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 질 녘 무렵. 총성이 사그라지고 지평선 너머로 보이던 붉은 빛 포화마저 점차 노을에
묻혀 사라져갔다. 이미 한바탕 전투가 휩쓸고 간 자리에 남은 건 잿빛으로 물든 폐허뿐.
보이는 것이라곤 아직 회수되지 못한 시체들과 처참히 파괴된 로이드. 불타고 있는 전차나
추락한 헬기에서 피어오르는 검은 연기. 발 딛는 곳마다 깨진 유리 파편이나 탄피가 밟혀
부스럭거리는 소음이 났다.
전쟁이란 그런 거다. 하지만 이미 그런 것들이 익숙한 나 자신이 싫었다. 전쟁이라면 진절
머리가 났지만 난 지금 꼭 해야 할 일이 있었다.
“벌써 해가 지는군. 일단 마땅히 쉴 곳부터 찾아보지.”
근처, 폭격을 맞은 상점으로 들어섰다. 나와 케플레르의 암묵적인 수신호 아래 그곳의
수색이 일사불란하게 이루어졌고 안전을 확인한 난 박사를 구석 자리로 안내했다.
“당신이 죽으면 내가 곤란해져.”
그리고 케블라 섬유로 된 방탄복을 던져줬다.
“당신이 죽어도 내가 곤란해지죠.”
“난 이딴 곳 ...... [ 크롤링이 감지되어 작품 일부만 보여 드립니다. 웹소설 작품은 검색 크롤링이 제한되어 있으며, 사이트에서 직접 작품을 감상해 주세요.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