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녕하세요,
현재 단풍국에서 B787 조종사로 일하고 있는 아재입니다.
최근 여기저기서 항공관련 질문들이 많이 들어오길래, 그간 답변한 글들을 모아 정리하여
미천한 제가 항공업계를 지망하시는 분들이 진로를 결정하는 데 있어 미약하게나마 도움이 될까 하여 감히 여기에 코멘트를 적습니다.
저는 여러분들의 앞날을 응원하지만, 또한 희망 전도사는 아닌 관계로, 마냥 감언이설만 늘어놓지 않고 조금 더 현실적인 측면에서 글을 쓰겠습니다.
질문은 자유로이 하시되, 자세한 업계 내부 정보 관련해서는 신변상 알려드리기 힘든 점 양해 바랍니다.
1. 현재 조종사 월드와이드 평균연봉은 약 20만달러[한화 2억 4천]이며 [하위 10% 4만달러, 상위 10% 55만달러. 편차가 상당히 큽니다], 향후 20년간 직종전망 또한 매우 밝은 상황입니다. 업계에서는 적어도 현 세대에 조종사라는 직업 자체가 사라질 일은 없다고 보고 있으며, 전반적으로 고위험군이라고 일컬어지는 전문직들 중엔 오히려 법조인, 코더, 엔지니어가 조종사보다 기술적 특이점이 더 빠를 것으로 예상하고 있습니다.
2. 엔트리 레벨 파일럿 대우는 전 세계를 통틀어도 한국만한 곳이 없습니다. 애초에 아무 레이팅도 없는 초짜에게 억대 연봉 쥐어주며 직접 교육시키고 메이저 터보팬기종 S/O도 아닌 F/O 포지션 바로 내어주는 곳도 드뭅니다 [그 반대급부로 시니어파일럿 대우가 매우 박한 편이긴 합니다]. 다만, 현재 한국 시장은 여러 상황이 겹쳐 적어도 향후 3-5년간은 상당한 침체기가 이어질 것으로 예상하며, 특히 LCC시장은 대격변이 있으리라고 바라보고 있습니다. [재무 지표상 이스타는 외부-제주항공 측에서 대규모 자금지원이 있지 않는이상 회생불가 수준, 티웨이도 상당히 위험한 상황입니다]
3. 민항사의 경우,통상적으로 신규조종사 공채선발 정원의 6~70%는 사전에 이미 공공연히 인사 내정자가 정해져 있습니다. 주로 군부/항공과출신 및 임원 레퍼런스로 구성되며, 암암리에 취업 브로커 또한 존재한다고 합니다. 최근 한국 에어라인 신규 조종사 채용률은 꾸준히 하락중이며, 2019년 기준으로 이제는 전체 CPL+MEIR 면장 발급량의 절반이 채 되지 않습니다. 나머지 40% 블록은 문자 그대로 피터지는 경쟁입니다. 직업 특성상 학벌은 그리 중요시하지 않으나, 선발 과정에서 출신 비행원까지 따져가며 로그 2000시간에 737 타입레이팅까지 따 오는 오버스펙 지원자들이 넘쳐나는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본인이 최소 항공사 본부장 혹은 시니어/치프캡틴 이상급의 인물과 연줄이 닿아 있거나, 기회비용을 감수하고 수천만원의 사비와 시간을 더 들여 항공유학 혹은 737 타입 레이팅을 따올 만한 물적 여유가 되지 않는다면 [물론 이거 취업후엔 아무 쓸모 없습니다], 한 번쯤 진로에 대해 다시 한번 생각해야 할 때라고 봐야 할 것 같습니다. 현실은 굉장히 차갑고 냉정합니다.
4. 전 세계적으로 놓고 봤을 때, 지난 10년간 항공업계는 역사상 전례없는 대호황을 맞이하여 매 해마다 기록적인 산업 규모를 경신하고 있습니다. 그에 반해 민간 조종사 시장은 문자 그대로 심각한 구인난에 시달리고 있으며, 이는 향후 점차적으로 악화될 전망입니다. 북미 시장의 경우, 80년대 냉전 말기에 폭발적으로 양성되어 예편한 군 출신 조종사들이 은퇴를 바라보는 현 시점에서, 향후 8년 이내에 시장 전체의 45%이상을 할당하는 베테랑 조종사들이 정년을 맞이할 것으로 예측하고 있습니다. 또한, 한정적인 인력 공급기관의 역량 덕에 에어라인 파일럿 자격요건을 충족하는 인원은 캐나다의 경우 매년 200명이 채 되지 않으며, 이러한 환경 속에서 조종사들의 몸값은 여전히 매년 천정부지로 치솟고 있습니다 [당장 10년 전만 해도 리저널 파일럿 이니셜 페이가 2만 달러대였음을 생각하면 격세지감이 아닐 수 없습니다]. 다만 올해는 코로나바이러스의 여파로 잠시 성장세가 더뎌질 것으로 보고 있습니다.
5. 예나 지금이나 돈줄도, 연줄도 없다면 군줄이 답입니다. 조종사 교육 굉장히 비쌉니다. 현실적으로 20대의 젊은 혈기만으로 억대의 수업료를 감당하는것은 불가능합니다. 죽어도 본인은 조종사를 해야겠으나 가정의 서포트를 받을 형편이 아니라면, 군 파일럿으로 커리어를 시작하는것도 결코 나쁜 선택은 아닙니다. 다만 고정익 전방석 포지션을 따려면 그에 충당하는 노력이 필요함을 잊지 마십시오.
6. 조종사 도전은 자유로이 하시되, 마지노선 기일을 정해 두십시오. 나이는 중요하지 않습니다. 어떤 이들은 20대에 꿈을 이루고, 또 어떤 이들은 불혹이 다 되어서야 목표에 도달합니다. 하지만 도전을 함에 있어 정해둔 일정한 기간을 넘겨서도 그저 미련으로 남아 한없이 붙잡고 있는다면, 경제적으로도 정신적으로도 사람이 피폐해지기만 할 뿐입니다.
7. 조종사는 그 무엇보다도 몸이 재산이며 전부입니다. 지식이 부족하면 노력으로 채워 나가면 되지만, 건강은 한번 잃으면 다시는 돌아오지 않습니다. 자기관리는 선택이 아닌 필수이며, 어떠한 상황에서도 자신의 몸을 항상 소중히 여기며 스스로를 사릴 줄 알아야 합니다.
모든 조종사 지망생분들을 응원하며, 건투를 빌겠습니다.
읽어 주셔서 감사합니다.
참고하시면 좋을 링크:
https://airtravelinfo.kr/xe/crew/696723
51
28,085
풍성충
추천
베스트1
베스트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