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례식이 끝나고 며칠이 흘렀다.
한유진, 아니, 이지은은 회색의 사무실에 완벽하게 녹아들었다. 그녀는 말이 없었고, 표정도 없었다. 시키는 일은 군말 없이 해냈지만, 그 이상을 하는 법도 없었다. 동료들은 그녀를 '조용하지만 성실한 신입' 정도로 인식했다.
아무도 몰랐다. 그 무표정한 얼굴 아래에서, 한때 테라 그룹을 호령했던 창업주가, 자신의 왕국을 샅샅이 분석하고 있다는 사실을.
그녀는 이지은의 낡고 느린 컴퓨터로 지난 5년간의 모든 신제품 개발 보고서와 시장 분석 데이터를 미친 듯이 파고들었다. 레시피 개발부터 마케팅, 유통, 재무제표까지. 머릿속에서 흩어져 있던 정보들이 거대한 지도로 완성되어 갔다. 그녀는 한유진이었을 때 보지 못했던, 혹은 보려 하지 않았던 회사의 밑바닥을 보고 있었다. 비효율적인 보고 체계, 부서 간의 보이지 않는 알력 다툼, 그리고… 강태준이 대표 직무대행이 된 이후, 교묘하게 자신의 라인에 있던 사람들을 배제하고 있는 인사 이동의 ...... [ 크롤링이 감지되어 작품 일부만 보여 드립니다. 웹소설 작품은 검색 크롤링이 제한되어 있으며, 사이트에서 직접 작품을 감상해 주세요. ]