청함. 고구려 광개토태왕이 군대끌고와서 신라를 초토화시키던 왜나라군대를 싸그리 박살냄 왜에 원조하던 대가야지역을 박살내버림. 그리고 고구려군이 신라에 주둔함. 그리고 조만간 역사 내용이 바뀔수도 있음 충주 중원고구려비가 장수왕이 아니라 광개토시절이라는 증거가 나오기 시작함.
우유젤리
2019-12-11 11:11:02
10
어디서 본건진 기억이 안나는데 일부에선 가야를 왜로 보는 시각이 있던데... 애초에 한반도 도래인들 중 가장 먼저 일본으로 넘어간게 가야로 알고 있는데 일본쪽 가야랑 한반도 가야랑 한 연맹이었다로 보면 이것도 임나일본부설이랑 같은거야? 몰라서 물어보는거야...
피난왔어여
2019-12-11 12:17: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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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가야라는것이 많이 미스터리로 남아있음. 가야인이 왜지역을 정복한건지 왜의 가야가 한반도 남부를 점령한건지 정확하거나 혹은 추측조차 할수있는 사료가 남아있질 않음 가야관련 역사서라고는 일본서기 하나뿐인데 문제는 일본서기를 뒷받침해줄만한 사료가 단 하나도 없음. 역사를 사실로 만드려면 최소한 두개 이상의 교차검증이 가능한 자료가 필요한다 일본서기 하나뿐인데다가 일본서기를 역사서로 볼수가 없는문제도 있음. 일본 이라는게 주 대상인데 일본이 건국된건 7세기 이후이고 그때 당시는 왜였음 일본서기와 실제 다른 교차검증된 자료와 하나도 맞지를 않음 그래서 일본 내에서도 많이 부정당하는 학설 중국, 한국, 심지어 일본에서조차 그걸 뒷받침해줄 자료가 존재하지가 않음. 과거 역사서에서 중국과 조공관계에서도 왜를 백제나 신라보다 아래에 두고있음 그러다가 나온게 고구려 광개토태왕릉비임.
피난왔어여
2019-12-11 12:17: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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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게 발굴된 시점이 일본이 조선을 식민통치하던 시절임. 광개토태왕릉비에 임나라는것이 있어서 일본은 난리남. 그리고 한국쪽 반박자료가 식민지시절이었을때 발굴된것이고 그로인해 일본이 석회를 발라 조작했다였음. 그래서 동안 우리나라를 제외한 해외에서는 임나일본부가 정설이었음. 그 예로 에이지오브 엠파이어라는 게임에서 고대사를 다루는데 한반도가 일본에게 점령당하는 미션이 있었음. 우리는 개황당했지만 해외에서는 정설로 받아들이고 있었던거. 그런데 지금은 그 임나일본부학설이 깨짐 이유는 [더보기..]
프린스알리
2019-12-11 18:23: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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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9년도에 들었으니까 10년 됐네 ㅅㅂ 암틈 그 때 사학과 교양수업을 들었거든. 거기 교수님 말로는 위에 누가 말한거처럼 프로파간다용으로 쓴거라던뎅. 왜가 신라를 복속시켰고 고구려가 가서 왜놈 쳐부수고 신라를 도와주고 우리 똘마니로 삼았다. -> 우리가 이 근방에서 제일 잘나간다 다 우리 아랫놈들이다 라는걸 알리려고 남긴거라고.. 10년전이라 가물가물하네 이것보다 훨씬 정제되고 좀 더 전문적인 수업이었지만 공돌이인 나는 이정도밖에 기억에 안남네
앱도적인힘으로
2019-12-11 09:51:35
4 0
역사에 if는 없지만.. 내 생각엔 당시 3국중에 가장 조팝이었던 신라가 외교를 빙자한 나제 나당으로 이익 붙어먹기만 아니었으면 고구려가 좀 내부적인 문제 있더래도 통일하고 동북아 판도가 지금과는 전혀 딴판이었을거 같음
예쁜말만해요
2019-12-11 10:09:21
3 0
북방왕국 고구려, 해상왕국 백제..... 둘중에 하나에서 통일했었으면 진짜 우리나라 역사가 달라졌을 텐데..... 진짜진짜 아쉬운 것중 하나가 북방 유목민족들이 전부 한번씩은 중국 털어먹었자너. 거란, 여진, 말갈 등등.... 근데 당시에 고구려는 이런 북망 기마민족들을 거느리면서 종주국, 패권국 역할을 하고 있었는데 신라한테 뒤통수만 안까였어도 원나라, 금나라 등등 처럼 대제국 만들고 중국 탈탈 털어먹었을텐데 참..... 아쉽고 아쉽당... 신라 이후 고려 조선에 이르기까지 고구려 땅중에 코딱지만큼 일부를 회복하는데 온 국가 전력을 기울였던거 보면 고구려가 진짜 대단하긴 대단했음
준성전파원
2019-12-11 10:53: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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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국통일전쟁 시기를 짧게 잡으면 가야 멸망 이후부터 시작되었다고 보는데 실제로 이때부터 신라쟝의 시원한 통수로 한강유역 날라가서 나제동맹 깨지고 서로 국경을 접하게 된 백제와 신라는 계속적으로 전투를 벌임. 고구려는 군사력 자체는 언제나 강했지만 중국 통일제국인 수나라의 등장으로 한반도 남부에 군사력을 투사할 수 없었음.
