은규는 고개를 숙였다. 흰 종이가 눈 앞을 메우고 있었다. 오른손에 든 샤프가 어지러이 종이 위를 서성였다. 그제도, 어제도 마찬가지였다. 은규는 한 글자도 쓰지 못했다.
한숨을 쉬며 고개를 들자 텅 빈 교실의 적막함이 와닿았다. 넘실대는 노을이 창문을 넘어 은규의 얼굴에 길게 그림자를 드리웠다. 수업이 끝난지 얼마가 지났더라. 잘 기억이 나지 않았다. 하지만 아직 교무실엔 교사가 남아 있을 것이다. 은규를 기다리고 있을 테니까. 아니, 정확히는 은규가 며칠을 눈싸움만 한 이 종이를 기다리는 거겠지만.
아무리 그러고 있어 봐야 안 나오는 글이 나오지는 않았다. 은규는 결국 포기하고 아무것도 쓰지 못한 진술서를 들고 교실을 터벅터벅 걸어 나갔다.
은규는 교실 문을 드르륵 열었다. 그러자마자 낯익은 여학생과 마주쳤다. 복도에 사람이 있을 거라고 생각하지 못한 은규는 조금 놀라 멈칫했다. 상대도 마찬가지인 모양이었다.
"어머."
하나로 묶어 늘어뜨린 긴 머리와 예쁜 얼굴. 같은 반 ...... [ 크롤링이 감지되어 작품 일부만 보여 드립니다. 웹소설 작품은 검색 크롤링이 제한되어 있으며, 사이트에서 직접 작품을 감상해 주세요.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