준성전파원
2019-12-11 10:56:4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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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라는 한강유역을 점거하고 삼국 중 가장 잘 나가는 시기였지만 백제 의자왕이 즉위 후 40여개 성을 함락하고 신라 방위선의 최고 핵심인 대야성을 함락하는 쾌거를 달성함. 대야성이 함락당하면 낙동강을 넘어 바로 경주 근방을 노려볼 수 있기 때문임.
준성전파원
2019-12-11 11:01:5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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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야성의 함락은 엄청난 사건으로 신라 멸망까지 이어질 수 있기 때문에 당시 수뇌부는 엄청난 위기감을 가질 수 밖에 없었고 특히, 사위 김품석의 만행으로 대야성이 무너진거라 볼 수 있어서 당시 김춘추(태종 무열왕) 의 입지는 좁아진 상황이었음. 그래서 김춘추는 목숨을 걸고 고구려와의 동맹을 위해 연개소문을 만나러 갔지만... 협상은 결렬됨. 결국 신라는 고구려, 백제, 왜국 으로부터 외교적으로 고립되었기에 당나라와의 교섭을 시도하고 성공함. 648년경 김춘추와 당태종은 영토분할약정을 맺음
준성전파원
2019-12-11 11:06: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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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고 당나라가 제 2차 고당전쟁에서 연개소문에게 쳐발리면서, 한반도 남부에 고구려를 상대할 제2전선을 형성하기 위해 나당 연합군이 백제를 침공하여 멸망시키고 8년 뒤에 고구려를 멸망시키고 최종적으로는 당나라가 한반도 전체를 지배할 야욕을 드러내자 신라의 선제공격으로 671년 나당전쟁이 시작, 676년 기벌포 전투를 끝으로 신라의 승리로 마무리됨.
intifada
2019-12-11 11:12:4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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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태클 거는 거 아님 ㅇㅇ. 그렇게 생각하는 이유를 말해주면 좋겠음. 지금까지의 글은 삼국통일 과정에 대한 것이고 . 신라가 승리한 건 토번의 준동으로 당 기준 동쪽 변방이던 신라와의 전쟁에 전력을 다하지 않아서라는 평가도 존재. 신라가 잘한 건 잘한 거지만 도호부 설치 안 되고 독립할 수 있었던 건 운도 컸다고 생각 .
준성전파원
2019-12-11 11:22:4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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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국통일전쟁 당시 각 국을 살펴보면, 백제와 고구려는 결국 멸망할 수 밖에 없는 요인을 지니고 있었고, 해결하지 못한 상태에서 침략을 받음. 백제의 경우, 의자왕은 왕권 강화를 시도했으나 (좌평 41명이 모두 왕자들) 귀족층의 극심한 반발로 처음부터 분열되어 있었음. 사비성에서 배신자 예식진이 나온건 우연이 아님. 고구려의 경우는 연개소문의 정치적 능력은 모르겠는데 군사적 능력은 상당한 편이라 제2차 고당전쟁은 사실상 연개소문의 캐리로 보는게 맞음.
준성전파원
2019-12-11 11:22:5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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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데 우리 연개소문쟝... 죽으면서 아들 1명에게 권력을 몰빵하지 않고 3명에게 각자 나눠주는 짓을 저지름. 이건 무엇이다? 분열이다... 이 말이야... 태막리지인 연남생은 당시 지방을 순찰하면서 연남건, 남산에게 수도를 맡김. 그리고 서로 특이한 보고를 받음. 남생에게는 남건, 남산이 정변을 일으키려 한다 라는 보고가 올라오고... 연남건, 남산에게는 남생이 두 동생을 죽이려 한다는 보고가 올라옴. 서로 '먼 개소리야' 하면서 믿지는 않았지만 불안했던지 남생은 밀정을 파견하는데 그게 붙잡힘. 결국, 고구려는 내부분열이 발생하고 결국 연남생은 내부 권력투쟁에서 패배해 국내성 등 6개 성과 10여만 호에 달하는 무리를 거느리고 당나라에 투항함. 비슷한 시기에 연개소문의 동생 연정토가 남부 12개 성을 신라에 바치고 투항함으로써 고구려는 3차 전쟁 이전부터 요동 방위선과 남부 방위선이 사실상 붕괴된 상황이었음.
intifada
2019-12-11 11:33: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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계속 상황설명인데?? 신라가 통일을 할 수 밖에 없었던 상황에 대한 너의 설명은 차치하고 '했어야 하는데'라는 당위성에 대한 반박으로 너의 의견은 적절하지 않음. 그건 그냥 지나간 시대에 대한 결과론임. 가정을 해서 의자왕이 흥수 등 충신을 유배보내지 않고 당나라 침공에 대비했다면, 백제 귀족세력을 통합했다면,유인원 유인궤가 백제 잔존 세력 내버려두고 귀국했다면, 복신과 도침이 권력투쟁 안 했다면 상황은 달라질 수도 있지 않았을까?? 라는 상상도 가능하지.
준성전파원
2019-12-11 11:48: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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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구려 또한 결국 내분으로 멸망했으나, 신라는 그렇지 않았음. 물론 비담의 난과 같이 내부분열이 폭발하긴 했으나 진압하였고 성공적인 중앙집권화를 달성함. 그 이후에도 전쟁 중 당나라 등의 회유에 넘어간 귀족들을 빠르게 축출해냄으로써 내부 분열이 발생할 여지를 원천적으로 차단함. 그리고 나당전쟁 이전부터 당나라는 한반도 전체를 지배할 생각을 드러냈고, 신라는 당나라와의 전쟁을 대비함. 고구려가 멸망하던 668년 부터 왜국에 사신을 보내어 통수를 예방했고,고구려 부흥군을 지원하기도 했으며, 대규모 사면조치를 내려 적이었던 백제나 고구려의 장병 등... 내부 동원체계를 다시금 강화하고, 당나라에 사신을 보내어 정보를 수집하는 등... 660년 백제 멸망 이후부터 당나라와의 전쟁을 고려하여 많은 행동을 해왔던 것을 알 수 있음.
intifada
2019-12-11 12:02: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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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런 글 보면 댓글에 언제나 고구려가 통일해야 했었는데 같은 말이 나오는데 나는 개인적으로 그렇게 생각하지 않음" 이 글에 대한 부연주장으로 너의 대답은 정합성이 떨어짐. 네가 아마추어 수준이든 분야에 종사하든 관심이 많다는 건 알겠는데 그게 너와 나 나이의 핵심은 아니지않슴? 네 글의 목적은 이무리봐도 당위에 대한 반박으로 나는 이러저러한 이유로 백제 혹은 신라의 통일을 지지한다라는 마찬가지로 당위성이 주장되어야 함. 이럴 수 밖에 없었다는 건 그냥 결과적 해석이고 정확한 대답이 아님.
준성전파원
2019-12-11 12:09: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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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ntifada // 내가 무슨 if 라는 가정을 했는지는 모르겠는데... 원래부터 상황설명 좀 하고 할랬는데 걍 말함... 1. 고구려, 백제와는 달리 신라는 내분이 없었고, 분열 가능성을 초기에 차단함 2. 국가적 역량을 파악하고 (대야성 함락 등의 위기) 해결하기 위해 당나라와 동맹 체결 3. 660년 백제 멸망 이후부터 당나라와의 전쟁을 고려하여 많은 조치들을 취함. 4. 신라와 당나라의 역량을 파악하고 그에 걸맞는 전략을 수립하여 전쟁에 임함.(화전양면전술) 솔직히 내부분열이 없었다는 점이 가장 큼. 나머지도 중요하지만 백제와 고구려가 내부 분열로 망했다는 점을 볼 때 이는 신라가 가지고 있는 가장 큰 어드밴티지 였음. 분열되지 않고 국가의 모든 역량을 총동원할 수 있었음.
준성전파원
2019-12-11 12:09:4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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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ntifada // 그리고 임전무퇴의 정신도 있음. 물론 백제나 고구려에 그런거 없었음? 하면 물론 있었겠지. 근데 지금은 신라를 말하는거임. 660년 황산벌에서의 관창, 반굴도 있지만 672년 석문 전투에서 김유신의 아들 김원술이 살아 돌아오자 김유신은 죽지 않고 도망쳤다는 죄를 물어 처형하려 했으나 결국 의절을 선언함. 그리고 669년 백제 지역에서의 전투를 사죄하기 위해 김유신의 동생 김흠순, 파진찬 김양도 같은 고위 귀족을 파견함. 사죄사의 성격 상 죽을 확률이 높은데도 그들은 갔고 김흠순은 복귀했지만, 김양도는 감옥에서 사망함. 거기서 당 고종에게 다 불면 예식진처럼 부귀영화를 누릴 수 있었을텐데 말임.
준성전파원
2019-12-11 12:20: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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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ntifada // 토번의 준동으로 운이 작용했다? 물론 그럴 수 있음. 그 운이 작용하기 전까지 버티기만 한다면 말임... 고구려와 백제는 내분으로 인해 침공에 버티질 못했지만, 신라는 내부 분열을 차단하고 국가적 역량을 총동원하여 당나라와의 전쟁에 임했기 때문에, 그 운빨이라는 것도 적용될 수 있었던 거임. 단순히 토번의 준동 덕분? 나당전쟁 당시 추정 병력이 일부 기록의 합산만으로 20만이 넘는다는 말도 있음. 그리고 신라는 고구려 처럼 중화 국가들과의 전투를 해본적이 없었기 때문에 석문 전투 같은 평야에서의 회전에서 패배하자 야전을 포기하고 수성전으로 전환함.
준성전파원
2019-12-11 12:32: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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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ntifada // 그냥 한 마디로, 신라는 중앙집권화에 어느정도 성공하고 내부 분열을 원천적으로 차단하였기에 고구려, 백제 처럼 망하지 않고 내부 역량을 총동원하여 당나라의 침공에 맞섰기에 당나라의 한반도 지배 야욕을 무너뜨릴 수 있었다. 라고 할 수 있겠네요
intifada
2019-12-11 12:35:5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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너의 논지를 순서대로 전개하고 이유를 뒤에 말하려는 이유를 말하려 했다면 미안. 난 나랑 실시간 의사소통하면서 정리하는 줄 알았네. 그러나 자꾸 반박해서 인격적인 침해를 행하려는 게 아니지만서도 , 너의 의견 전개방식에는 결함이 있음. 바로 위의 댓글에서도 무슨 문제인지 파악을 못 하고 있는 것 같음. 지식들의 나열은 여기서 중요하지 않은 문제. 통일의 주체에 대한 선호를 드러낸 댓글에 너 또한 선호를 주장하는 암시를 남긴 댓글을 달았고 그에 대한 설명으로 장래 발전가능성이 높았으니 등등의 나름의 이유를 주장하여 특정 국가를 지지하는 발언을 해야 맞는 말임. 하지만 넌 지금도 왜 신라가 통일할 수 밖에 없었는가에 대한 이유만 열거하고 있고 그 과정에서 약간의 가치판단이 들어갔다할지라도 너의 주관이 드러나지 않고 있음. 이번 건에 대해서는 네가 이해를 잘못 한 게 맞음. 그렇다고 너를 깔아뭉개고 짓밟으려는 시도는 단연코 아니고. 내 의도가 잘 전달되었으면 좋겠다.
준성전파원
2019-12-11 12:44:5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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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ntifada // 나는 역사에서 if 를 가정하는 것은 무의미하다 생각함. 너도 그렇겠지만. 지금 위에서 보면 게시글도 그렇고 댓글에도 고구려에 대한 긍정적인 시각이 대다수임. 이게 왜 그럴거라 생각함? 안봐도 똑같음. 만약 고구려가 통일했으면... 현대의 우리나라는 더 강한 나라였을텐데... 또는 저 만주땅이 우리나라 땅이었을텐데... 같은 허황된 가정을 말만 안하지 속내에 다 드러내고 있으니까 이런 댓글을 단 거임. 고구려가 통일했으면 그랬을거다? 절대신도 아닌데 그런걸 어케 아는지? 역사적으로 중화문명과 맞닿아서 대립한 국가들은 대부분 중화로 흡수되었는데 고구려는 안 그럴 거라는 보장은 대체 어디서 튀어나오는 것인지??
준성전파원
2019-12-11 12:52: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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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ntifada // 그리고 지식을 나열하는 게 아니라 삼국통일전쟁에서 그 과정을 알아야 고구려, 백제가 패배한 원인을 알고, 신라가 기어코 살아남을 수 있었던 이유도 알 수 있는거라 봄. 신라를 무슨 민족의 반역자 정도로 생각하는 사람이 너무 많음. 애초에 당시에는 민족이라는 개념이 없었음. 삼국통일전쟁 당시에 무슨 일이 있었는지 잘 모르니까 고구려 짱짱맨인데 신라는 통수치고 중국놈들이랑 동맹맺은 민족 반역자다 취급이 나오는 거 아니겠음? 어느 한 쪽 편을 드는게 아니라 너무나도 바라보는 시각이 편향적임.
준성전파원
2019-12-11 12:55: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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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ntifada // 게시글 자체의 내용에 대해서 내가 몰라서 이런 댓글을 쓴 것이 아님. 나는 이런 게시글이나 댓글들의 속내에 대해서 말한 것임. 고구려가 통일했으면... 우리나라는 더 강한 나라였을텐데... 하는 그 속내 말임. 삼국 간의 데스매치에서 누가 장래 발전가능성이 높은지 뭔지 그딴건 ㄹㅇ로 아무 의미없음. 살아남는 건 단 하나의 나라임. 그렇기에 신라가 승리할 수 있었던 요인이 중요한 거라 봄.
intifada
2019-12-11 13:15: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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너의 말을 듣고도 물론 난 네가 전핮성 부분에서 틀렸다는 생각을 버리지는 않을 것임. 그러나 생각해보기에 너는 문장 자체의 논리성보다는 문장에 함의된 욕망에 대해 더 초점을 기울인다고 생각함. 그런 너의 주장에 대해 일견 동의하는 바이고. 상상력은 인간사 발전의 원동력이나 그럼에도 너의 말처럼 억측과 확증편향을 자제하고 객관적 사실 그 자체만을 보려고 노력한다는 점에서 존경받을만하다고 본다. 버트란트 러셀이 흑백비디오로 후세에게 보내던 편지에서 한 말과 비슷하네. 서로 존중하는 이야기로 얘기나눌 수 있어서 좋았다. 물론 사람은 본질적으로 의견이 다른 사람을 꺼려하고 배척함. 여기서도 난 이견이 있는 부분에선 타햡 안 할 거고. 그럼에도 네 의견에서 합치점도 찾을 수 있었고 공존할 수 없는 사고방식이 아닌 권장될만한 사고방식이 보여 '국민'이자 인간으로서 기쁘다. 네 진로는 모르겠다만 네 글의 사상은 학자를 준비하고 있는 나에게 있어 단순하지만 확고한 울림을 주었다. 오랜만에 만족할만한 대화였다.
준성전파원
2019-12-11 13:33: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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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ntifada // 오타난게 무슨 말인지는 모르겠지만... 나는 어떤 것을 설명할 때 전후 이야기나 중간과정을 많이 설명하려고 한다. 내 개인적인 의견으로는 이런 것들을 알아야 제대로 이해할 수 있다고 보기 때문인데, 이렇게 하다보면 읽는 사람들 입장에서는 주제가 옅어지고 초점이 어긋나는 점이 있음. 그래서 정말 관심있어 하는 사람들만 다 읽어보는 것 같음. 어떻게 보면 단점이라 보완이 필요한데.. 그래도 나는 필요하다고 생각함. 그러다보니 댓글을 길게 쓰면 읽다가도 중간까지만 보는 사람이 대다수인데 내 쓸데없는 댓글을 끝까지 읽어준 점에 대해서 감사를 표하고 싶다. 사람은 본질적으로 의견이 다른 사람을 꺼려하고 배척한다고 했는데 물론 나도 그렇다. 하지만 그러면서도 나는 본질적으로 의견이 다른 사람이 이야기하는 것을 경청해야 한다고 생각함. 내 말이 우주의 진리가 아닌 이상 내가 틀리고 남이 맞는 것이 더 많다고 보기 때문임.
준성전파원
2019-12-11 13:46: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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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nitifada // 그리고 나는 권위에 대해 크게 의미를 두지 않음. 어떤 꼬마애가 1+1은 5라고 모두가 '그렇지 않다', '니가 잘못 배웠다' 라고 말하겠지만, 존경받는 대학자가 갑자기 1+1은 5다 라고 하면 '왜 그런 것인가?' 라고 반응할 것임. 꼬마애가 말하던 존경받는 위인이 말하던 지나가는 개가 말하던 간에 '진실' 이라는 것은 변하지 않음. 마찬가지로, 본질적으로 다를 수는 있어도 진실, 혹은 사실 또는 '옳다' 는 것 또한 답이 1가지라고 정해진 법은 없다고 봄. 내 의견이 맞다 하더라도, 다른 사람의 의견 또한 맞을 수 있음. 이렇게 생각하지만, 나 자신이 그렇게 행동하는 건 또 다른 어려움을 가짐. 그러나 생각한다면, 언젠가 행동으로 나타나겠지만, 생각조차도 하지 않는다면, 행동으로 나타날 일은 없다고 나는 생각함. 본질적으로 다를 수는 있지만, 진리라는 것은 언제나 유동적으로 바뀌어 왔음. 오늘의 정답이 내일은 오답이 될 수도 있지 않나 싶음. 여하튼, 쓸데없는 댓글 끝까지 읽어줘서 고맙다. 그럼 언제나 좋은 하루 되길 바래 !
네바다
2019-12-11 11:16: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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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 크기 그대로 근대까지 갔으면 한국은 중국 소련 영향 받아서 공산주의 국가가 됐을걸. 아니면 북한이 영토빨로 떵떵대고 남한이 빌빌 길수도 있고. 하물며 천년 전 역사에서 누가 정복하고 정복하지 못했는지를 논하는건 의미 없다고 생각함
size21
2019-12-11 12:47:4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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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구려가 지역강국 정도 였으면 수당이 황제가 친정하러 나오지도 않음 고구려가 지역강국이던 시절은 동천왕 시기 관구검이 자사 벼슬 하고 있었는데 털어벌림 동북아시아 패권국가로 백제 신라 말갈 거란 실위가 간접통치 영역임 종주국으로 조공받고 대국사이즈 임 중원통일 하면 반드시 깨야함 고구려는 독자적인 천하관을 가지고 있었고 요서 요동 만주에서 지배자였음 중국역사에도 천자가 직접 정벌하러 온 케이스는 드물다
준성전파원
2019-12-11 13:03: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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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데 난 최근에 다르게 생각하는게 뭐냐면... 중국이 원래는 북방 이민족들의 지배에 큰 관심이 없었다가 서진 이후로 북방의 이민족들이 유입되면서 5호 16국 시대가 열리고 선비족의 피가 있는 수, 당이 통일제국이 되면서 자연스레 북방 이민족들의 통제에 관심이 이루어졌다고 봄. 그런 과정에서 보니까 "어라... 북방 이민족을 통솔하려는 애가 있네?" 그게 고구려임. 수, 당 통일제국이 고구려가 중원을 침략할 수 있다고 생각했는지 까진 몰라도 말임. 선비족의 피가 포함된 수,당 제국과 고구려 간의 북방 이민족 지배권을 놓고 싸운게 아닌가? 라는 생각이 듬.
간지가하늘을찌른다
2019-12-11 15:24:3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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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구려가 계속 정복전쟁을 했던건 사실 만주지방은 그때 딱히 먹고살기 좋은 땅이 아니었기때문. 지금이야 농업기술 발전과 지하 자원이 많은 꿀의 땅이지만, 저 시대는 오직 원시 농업만 있던 시절이니...괜히 백제, 신라가 오래버틴게 아님. 한반도 남쪽은 농사가 매우 잘되는 땅이었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